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놓아주는 시간
"너를 사위한테, 너희 시댁에 뺏긴 거 같아."
"내가 엄마 거야? 뺏기긴 뭘 뺏겨"
"그럼 네가 엄마 거지. 누구 거야?"
엄마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다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이제는 엄마와 멀리 떨어져 나와 엄마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엄마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밀착된 삶을 살아왔었다.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서로가 받아들여야 한다. 엄마가 가진 남편에 대한 미움은 나에 대한 왜곡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면 장모님 배에 너와 처남이 타고 가다가 결혼을 하면서 옆에 있는 배에 옮겨 타는 거야. 옆에 있는 배는 우리 가족의 배지. 배를 타고 멀리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같은 방향으로 함께 항해하는 건데… 장모님은 네가 다른 배를 타고 멀리 떠나가버리는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 그러니까 장모님 배에는 장모님이 혼자 타고 계시니까 외롭다고 느끼신 거 같아. “
엄마에게 모진 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해준 말이다. 가끔 남편의 통찰에 무릎을 탁 친다. 엄마에게 상처를 받기보다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남편은 위기의 순간마다 정서적으로 나를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다.
그때는 엄마가 외롭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엄마를 더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내가 느끼는 정체감에 대한 혼란이 더 컸기에 엄마에 대한 생각을 애써 뒤로 미뤄버렸다.
엄마를 만나고 온 뒤로 꽤 오랜 시간을 눈물로 지새웠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감정이 더 크게 요동쳤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렀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와 엄마를 생각하는 일 자체가 고통스러워졌다. 그때는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집어삼켜 우연히 엄마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 격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지켜보던 남편은 내게 심리상담을 권했고 전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던 센터에 예약을 해줬다. 예약 당일 모유수유를 하고 있던 아이를 주차장에서 수유하고 남편에게 맡긴 뒤 상담을 하러 갔다. 엄마는 왜 나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는지 원망의 마음이 솟구쳤다. 수유하고 가느라 상담시간에 10분 정도 늦었고 나는 시간이 아까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속사포처럼 이야기했다. 아이를 수유하는 와중에 상담을 하러 온 상황이 기가 막히고 억울했다. 주된 이야기는 엄마가 남편에게 했던 말과 행동, 그리고 내가 상처받았던 이야기들이었다. 가만히 듣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님께서 남편 분을 많이 좋아하셨나 보네요. 사위를 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씀하시지 못하셨을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편한 사람에게 감정을 잘 드러내거든요. “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엄마가 어떻게 우리에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은 '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엄마가 한 비수의 말은 '나 외로워'라는 외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사위한테 저렇게까지 말하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위가 정말 편했나 보다'로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 누그러지고 미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단 어머님에게 시간을 좀 주시고 날이 선선해지는 가을이나 겨울쯤 어머님에게 편지를 써보세요. 엄마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있다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표현해 보세요. 그래야 유진님 마음도 조금 편해지시지 않을까요?"
엄마가 미운 마음과 죄책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나의 감정을 느끼셨는지 덧붙여 조언도 해주셨다. 상담을 받고 나니 마음이 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상담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조언처럼 아직까지 엄마에게 편지를 쓰지는 못했다. 언젠가 내 마음이 준비가 되면 엄마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우리 관계가 괜찮아질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미안하고 아프다.
이제는 엄마와 거의 통화를 하지 않는다. 아이와 영상통화를 하며 몇 마디 주고받거나 용건만 간단히 하고 전화를 끊는다. 나는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히 묻지 않고 엄마도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내게 전화를 건다. 그날 이후 엄마도 내 눈치를 많이 보고 나도 엄마 눈치를 본다. 엄마와의 심리적 거리는 많이 멀어졌지만 여전히 엄마를 생각하면 애틋하다.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전과 다름없이 지낸다. 예전 같았으면 함께 있는 내내 엄마의 눈치를 살피느라 마음이 불편했을 텐데 이제는 그런 감정이 오래가지 않는다. 내게 일어난 큰 변화이다.
얼마 전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말했다.
"나는 내 거지. 엄마 게 아냐."
"그래 너는 니 거지."
엄마도 우리의 변화를 받아들인 것 같다. 점점 멀어져 가는 딸을 인정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놓아줄 시간이 필요했고 나도 엄마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할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