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는 울림이 된다

by 릿다


언어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사고와 언어』에서 언어를 사고의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도구로 보지 않았다. 그는 “언어는 사고를 표현할 뿐 아니라, 사고를 형성한다.”고 말하며, 언어는 의미를 매개로 한 사회적 기호로 규정했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 안에서 조직되고 언어를 통해 확장된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른과 아이가 떠올리는 세계는 다르다. 아이는 ‘산’이라는 말에서 그림책 속 푸른 언덕을 떠올리고, 어른은 기억 속의 풍경이나 살아온 시간의 무게를 느낀다.
그럼에도 둘 사이의 대화가 가능한 이유는, 의미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 말이 가르키는 현실의 대상이 서로에게 겹쳐 있기 때문이다. 비고츠키는 이러한 겹침의 지점에서 언어와 사고가 서로를 변화시키며 함께 자라난다고 보았다.


언어가 사회적 의사소통이 될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언어는 개인의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의 경험이라는 다리를 통해 객관적 현실과 이어진다.


그리고 비고츠키는 색채어를 통해 언어의 기호적 성격을 설명한다. ‘파랑’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단지 소리를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소리에 결합된 이미지와 감정, 그리고 문화 속에서 축적된 기억을 함께 떠올린다.

‘파랑’은 음성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해 온 의미의 집합이며, 언어는 그렇게 공동체의 경험과 기억이 중첩되어 형성된 사회적 기호의 체계다.

이 사실을 분명히 느낀 것은 일본에 머물던 어느 날, 재일교포 모임에 참석했을 때였다. 참석자 대부분은 교포 2~4세대였고, 일상에서는 일본어로 말했지만 부모를 부를 때만큼은 한국어를 선택했다. 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엄마, 아빠”가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렀다.

일본어 문장 속에 그 말이 섞이는 순간, 대화의 결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그것은 마치 그들만이 공유하는 암호처럼 들렸고 그 안에는 문화적 그리움과 정체성, 그리고 사회 속에서 형성된 존중의 감정이 함께 응축되어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라는 호칭은 단순한 부름이 아니었다. 그 말 속에는 세대의 기억과 이주의 역사, 정착의 시간,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 온 삶의 궤적이 고요히 스며 있었다.

언어는 결코 개인의 내부에서 홀로 생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시간 속에서 축적되며, 기억을 통해 울림을 얻는 사회적 존재다.


누군가의 삶과 경험, 공동체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집단의 목소리, 언어는 그렇게, 나와 우리를 이어주는 하나의 진동이 된다.

그리고 그 진동이 확장되는 순간, 언어는 내게 우주의 신비를 드러낸다. 낯선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생각하며,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순간 나는 공간(space)을 넘어 존재하는 어떤 보편성(universal)을 감지한다.

언어는 다시 나를 질서와 의미, 그리고 아름다움이 함께 숨 쉬는 코스모스(cosmos)로 이끈다. 그 끝없는 신비 속에서 나는, 내 안에서 울리는 ‘의미’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언어는 사고를 돕는 도구에 그치지 않은다. 그것은 기억이며 울림이고, 인간을 우주로 향하게 하는 하나의 창이라는 것을.


비고츠키는 『사고와 언어(思考と言語)』에서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국어의 깊이 또한 다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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