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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그리휴먼 Oct 09. 2021

거짓말을 왜 계속 하는 걸까

기억하는 최초의 거짓말은 엄마의 쇼핑이었다.

여덟, 아홉 살 때라 당시 우리 집의 재정상태나 부모님의 관계가 악화된 정도는 잘 몰랐지만,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던 건 당시 엄마가 가정의 재정상태를 뛰어넘는 수준의 쇼핑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이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다녔던 여러 백화점에서 우리를 환영하며 반기던 직원들의 표정이 기억난다. 나는 수없이 탈의실에 들어가 이것저것 갈아입는 일이 힘들었다. 예쁜 옷을 입는 일의 즐거움을 모르는 나이였다. 지금에야 슬프게 느껴지는 건 엄마가 구매했던 품목의 대부분은 나의 옷이나 신발과 같은 거였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어린 시절 사진 속 나는 어느 집 부럽지 않게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다. 아빠 몰래 쇼핑한 물건들을 숨기기 위해 엄마는 집 앞 현관 복도 끝에 있는 창고 같은 곳에 쇼핑백 여러 개를 깊숙이 찔러 넣어 숨겼다. 그리고 내게는 쉿 하는 손 모양을 해 보이며 어디를 다녀왔냐고 묻는 아빠에게 그냥 구경만 하고 왔다고 말하곤 했다. 사실과 다른 말을 하고 무언가를 숨기는 것이 거짓말이구나, 하고 알았다. 콩닥 거리는 가슴과 잡고 있던 엄마의 손, 올려다본 둘의 서늘한 표정과 같은 것들의 잔상이 어지러이 그 기억에 뒤엉켜 있다.


아빠는 거짓말을 정말 싫어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고서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을 때, 따귀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서럽고 아파서 크게 울었는데, 아빠는 그것보다 거짓말이 큰 잘못이라며 타일렀다.


이렇게나 다른 방향의 경험 때문일까,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면서도 거짓말을 멈출 수 없는 사람으로 자라나 버렸다. 어릴 적처럼 엄마가 시킨 것도 아니고 아빠에게 혼날 때처럼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작은 거짓말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말했다. 실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작은 거짓말을 만들어하고 있다는 사실도 몇 년 전에서야 인식했다. 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온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먹지 않은 음식을 먹어봤다고 하는 것처럼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궁금해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안물 안궁인 내용을 스스로 만들어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자 그간 해왔던 크고 작은 거짓말들이 우수수 떠올랐다.


공백 기간 후 학교에 돌아왔을 때는 같은 학년 친구보다 많은 나이에 대해, 아빠와 살 때는 집에 없는 엄마에 대해, 외갓집에서 살 때는 집에 없는 엄마와 아빠에 대해(그러니까 할머니 집에서 사는 일에 대해), 그리고 엄마와 살 때는 가난과 아빠의 부재에 대해, 적어도 수백 가지의 거짓말을 만들어 왔다는 걸 말이다. 지금은 물론 다르겠지만, 10년 정도 전 즈음에만 해도 친구나 선생님, 그 외 어른들이 그런 것들에 대해 묻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반 아이들 앞에서 내 가족관계나 과거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을 요구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중 어떤 것도 내 잘못으로 인한 건 없었지만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부모의 존재,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일, 같은 학년이면 모두 같은 나이여야 하는 일, 그 모든 기본 조건에 하나도 부합하지 않는 학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누가 묻기 전에, 의심하기 전에 나는 거짓으로 나만의 모래성을 쌓아 보여주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오면 나는 그 모래성을 소개하며 이게 나라고, 초대하고 보여줬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나도 너처럼 성이 있다고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그럼 사람들은 더 이상 질문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 모래성 안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 이상을 바라게 되자 다른 성들이 보였다. 자애로우면서도 물심양면 자식을 지원을 해주는 지인의 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절대적이고 견고한 성을 마주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성 안에서 더욱 견고하게 자존감을 쌓아 올리고 부족한 점을 그대로 인정하며 꾸며내지 않는 친구를 보면서 나의 성이 결국은 모래성이라는 걸 처참하게 깨달았다. 나를 살아남게 해 준 성이지만, 그런 순간에는 무엇보다 무섭고 외롭게 느껴졌다. 나 자신이 모래성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날 더 괴롭게 만들었다.

아무도 몰랐기에 나를 살렸지만, 내가 알기에 가장 잔혹하게 자신을 아프게 한다.     


이 글을 쓰면서야 작은 거짓말들이 얼마나 오래, 내 위장 깊숙한 곳에 자리해 왔는지 새삼 깨닫는다. 거짓말과 이로 쌓은 모래성을 의식하고 생각하는 일조차 내게는 버겁기만 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이 글을 보는 게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래성을 허물고 싶다. 완벽하고 견고하지 않아도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나만의 성을 쌓아가고 싶다. 이 글들이 그 토대가 되어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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