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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ld P Mar 29. 2021

찰스 레니 매킨토시 : 글래스고에 담긴 아르누보

for 삼성물산 건설부문 from Bold P


건축은 도시를 풍요롭게 만든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보다 이 말이 적절히 와 닿는 도시도 없다. 공업 도시로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의 글래스고는 찰스 레니 매킨토시라는 건축가가 있어서 풍요로웠다. 


ⓒStewart M/Unsplash


새로운 예술, 새로운 건축가


대체로 여행자들이 스코틀랜드의 공기를 처음 느끼는 지역은 에든버러다. 그 유명한 <해리포터> 시리즈가 탄생했고, <왕좌의 게임> 촬영지이기도 한 에든버러는 왜 이곳이 판타지의 도시가 됐는지 바로 알만큼 압도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미지의 스코틀랜드, 그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시작점인 것이다. 에든버러에서 서쪽으로 8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글래스고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장르로 따지면 고딕 소설 같달까. 특유의 음울함이 감돈다. 여름에도 기온이 높지 않고 비가 자주 내리는 영국 도시들의 보편적 분위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웅장하고 품격 있는 고건축물들이 즐비한 글래스고는 영국에서 건축 여행을 얘기할 때 단연 손꼽히는 곳이다. 오랜 시간 도시를 지탱해온 건축물들은 한땐 은행과 교회로, 지금은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변신해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여전히 쓰임이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에 더해, 이곳엔 글래스고에서 나고 자란 아르누보 건축의 대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가 남긴 유산들이 곳곳에 있다. 그 건물들을 따라 걷기만 해도 글래스고의 건축 역사 한 페이지를 훑어내는 셈이다. 


1890~1910년대 유행한 아르누보(Art Nouveau) 예술 양식은 ‘새로운 예술’을 뜻한다. 조형성이 강조되었던 이전의 예술 사조에서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그 중간 단계를 아르누보로 보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그 때문에 아르누보의 디자인적 특징은 이후에 등장한 바우하우스 스타일과 앞선 고전적 조형미가 결합된 형태다. 찰스 레니 매킨토시는 기하학 패턴, 꽃과 같은 식물 패턴 장식으로 상징되는 아르누보 스타일을 자신만의 작품관을 가미해 탄생시켰고, 그 결과물인 건축들은 글래스고 건축 여행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1868년 7월 7일 글래스고에서 태어난 매킨토시는 글래스고 예술학교에서 공부하고 훗날 모교를 직접 건축하는 기회를 잡아 성공 궤도에 오른다. 당대 건축 이론가였던 알렉산더 톰슨이 마련한 건축 투어 프로그램에 장학생으로 선정돼 이탈리아로 건축 투어를 다녀온 후 곧장 글래스고를 주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글래스고 예술학교와 글래스고 헤럴드 빌딩(라이트하우스), 윌로우 티 룸 등 그의 인장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들은 이제 도시의 명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글래스고를 떠나 런던과 프랑스 남부에서 머물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의 찬란한 건축물과 작품들은 대부분 글래스고에서 만날 수 있다. 


ⓒWillow tea room


매킨토시를 따라 걷는 글래스고 건축 산책


산책의 시작점은 매킨토시가 예술을 공부한 학교이자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글래스고 예술학교로 삼는 게 좋다. 이곳이야말로 매킨토시의 작품 세계를 응축시킨 공간이기 때문. 당시 20대 후반의 신인에 불과한 매킨토시의 명성을 높여준 등용문과 같은 건축물이다. 무엇보다 초기 작품인 만큼 점차 변화해 나가는 디자인과 그럼에도 끝내 고집하는 그만의 인장을 앞으로 만날 건축물들과 비교해볼 수 있어서다. 언덕 부지라는 점에 주목해 매킨토시는 학교를 성처럼 웅장하면서도 직선과 곡선을 절묘하게 배치해 리듬감을 주었다. 여기서 엿보이는 직선의 반복은 그 또한 당대 많은 예술가들이 매료되었던 일본풍 예술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 알 수 있는데,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통해 전파된 일본의 문화는 유럽에 디자인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크게 일조했다. 건물 외관의 창처럼 내부 역시 직선, 곡선의 반복을 통해 공간을 동양의 창호문처럼 패턴화했고, 이는 단조로워 보이면서도 균형미와 조형미가 돋보이는 매킨토시만의 아르누보 스타일을 보여준다. 


예술학교에서부터 도보로 5분 정도 걸으면 ‘윌로우 티 룸’에 닿는다. 글래스고의 차가운 공기에 언 몸을 차 한잔으로 녹이기 좋은 장소다. 1896년과 1917년 사이에 작업한 이 공간은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토탈 디자인’ 개념을 강조한 매킨토시의 작업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건축가보다는 인테리어, 가구, 조명 등 산업 디자이너로서 매킨토시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공간인데, 티 룸의 의자부터 조명, 벽면 디자인, 테이블웨어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 자신이 건축한 집 주소로 뜬금없이 소품을 보내고 건축주에게 영수증을 청구했다는 프랭크 로버트 라이트의 일화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다행히 매킨토시는 애초에 토탈 디자인을 도입했고, 윌로우 티 룸은 그 결과 탄생한 매킨토시의 작품 갤러리와 다름없다. 이곳을 위해 디자인한 사다리 모양의 ‘래더 백 체어’가 여전히 홀을 지키는 티 룸 실내는 그의 인장과 같은 직선과 곡선 패턴의 조화로 완성했다.


ⓒRoss Sneddon/Unsplash


티 룸을 나와 글래스고 중앙역 방향으로 걸으면 도시의 중심이자 랜드마크 ‘라이트하우스’를 만난다. 사실상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이 빼곡한 도시에서 그나마 높은 곳이라 시티뷰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인데, 고작 7층 높이라 뉴욕이나 도쿄의 마천루를 기대하면 실망한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매킨토시를 검색하면 꼭 등장하는 나선형 계단 이미지의 실물을 발견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매킨토시가 설계한 곳인데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되는 공간이니 당연하겠지만 ‘매킨토시 센터’와 ‘매킨토시 타워(루프톱)’가 있어 쉽게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역시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은 나선형 계단의 꼭대기로, 위에서 아래를 찍으면 예술 사진 한 장은 건진다. 


끝으로 1906년부터 1914년까지 매킨토시와 아내 마거릿 맥도널드가 살던 집은 꼭 들러 볼 건축코스. 글래스고 대학교 내 헌터리안 갤러리와 함께 ‘매킨토시 하우스’가 있다. 부부가 함께 작업한 거울, 책상, 스테인드글라스, 전등갓, 벽난로, 벽면까지 몇 가지 오브제만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둘의 취향이 짙게 밴 공간이다. 갤러리를 포함한 4층 규모의 공간은 층마다 기능이 다른 협소 주택을 연상시키며, 건축과 디자인에 이어 말년에는 회화에도 남다른 조예를 보여줬던 예술가 매킨토시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최근 온라인을 통한 VR 투어 서비스도 마련해 글래스고로 날아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매킨토시를 만날 수 있게 됐다. 내 안의 건축 세계를 한층 더 쌓아 올릴 기회다. 


ⓒJacco Rienks/Unsplash


VR로 만나는 매킨토시 하우스

https://www.gla.ac.uk/hunterian/visit/mackhousevirtualtour/


* 해당 글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공식 블로그를 위해 작성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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