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삼성물산 건설부문 From Bold P
우리의 생활에 실용성과 경제성을 두루 살린 가구를 선사한 디자이너 부부 레이 앤 찰스 임스. 가구만큼 모던하며 합리적으로 설계한 건축을 선보였던 레이 앤 찰스 임스 부부를 따라 쾌청한 캘리포니아로 가본다.
부부가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를 꾸리거나 건축사사무소를 이끄는 이야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삶의 동반자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인 서로를 통해 시너지를 얻고 함께 성장해 나간다. 어쨌든 부부가 함께 스튜디오를 꾸릴 땐 아마 모두가 한 번쯤 임스 부부와 같은 미래를 떠올려 봤을 거라 짐작한다. 임스 부부는 디자인과 건축계 역사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부부 디자이너가 아닐까 싶다. 아쉽게도 남편인 찰스 임스에 비해 부인인 레이 임스의 개별적인 활약상을 찾아볼 만한 자료는 부족한 편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이들을 통칭해 임스 부부의 작품을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CHAPTER 1. 일상의 작은 건축물, 임스 체어
건축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글이지만 임스 부부를 얘기할 땐 가구에 대해 먼저 소개해야할 것 같다. 현재까지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미드센추리 가구를 말할 때 ‘임스 체어’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시대를 불문하고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게 임스 부부의 작품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찰스 임스는 워싱턴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임스 앤 월시’라는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해 운영하기도 한 그는 이후 미국의 바우하우스라 평가 받는 크랜브룩아카데미에서 연구원이자 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활약했다. 레이 임스가 이 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다. 영국 신문기자 출신의 조지 부스가 설립한 학교였지만 앵글로색슨의 감성뿐만 아니라 당시 대두되던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적극 받아들이며 기존의 유럽풍 디자인을 탈피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임스 부부가 결혼한 1940년대의 미국은 어땠을까. 2차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나라도 물자가 풍족한 나라는 없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장인정신이 깃든 물건을 사기엔 당장 필요한 게 너무나 많았고 가진 돈도 없었다. 임스 부부의 명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실용적이면서도 디자인적으로 가치 있고, 대량 생산 가능한 가구를 만들어내며 구시대적인 가구 디자인과의 결별을 선언한 상징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유럽에 쏠려 있던 세계인의 디자인적 관심을 미국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디자인은 제약에 빚지는 부분이 크다”고 표현한 찰스 임스의 말처럼 디자인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환경, 제약에 의해 결국 완성된다. 처음 임스 부부가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알린 뉴욕현대미술관(MoMA) 주최의 ‘오가닉 가구 디자인 공모전’만 하더라도 구조, 소재, 목적의 조화라는 조건이 있었다. 에로 사리넨과 함께 탄생시킨 ‘오가닉 의자’는 몰딩 합판의 가능성과 함께 가구의 신재료, 신기술의 발전을 보여준 작품이 됐다. 이어 임스는 앞선 오가닉 의자를 통해 습득한 합판 가구 제작 노하우를 적용해 보다 더 경제적이며 편안한 의자를 제작했는데, 바로 현재까지도 빈티지 컬렉터들이 열광하는 ‘LCW 의자(Lounge Chair Wood)’다. 오가닉 의자는 에로 사리넨의 감성이 살짝 더 짙게 드리워졌다면 LCW 의자는 완전히 새로운, 신시대에 걸맞은 디자인이자 임스 부부만의 인장이 느껴진다.
그 덕분에 부부를 성공 궤도에 올랐고, 건축가보다 가구 디자이너로 더욱 이름나기 시작했으며 알바르 알토의 디자인을 차용한 ‘임스 스크린’과 1948년 MoMA의 ‘저비용 가구 디자인 국제 공모전’에서 2위에 입상한 ‘DAR’, 허먼밀러사와의 협업으로 제작한 시스템 가구 ‘임스 스토리지 유닛’, ‘LTR 탁자’, 색색의 구슬이 달린 ‘행잇올’ 등을 선보였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임스 부부의 작품 성향을 보다 선명하게 굳혀갔는데, 이들은 대량 생산에 용이한 기술 개발에 관심이 많아 플라스틱 라미네이트 합판에 철사 봉을 용접하는 방식을 주로 선보였다. 가볍고 공간 활용도가 높으며 시각적으로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메리칸 디자인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CHAPTER 2. 가구를 담는 서랍 같은 집, 임스하우스
아이러니하게도 임스 부부의 성공은 지극히 클라이언트의 요구 조건에 충실히 따랐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드는 제약과 조건이 곧 작품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하지만 임스 부부의 캘리포니아의 ‘임스하우스’는 다르다. 어떤 클라이언트의 요구도 없는 부부만의 철학을 투영해 탄생시킨 공간이다. 지금부터는 언제나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는 캘리포니아의 자연을 생각해보자. 임스 부부는 원래 샌타모니카에 살고 있었다. 당시 열독자들이 많았던 지역 건축 매거진 <예술과 건축>은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라는 기획 연재를 진행했다. 편집부가 중개인이 되어 건축주와 건축가를 연결해주고 그 과정을 콘텐츠로 다루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임스하우스는 이 매거진 챕터의 여덟 번째 기획(Case Study House #8)이었고, 기존 시리즈와 다른 점이라면 건물주와 건축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현재는 임스 재단으로 이용하는 건물은 퍼시픽 팰리세이즈에 위치해 숲에 둘러싸여 있다. 철골과 유리 소재를 사용한 단순한 구조다. 처음 설계는 보다 실험적인 형태로 구상했지만 건축물이 들어설 부지와 건축 자재의 활용을 검토하며 지금의 형태로 재설계했다. 건축조차도 가구처럼 실용적이며 그것을 만드는 건설 과정 또한 편리성을 추구한 임스 부부다운 즉각적인 설계 변형이었던 것 같다. 건물의 뒤편엔 숲이, 앞엔 캘리포니아의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지는 풍경은 건축적으로 특별히 조형성을 가미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유리 패널로 구축한 건축물은 피에트 몬드리안의 회화 <파랑, 빨강, 노랑, 검정의 구성> 연작을 연상시키는데, 검은색 철골이 자연스럽게 회화의 검정색을 대체한다. 작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임스하우스와 스튜디오, 두 매스로 이뤄진 임스 재단의 내부는 높은 층고를 자랑한다. 먼저 부부의 사적인 공간인 임스하우스에 들어서면 커다란 상자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1층 리빙룸의 평생 만들고 수집해온 부부의 가구들과 소품들을 보면 이곳이 부부의 집인 동시에 커다란 서랍장 혹은 사물함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당연히 이곳엔 앞서 얘기한 부부의 이름난 의자들과 책장 등이 갤러리처럼 이곳 저곳에 놓여 있다. 흥미롭게도 여느 건축가들의 집들이 그렇듯 2층 부부의 사적인 공간은 전체 건물에 비해 무척 작게 구성했다. 천창을 둔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2층엔 작은 방 두 개와 욕실 겸 화장실 하나, 드레스룸이 전부다.
약 8미터 남짓한 파티오를 지나면 있는 스튜디오는 임스 부부가 단편 영화를 촬영했던 영화 세트장이었다. 가구 디자인과 건축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임스 부부는 <장난감 기차> <해파리> 등 무려 85편의 단편 영화를 제작한 시네필이기도 했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사 MGM의 세트 디자이너로도 일한 경력이 있는 찰스 임스에겐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956년 제작한 라운지 체어 ‘임스 라운지 체어 앤 오토만’은 할리우드 황금기 최고의 누아르 영화 감독이었던 절친한 친구 빌리 와일더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스튜디오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의자 뿐만 아니라 임스 부부는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에 빌리 와일더의 집을 설계하기도 했다.
임스하우스 맞은편 이웃으로는 ‘디 엔텐자 하우스’가 있다.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9’ 프로젝트 건물이다. 임스하우스가 완공된 이듬해 1950년에 지어진 건물로, 임스 부부와 에로 사리넨이 건축주 존 엔텐자를 위해 설계한 주택이다. 이들 건축물들은 임스하우스의 연장선으로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가 떠오르는데, 현대적인 유리 패널과 철골 프레임의 건축물이 미국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이 건축 여정의 끝으로 허먼밀러사의 LA 쇼룸도 둘러보길 권한다. 사실 지금의 컬버시티로 이전하기 전 허먼밀러의 쇼룸은 임스 부부가 설계한 건물에 있었으며 부부가 내부 인테리어까지도 맡았던 공간이다. 부부가 구성해 놓은 그대로의 공간을 보긴 어렵지만 허먼밀러사와의 꾸준한 협업을 했던 만큼 임스 부부의 유산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