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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열 가족

by 숲song 꽃song
『옆집 엄마는 무슨 재미로 사나?』에서는 옆집 엄마(숲 song 꽃 song)가 마흔 즈음에 써 둔 습작글 중에서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일상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연재합니다. 담장너머 옆집 엄마네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웃음, 조그마한 삶의 팁이라도 챙겨가실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옛날에는 달빛도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살았다고 했던가?

보름달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속에 묻어 둔 그리움처럼 꼭 생각나는 말이다. 나는 이 말처럼 이웃 간의 정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표현해 놓은 말을 아직 알지 못한다. 이웃 간에 오고 가는 정이 얼마나 깊었으면 하늘에 떠 있는 달빛마저도 나눠가졌다고 표현했을까? 가만히 속으로 되뇌다 보면 눈앞엔 당장이라도 그 옛날의 낮은 담장 너머로 부지런히 넘나들던 따스한 손길이 보이고, 가난했지만 철철 정이 넘쳐흐르던 함박웃음소리가 귀에 잡힐 듯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퇴근길, 오랜만에 하늘을 보니 섣달 보름달이 살짝 가리고 있던 손바닥을 슬며시 치우며 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혼자 보기 아까운 달을 놔두고 집안에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를 맞는 아들 녀석이 급히 냉장고에서 무얼 꺼내더니,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았다. 먹음직스럽게 통깨가 살살 뿌려진 막 담근 김장김치였다. 조금 전, 앞 집 아주머니께서 맛보라고 주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앞집 아주머니 본 지가 서너 달은 되는 것 같다. 양쪽 집이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서로 얼굴 마주치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배가 고팠던 차에, 김치 한 포기 꺼내어 쭉쭉 찢어 놓고 밥 한 그릇씩을 뚝딱 해치웠다. 아이들은 빈 그릇에 무얼 담아 돌려 드릴 거냐며 김치전을 부쳐서 드리자는 둥, 샌드위치는 어떠냐는 둥, 갑자기 식탁 위의 대화에 활기가 넘쳤다. 김치 덕분에 모처럼 아이들과 즐거운 수다를 떨다 보니, 큰아이가 7살이 될 때까지 살았던 OO아파트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때보다 훨씬 깨끗하고 넓은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에도, 아이들이 한동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정이 든 아파트였다.


좁고 허름했던 5층 짜리 서민아파트.

그곳에서 우리는 같은 통로식구들을 '한 지붕 열 가족'이라 부르며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았었다. 아이들도 한 식구처럼 어울렁 더울렁 더불어 사는 행복을 알게 해 준 그곳을 영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옆집 보일러가 터지는 바람에 아랫집이 온통 물바다가 되어 버린 날, 인사마저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지내다가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서로 무척 민망한 꼴이 되었다. 일을 수습하고 난 양쪽 집에서는 이 기회에 같은 통로를 이용하는 10 가구 모두 통성명이라도 하고 지내자며 저녁식사자리를 마련했다. 얼결에 모인 열 가족은 진즉에 이런 자리가 필요했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10 가구를 '한 지붕 열 가족'으로 칭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간단한 다과회 자리를 마련해 보자고 했다.


한 지붕 열 가족으로서의 새로운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연령도 직업도 제 각각이었던 열 가족이 한 식구처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사람 냄새나는 소박한 삶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소시민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계절이 바뀔 때나 특정한 음식을 먹을 때, 유난히 아름답고 따뜻한 것을 대할 때면 그 시절이 몹시 그리워진다.




한밤 중 타박타박 늦은 귀가를 재촉하는 발소리는 제과점을 운영했던 우리 위층 부부를 생각나게 한다. 두 아이들을 겨우 재워놓고 고단한 하루를 접으며 막 잠이 들 무렵이면 도란도란 낮은 목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들려오는 발자국소리. 종일토록 함께 일하셨을 텐데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남아있어 날마다 이야기꽃을 피우며 올라오실까 귀 기울여 살짝 들어보고 싶은 궁금증과 부러움을 안겨주셨던 분들이다.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낮은 목소리와 발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은 층마다 잠깐씩 머무는 것이었다. 궁금하여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 집 앞에서도 잠깐 멈추는 듯하더니 툭하고 우유 투입구안으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일까 궁금하였지만 일어나기 귀찮아 그냥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준비하러 나오다가 문득 전 날밤 일이 생각나 현관 앞으로 가보았다. 그곳엔 식빵 한 봉지가 꼬박 밤을 새운 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곧장 남편에게 달려가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여보, 살다 보니 하늘에서 빵이 떨어지는 날도 있네요!

그 식빵 한 봉지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이웃과 다정한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고 살지 못하던 나에게 매우 특별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뒤로도 우리 집 현관 문고리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빵이나 식빵 봉지가 아침해처럼 환하게 걸려 있곤 하였다.



매운탕이나 도토리묵을 먹을 때면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너털웃음이 일품이었던 일층 아저씨네가 생각난다. 낚시를 좋아하셔서 곧잘 민물고기를 잡아오시곤 했던 일층 아저씨네는 물 좋은 붕어라도 잡아온 날이면 푸짐한 매운탕을 한 솥 끓여 놓고, 퇴근 후 막 돌아와 몹시 허기진 한 지붕 식구들의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주시곤 하셨다. 산에 가서 직접 따오신 도토리를 잘 말려 묵이라도 쑤는 날에는 또 어떠하셨던가? 시간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당장 묵 맛보러 내려오라고 엄명을 내리셨다. 도시의 서민아파트 좁은 거실 안, 열 가족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피워내는 웃음꽃 속에서 맛보았던 도토리 묵은 얼마나 맛있었던가! 나는 가끔 그때의 일들을 떠올리노라면 혹시 꿈속의 일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한 지붕 열 가족의 여름은 아파트 앞에 펴놓은 두 개의 평상에서 시작되곤 했었다. 저녁밥을 먹고 난 후 하나 둘 모여드는 평상에는, 누구네 집에서 가지고 나왔는지 모를 찐 감자나 옥수수가 떨어지지 않았다. 어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원한 맥주를 나누거나 살아가는 정담을 나누는 동안, 아이들은 그 옆 마당에서 저희들끼리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게 신이 났었다.

어느 날은 아래층 아저씨가 남편에게 제안을 하셨다. 11시쯤이 되면 취침나팔로 단소를 불어 달라는 것이었다. 모두 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 소리에 잠이 들겠다는 것이었다. 11시가 되자 베란다문턱에 걸터앉은 남편이 '청성곡'을 한 곡조 뽑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작은 소란이 일더니


아래층에서 '얼씨구'


위층에서 '좋다'


하고 흥에 겨운 추임새가 이어졌다. 말할 것도 없이, 그날 밤 남편의 단소연주는 취침나팔이 아닌 기상나팔이 되어버렸다. 우리들의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밤이 영그는 가을날이면 열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알밤 줍기 행사로 울긋불긋 단풍산만큼이나 화려하고 풍성해졌다. 야산에 가득 심어 놓은 밤나무를 주체하지 못하셨던 5층 아저씨 네가 기꺼이 한 지붕 식구들에게 밤 농장을 내놓으셨던 것이다. 각자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과 식구 수만큼의 고무장갑, 그리고 알밤을 담아 올 자루 몇 개면 그날 행사의 준비는 끝이었다. 그런 날이면 큰맘 먹고 가게문을 닫는 제과점 아저씨 네는 박스 가득 가지가지 종류의 빵을 간식거리로 준비해 오셔서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 주셨다. 미리 농장 안을 깔끔하게 다듬어 놓은 후, 밤송이까지 털어놓으신 아저씨의 배려 덕분에, 먹을 만큼 먹고 놀만큼 놀다가 운동 삼아 한 번씩 신나게 알밤을 주워 담다 보면, 준비해 온 자루는 금방 가득 채워졌다. 가을날의 알밤 줍기 행사는 어른들에게는 그동안 묻혀 있었던 추억을 줍는 날이었고, 아이들에겐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날이 되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양껏 알밤을 담아 가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아셨던 5층 아저씨네. 가을과 겨울은 이 집 저 집 가릴 것 없이 그때 주워 온 알밤을 쪄먹는 재미에 훌쩍 지나갔다. 그러니 지금도 알밤이 영글어 가는 계절이 되면 어찌 그분들의 알밤만큼이나 포근한 마음이 생각나지 않겠는가?


그 당시, 기쁨은 두 배, 슬픔은 절반으로 나누며 오순도순 살아가던 한 지붕 열 가족의 모습은 이웃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었다. 오죽 부러웠으면 주변사람들이 프리미엄 듬뿍 얹어줄 테니, 누구 집 팔 사람이 없냐고 농담 같은 진담을 하였을까?



'한 지붕 열 가족'시절은 좌우 살피지 말고 앞만 보고 내달리라고 재촉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에게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뒤, 하나 둘 넓은 평수의 고층아파트로 이사감으로써 아쉬운 막을 내렸다.

개인주의의 편리함을 내세우며 이웃과의 관계에 무관심했던 나에게는, 진정한 행복은 가정 안에서만 머물지 않음을 무언의 말씀으로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팍팍한 삶의 고비고비마다 정겹고 푸근한 마음속의 고향이 되어 오래도록 우리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리라는 든든함을 안겨 주었다.


또다시 세밑이 다가 오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아이들의 엄마이자 아내, 교사로서 어느 해보다도 행복했던 한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웃과 자주 나누지 못한 정이 그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들의 제안대로, 빈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부친 김치전을 담아 들고

"보내주신 맛있는 김치 덕분에 우리 집 식탁이 오랜만에 풍성했어요."

라는 말과 함께 이웃집에 따뜻한 인사를 나누러 가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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