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시타마치(下町) 나가야에는 가시면 안 됩니다! 가토님 귀에라도 들어가면, 저까지 목이 달아납니다!”
가신 하시모토가 팔을 벌려 길을 막았다.
타케시는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는 귀족의 체면보다 장난꾸러기 소년의 기운이 배어 있었다. 그는 몸을 홱 돌려 화단을 딛더니, 담을 가볍게 넘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봐!”
뒤에서 하시모토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지만, 타케시는 이미 바람 속으로 달려나갔다.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바람을 가르며 달리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귀족의 옷이 아닌, 평민 아이들이 입는 짧은 바지와 무명옷이 허공에서 펄럭였다.
바람결에 갈대잎이 뺨을 스칠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와아아-!”
그 외침이 허공을 타고 번져 갔다. 자유란, 그렇게 목청을 지나 하늘로 흘러나가는 것이었다.
나가야에 가까워지자 북소리가 땅을 울렸다.
“동동, 동동동-.”
이어 숲속 어딘가에서 고함이 터졌다.
“몰아! 이쪽으로 몰라구!”
“거기가 아니야! 멍청이들, 놓치면 어쩌자는 거냐!”
잠시 뒤, 숲이 고요해졌다.
풀숲이 흔들리며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속에 스승 명이가 있었고, 그 옆에는 언제나처럼 수현이 서 있었다.
수현의 어깨에는 새총으로 잡은 참새와 메추리가 꼬챙이에 꿰여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릴 때, 햇살이 먼지처럼 그 주위를 감쌌다.
그녀를 힐끗 바라본 타케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계집... 묘하게 자꾸 눈이 간단 말이야.’
명이에게 글을 배우는 동안, 수현은 늘 툇마루 끝에 앉아 주인을 기다리는 하인 같았다. 그러나 이곳, 나가야에서의 그들은 달랐다. 주인과 종의 경계가 희미했고, 함께 밥을 먹고, 농담을 나누며, 때로는 다투기도 했다. 그 낯선 평등의 풍경이 타케시에게는 신선하고, 어딘가 부러운 일이었다.
조선의 왕손 명이는 타케시와 동갑이었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품성과 학문의 깊이는 이곳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여섯 살 어린 나이에 히고(肥後, 후쿠오카)로 끌려왔을 때부터 그는 남달랐다.
그의 붓글씨에는 기품이 서려 있었고, 학문이 깊은 아버지조차 명필이라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타케시는 속으로 비웃었다.
‘저 녀석이 저 어려운 문장의 뜻이나 제대로 알기나 할까’
하지만 아버지의 눈빛에 깃든 진심 어린 감탄만큼은, 그 역시 부러웠다.
그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게타를 신은 채 흙투성이 발로 나가야로 들어섰다. 그 모습만 보면 다이묘의 아들이 아니라, 동네 개구쟁이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였을까. 이상하리만치 그는 이곳의 풍경 속에 잘 어울렸다.
집성촌 사람들은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그를 보자 미소가 사라졌다. 어색하게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수현도 들고 있던 참새와 메추리를 황급히 뒤로 감췄다.
타케시는 그 모든 것을 못 본 척하며 싱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우물가를 지나 대장간으로 향했다.
“탕, 탕.”
벌겋게 달궈진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대장간 안에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거리낌 없이 안으로 들어서는 타케시를 보자, 억쇠할아범이 망치를 내려놓으며 허리를 깊숙이 굽혔다.
“일전에 말씀하신 검은 이미 완성했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곧 갖다 드릴 텐데, 어찌 이곳까지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말은 공손했으나, 눈빛에는 경계가 어려 있었다. 타케시는 대꾸 대신 시원하게 웃었다.
“나가야에 오고 싶었거든. 여긴 내겐 편한 곳이야. 그런데, 그대들은 아닌 것 같지만- 하하하”
그때 명이가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문틈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그들의 얼굴 위에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참새와 메추리를 구우려는데, 함께할 텐가?”
타케시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우물가에서는 여인들이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작은 참새와 메추리를 붙잡아 털을 뽑고 석쇠 위에 올리자, 고소한 냄새가 나가야를 가득 채웠다.
사내들은 옹기종기 모여 킁킁거리며 침을 삼켰다.
“왜 야마토 놈들은 육고기를 못 먹게 하는 걸까?”
“그러게 말이여. 난 가족들보다도 육고기가 더 그립네. 마늘에 갖은양념을 버무린 산적 한 점에 밥 한술 먹어보다 죽으면 원이 없겠네.”
“호강스러운 소리 하네. 나는 양반들이 먹다 남긴 돼지 앞다리라도 좀 뜯어보면 원이 없겄어.”
모두 그 말에 웃었지만, 입속에는 침이 고였다.
“야마토가 부처님의 나라라잖아. 높은 양반들이 다 불자라서, 나라님이 육고기를 못 먹게 하는 거래.”
“허허, 부처님 나라에서 허구헌날 전쟁이나 하고 사람을 잡아다 부려먹는다니, 그게 무슨 이치람.”
웃음 섞인 푸념이 오가던 중, 타케시가 다가오자 순식간에 대화가 끊겼다.
“와- 냄새 좋다. 맛있겠는걸.”
그는 능청스럽게 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안상궁이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말했다.
“가토님께 들키면 큰일 나실 텐데... 정말 드실 겁니까?”
타케시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야마토에서는 귀족에게 육식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아버지도 전장에 나가시기 전엔 매사냥을 즐기셨잖아. 그리고 오늘 내가 참새를 먹었다는 걸, 아무도 말하지 않을 거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손이 재빠르게 참새를 집어 들었다. 명이도 옆에 앉아 참새 한 마리를 들어 다리를 떼어내더니, 안상궁과 수현에게 건넸다.
두 여인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고, 감격한 듯 서로를 바라보다가 조금씩 아껴 먹으며 미소를 지었다. 고기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한 점이었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타케시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마음 한구석에 번져 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성안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던, 나가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만족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