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캠프는 없다

기댈 친정이 없더라도

by 봄비


아이는 성장하며 세상을 향한 탐험을 떠난다. 아이는 새로운 것이 가득한 세상을 발견하는 성취감을 느끼지만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안전기지 즉 베이스캠프인 엄마를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둘째 겨울이는 이제 돌이 갓 지났다. 집 안 곳곳을 탐색하며 방문을 열어 들어가기도 하고 서랍장을 열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어놓기도 한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탐색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멀리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는 "음~마" "음~마"하며 다가와 안긴다. 이 과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된다. 아이가 바라보는 새로운 세상은 신기하고 재미있지만 가끔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안겨 잠시 위안을 받고 충전을 한 뒤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은 일생을 살면서 계속 반복된다.


이제 내게 베이스캠프는 없다. 친정이 더 이상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지치고 힘들 때 찾아가고 싶은 베이스캠프는 없어졌다.


내게도 엄마가 위안이 되었을 때가 있었다. 결혼 전까지는 가끔이지만 엄마에게 가는 길이 좋았다. 치열했던 서울살이가 지치고 힘들었을 때 집에 가는 것이 휴식이었던 때가 있었다. 엄마에게 힘든 내색을 한 적은 없지만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편안하게 잠들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세상이라는 전쟁터로 돌아가던 때가 있었다.


대학교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전주에 내려갔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전주행 버스를 타고 버스가 출발하면 그때부터 설렜다. 세 시간 남짓 오랜 시간 차를 타야 했지만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창 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려보는 시간도 좋았고 집에 간다는 기분만으로도 쉬는 것 같았다. 엄마가 있는 집이 진짜 내 보금자리 같았다. 기와집 모양으로 만든 전주 톨게이트는 모습만으로도 마음에 평안과 안정을 주었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부터는 고된 서울살이의 시름도 잊혔다. 편안하고 안락한 내 집, 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엄마는 내가 도착할 즈음 터미널 앞에 늘 마중 나와있었다. 그리고는 “우리 딸 왔어?”라며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다. 엄마와 만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재잘재잘 떠드는 것이 그때 내게 숨 쉴 구멍이었다. 고향에 내려가는 기분은 그런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설렘은 없다. 고향이 친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세상에서 제일 편했던 엄마가 불편해지면서 안락하고 포근했던 베이스캠프는 사라졌다. 엄마의 따뜻한 밥, 집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내 집에 왔다는 편안함과 안락함, 엄마가 날 바라보며 웃는 얼굴이 그립다. 이런 것이 정서적 독립이라 생각하니 슬프다. 그래도 정서적 안정을 주는 든든한 남편을 만났으니 기댈 친정이 없더라도 괜찮다며 나를 다독여본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주 오래도록 든든하고 흔들리지 않는 베이스캠프가 되어주고 싶다. 누군가 내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노년이 되고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도 우리 아이들이 기쁘고 즐거울 때 말고 지치고 힘들 때 엄마를 찾아왔으면 좋겠다. 아마 내가 바라는 엄마는 힘들 때 찾아가고 싶은 엄마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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