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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Jul 17. 2024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심리학을 공부합니다


엄마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이 생각만큼 따라와 주지 않는다. 방법을 모르겠으니 답답하고 엄마를 생각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차올라 죄책감이 들었다. 그 무렵 주변 지인들에게 엄마와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원래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주변에 털어놓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얘기해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면 해답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지인에게 고민을 털어놨을 땐 본인도 엄마와의 사이가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고 남자인 지인은 장모님과 사이가 안 좋다며 비슷한 일화를 들려줬다. 이야기를 나누며 이 시대에 많은 이들이 같은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각자의 사정은 다르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도 다르다. 울며 어찌할 줄 모르겠다며 착한 딸로 살고자 하는 이도 있고 갈등이 심한 부모님과 아예 연락을 끊고 사는 이도 있다. 나는 둘 다 아니었다. 엄마를 깊이 이해해보고 싶었다. 문제가 있을 때 정면돌파하는 것이 해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모른 척하고 싶은 일, 회피하고 싶은 일을 그냥 덮어두면 언젠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다. 엄마와의 일도 그랬다.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해결이 가능하다. 나의 해결책은 공부였다. 처음에는 책에서 답을 찾다가 유튜브 영상까지 찾아봤다. 저명한 심리학자들의 책과 영상은 부정적인 감정을 부추겼다. 해답을 찾으려다 보니 심리학 서적을 많이 읽었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사이버대에 입학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대학생이 되어 강의를 듣는 것이 낯설고 재밌었다. 엄마 때문에 시작한 공부인데 아이를 키우는 일에도 나를 이해하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 엄마는 내게 아직도 큰 자극을 주고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엄마를 통해 나를 보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심리학 이론을 공부하면서 과거 여러 순간을 마주했다. 직장생활에서의 관계, 사춘기 시절 친구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등 많은 관계들 속에서 지난날 내 행동과 상처를 만났고 그 끝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태어나 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 첫 번째 대상은 엄마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체득한다.


가끔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나오는 말투나 반응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상충되는 말을 툭 내뱉고는 몹시 당황하곤 한다. 평소 엄마가 하는 말이 무의식에 깔려있어 의지와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꽤 자주 엄마를 생각하고 떠올리게 된다. 엄마와의 관계는 이처럼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엄마가 되고 나니 말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우리 아이들도 나를 통해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를 잘 이해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단단한 엄마가 되기로 다짐해 본다. 나를 잘 이해하기 위해 나의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땐 새로운 이론을 배울 때마다 '맞아. 우리 엄마가 이러는데...' 혹은 '이런 방어기제로 엄마가 그런 거구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어느 이론에도 엄마의 결점은 등장했고 그때마다 묘한 쾌감도 느꼈다. 엄마가 결점투성이라서 내가 힘든 거라고 확인받고 싶었다. 이해 안 되는 엄마의 말과 행동은 심리학 이론을 배우며 대부분 이해되었다. 엄마를 떠올리면 부정적인 감정이 한없이 차올랐던 시기를 지나 차츰 엄마의 좋았던 점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변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내려앉으니 엄마가 다르게 보였다. 엄마가 하는 모든 것을 거부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뭐라도 사주려고 하면 무조건 됐다며 손사래를 치던 일을 멈추고 뒤로 한걸음 물러서봤다. 엄마가 미소 지으며 계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음식을 만들려고 하면 힘들게 만들지 말라고 사 먹으면 된다며 한사코 말리던 내 모습이 보였다. 엄마에게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무침을 해달라고 졸랐다. 엄마가 들뜬 표정으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의 작은 행복을 눈으로 보고 나니 그동안의 내 모습이 후회되었다. 그런 작은 변화가 우리 사이를 조금씩 편하게 만든다. 엄마를 다른 시선으로 보니 전과 다른 관계가 되었다.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아는 것이 많아진 만큼 보이는 것이 많아졌다. 사람은 입체적인 존재라는 것, 누구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는 것, 내 마음이 힘들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엄마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대인관계도 조금 편해졌다. 엄마 덕분에 한 뼘 성장한다.


엄마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사람이다. 우리 모녀는 서로 사랑하지만 소통은 되지 않는다. 각자 생각하는 사랑이 다르지만 서로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거면 된 거라고 생각해 본다. 엄마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믿기로 했다. 전에는 엄마진심을 뼛속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처럼 끝까지 파고들어 정말 행복한지 물었다. 그러다 보면 알고 싶지 않은 진실과 속마음을 듣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엄마가 말하는 대로 듣고 믿고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단순해지기로 했다. 엄마가 원하는 관계가 아닐지라도 어쩔 수 없다. 엄마가 원하는 건 딸이 애쓰는 모습은 아닐 거라는 걸 알기에 원하는 대로 맞춰주려 애쓰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 맺는 법을 알아가면 좋겠다. 그러다 언젠가 서로의 마음이 맞닿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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