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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그리휴먼 Sep 26. 2021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이 말이 왜 이렇게 어색한 걸까

'어떻게든 되겠지 뭐.'


대학교 문화가 싫다며 계획 없이 자퇴한 친구

얼마 큼의 비용이 드는지 모른 체 교환학생에 지원해 미국으로 떠난 친구

버팀목 전세대출의 한도 금액은 모르지만 우선 전셋집부터 계약한 친구

 친구들에게 매번 들었던 말이지만, 어쩐지 내게는 어색한 말이었다.  입에서는 맴돈  조차 없는,  것이 었던 적이 없던 말이었다.

실은 그 말의 뒤에는, 그 모든 최악의 경우에 그들에게는 돌아가 기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있기 때문이란 걸,  난 조금 일찍 알았던 것 같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 비로소 보이고 느껴지듯, 가지지 못한 어린 나의 눈에 그리 보였다.


외할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외가의 부담이 커지고 갈등이 생기면서 나는 엄마와 둘이 따로 나가서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나의 뒤는 절벽이고, 내가 떨어질 때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안전장치는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러니까,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나의 부모는 매우 가난했고 이혼했으며 먼저 같이 산 아빠에게서는 버림받다시피 했고 다시 만난 엄마는 나를 품을 수 없다는 현실 말이다.


이미 빚이 많았던 엄마에게 앞으로 돈이 많이 들어갈 일만 잔뜩이었던 내가 얼마나 겁이 나는 존재였을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래도' 엄마'였던 엄마는 하루 열두 시간 이상 미싱 일을 하고 일찍 일어나 아침은 꼭 해먹이며 휴일과 밤낮의 구분이 없이 사셨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게 실은 당연했다. 애교 많고 잘 따르던 딸은 아빠와 지내고 돌아와서는 차갑고 날 선 말들을 내뱉는 타인이 되어버렸을 거고.

그렇지만 이건 지금에서야 가능한 생각이다. 그때의 난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외가에서 버림받은 아이 었다. 엄마를 다시 만났지만 자신들로 인한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기는 커녕 왜 자신에게 그러냐며 내가 불쌍하지 않냐고 더 크게 울어 버리는 사람이었으니까.


외가의 도움을 받아 겨우 구했던 반지하의 집은 습하고 더러웠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주말이면 미뤄놨던 잠을 자기에도 벅찼고 야간 자율학습이 저녁 11시에 끝나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로 집안 환경은 좋지 못했다. 비염과 알레르기 증상을 매일같이 달고 살았고 자주 아팠다. 저녁이면 들고양이들이 창문을 어슬렁거렸고(반지하의 창문은 바닥과 붙어있어서 조그마한 움직임도 크게 보였다) 이상한 사람이 창문을 벌컥 열어젖혀 경찰을 부를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에 엄마는 있을 수 없었다. 걱정하고 챙길 시간도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그 집에서 나는 늘 공포와 두려움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언제든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고, 나 홀로 어떻게든 대응하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나를 케어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도저히 모른 체할  없던 가난도 그랬지만, 엄마와의   대화와 다툼은 나를 극도로 몰아붙였다. 차라리 공부하라는 잔소리였다면  했을까. 엄마는 한껏 낮아진 자존감과 자격지심으로 내게 믿기지 않는 말들을 내뱉고는 했다. 감정이 격해지면 손이 올라가고 물건이 날아오기도 했다. 오랜 시간 서로를 괴롭고 외롭게 만든 다툼의 끝에 결국 엄마가 내게 원하는 것이 동정이란  알았을 , 사과를 할 사람은 없고 받아야 하는 사람만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무너진 마음은 여전히 저릿하다. 엄마가 아닌, 상처 받은  사람으로 보기에  너무 어렸고 엄마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부모에게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받은 적이 없는    없었다.


그런 엄마를, 이제 내게 남은 단 한 명의 가족을 보면서 나는 그간의 내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하는 일이, 위로를 바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처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나가기 시작했다. 서로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바라보자 분노와 좌절에서 체념과 포기로 나아갔다.


'어떻게든 되지 않는다'는 게, 저질러 놓은 일을 수습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내게는 없다는 게 자명했다. 아무리 작은 거라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방법을 생각하고 노력해야 했다. 실패는 허락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비장한 마음이 삶의 태도가 되었다. 전투태세는 나의 생존 방식이자 방패가 되었다.


어떤 점에서는 도움이 되었다. 가난이라는 현실이 어떤 모습과 방식으로 개인과 가족을 해체시키는지 여실히 보고 배웠다. 그리고, 아니 그렇기에 더욱 내가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는 동기가 되었고 '평범'과 비슷한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느끼게 했다.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얻기 위해 당연하단 듯 이뤄지는 희생, 노력과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너무 어릴 때 이걸 알아버렸던 것 같다. 때로 몰라도 되는 게 있다는 걸 그렇게 안다.


여전히 '어떻게든 된다'는 말보다 '어떻게든 되지 않는다'는 말이 편하다. 별생각 없이 보내는 주말의 끝에 무엇이든 하고 대비해야 하지 않나, 하는 근본 없는 불안함이 몰려온다. 근데 재밌는 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걸 알기에, 이제 나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백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흔들리고 고생했으면서도 자신을 지켜내 온 게 나니까, 어떤 선택을 해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비빌 언덕은 내 자신이 되면 된다고. 나라면, 어떻게든 된다고, 그런 말을 입안에 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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