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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Jun 26. 2024

엄마와 나 사이의 균열

엄마로부터 정서적 독립하던 날

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가을이 되었다. 가을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기분 좋은 풀냄새가 난다. 마지막 글을 쓰고 난 뒤 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동안 글을 쓰고 싶었지만 글이 여간 써지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에 큰 혼란이 왔고 꽤 오랜 시간 동안 헤맸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나는 엄마가 되었다. 몇 달 뒤면 세돌이 되는 첫 아이와 뱃속에 자라고 있는 둘째까지 나는 곧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엄마가 되고 나니 내 세상은 모든 면에서 달라졌다. 일상도 생각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전과 많이 다르다.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수없이 고민한다. 그러다 문득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고민하기 전에 우리 엄마를 먼저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나, 각별하고 애틋한 사이였던 우리. 이제는 불편해진 엄마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엄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과정을 글로 적고 싶었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 때 아빠와 이혼했다. 아빠는 여러 직업을 가졌었지만 한 가지 일을 오래 한 적이 없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열심히 산 적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늘 누워서 팬티만 입고 TV를 보거나 동네 아저씨들과 고스톱을 치거나 술을 많이 마시는 모습이다. 엄마는 우리가 아주 어릴 때부터 능력도 의지도 없는 아빠를 대신해 가장역할을 했다. 엄마는 살림과 육아, 일까지 다 해내는 슈퍼우먼이었다. 보기만 해도 속 터지는 한량 같은 남편과 어린아이들까지 돌봐야 했을 엄마의 무게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내가 엄마와 같은 상황이었더라면 엄마처럼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의 삶을 갈아 넣은 나와 동생은 엄마의 자랑이자 인생의 전부이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때 "아빠랑 떨어져 살면 어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펑펑 울면서 아빠랑 같이 살고 싶다고 엄마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빠를 많이 좋아했다. 집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아빠라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빠가 집에 있는 것이 좋았다. 어릴 때는 눈에 보이는 대로 느꼈을 테니 매일 짜증 내는 엄마보다 유쾌한 아빠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때가 몇 살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의 삶의 무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어렸을 것이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나를 무척 힘들게 한다. 엄마의 굳은 결심을 무너뜨리고 발목을 잡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땐 엄마가 능력이 있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때였다.  


엄마는 아마도 어렵게 했던 결심을 접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를 갱생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아빠에게 여러 번의 기회를 줬다. 두 번의 사업을 차려줬고 아빠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줬다. 아빠는 처음에는 열심히 하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태해졌고 두 번의 사업은 모두 망했다. 그렇게 두 번째 사업이 망했을 때 우리 집은 엄청난 빚을 떠안았다. 부모님은 빚 때문에 위장이혼이라는 명목으로 이혼했고 얼마 뒤 아빠는 빚쟁이들에게 쫓겨 도망치듯 집을 나갔다. 그리고 부모님은 부부로서 완전히 관계를 끝냈다.


엄마를 이해할 정도로 크고 나니 아빠가 한심해 보였고 엄마가 너무 불쌍했다.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속이 후련할 정도였다. 엄마가 드디어 아빠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혼 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에게 사업을 차려주며 일을 그만두었고 여기저기서 많은 빚을 졌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고난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가족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릴 때는 엄마와 감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교류가 적었다. 방학이면 외갓집에 가서 지냈고 하교 후에는 동생과 밤늦게까지 엄마를 기다렸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바빴고 항상 지친 모습이었다. 아주 어릴 때는 항상 엄마의 눈치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사춘기가 되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갈 때쯤 엄마가 눈에 잘 보이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엄마의 삶의 무게과 아픔이 보였고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엄마의 지난 삶이 어땠는지, 우리가 현재 재정적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와 같은 것들을 물었고 엄마는 그때부터 내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정서적으로 밀착되었고 엄마가 나고 내가 엄마인듯한 모습으로 오랜 시간을 지냈다.


우리 가족은 똘똘 뭉쳐서 서로를 위로하며 힘든 시기를 잘 이겨냈다. 동생은 20살이 되자마자 돈을 벌겠다고 부사관에 자원입대했고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저마다 다른 듯 같은 마음의 상처를 품고 살았다. 이혼가정이라는 상처, 경제적 어려움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고난을 극복해 내는 것을 목표로 살다 보니 점차 형편이 나아졌고 개인적인 성취도 이뤄냈다. 오히려 내게는 고난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앞이 보이지 않던 나에게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이 잘 풀리고 좋은 남자를 만났다.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이 되었을 때 결혼을 했다. 그리고 3년이라는 기다림 끝에 소중한 첫 아이를 만났다. 우리 가족에게는 첫 아이라 모두 너무 기뻐했고 행복해했다. 특히 엄마가 많이 좋아했고 우리 가족에게는 행복한 일들만 있을 줄 알았다.


아기가 태어나고 조리원을 나와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한 달 동안 받았다. 엄마는 산후도우미가 끝나는 날 애기도 봐주고 산후조리도 도와주러 와서 며칠을 머물렀다. 그 기간 동안 엄마는 우리 부부에게 서운함을 많이 느끼고 돌아갔다. 엄마가 돌아간 뒤로 엄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애써 모른척했다. 신생아를 키우며 엄마의 기분까지 살필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아이가 갓 백일을 지났을 즈음 여느 때와 같이 엄마는 전화를 걸어왔고 우리는 서로 틱틱거리며 날 선 통화를 이어갔다. 뭔가 쌓여있는 채로 통화하는 것이 불편했던 나는 엄마에게 도대체 뭐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절대 아니라며 내게 시비 걸지 말라는 말로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렇게 꼬리의 꼬리를 무는 수수께끼 같은 대화 끝에 엄마는 결국 서운함을 내비쳤다.


"절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네가 자꾸 긁잖아. 너한테 서운한 게 아니고 사위한테 서운한 거야."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엄마의 비난의 화살은 내가 아니었다. 엄마는 그동안 정확히는 지난 3년 동안 홀로 쌓아온 남편에 대한 불만과 서운함을 마구 쏟아냈다. 엄마가 남편에 대해 지적한 부분들은 대체로 사소한 것들이었다. 밥을 차려줬는데 맛있게 먹겠다는 인사도 없이 먹었다든가, 장보고 집에 올 때 짐을 들어주지 않았다든가와 같은 그 자리에서 바로 타박했으면 될 정도의 사소한 문제였다. 남편의 성향이 엄마와 전혀 다르다는 것도 문제였다. 엄마는 섬세하고 감정적인 사람인 반면 남편은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엄마가 하는 이야기에 서글서글하게 받아주는 사위였더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남편은 팩트위주로 건조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남편의 그런 면이 엄마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장인어른이 없어서 그런지..."라는 말을 덧붙이는 걸 보면 엄마의 자격지심도 발동했던 것 같다.


물론 엄마가 지적하는 남편의 그런 면이 내게도 보일 때가 있다. 다행히도 나는 남편과는 성향이 잘 맞아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는 편이다. 남편의 말에 기분이 나빠지면 나는 바로 그 부분을 지적하고 이야기하는데 막상 남편 말의 진의를 듣다 보면 본심을 알 수 있다. 나는 남편의 건조한 말속에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엄마에게 남편의 진심이 닿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아마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엄마에게는 남편의 다소 딱딱한 말이 상처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 역시 남편과 비슷한 성향이고 엄마에게는 내가 하는 말도 날카롭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딸인 나에게는 관대하고 사위에게는 냉정했다. 그것이 내가 엄마에게 무척 실망한 지점이다.


완벽한 동상이몽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동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장서지간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시댁보다 친정이 더 편하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누가 갑자기 망치로 뒤통수를 아주 세게 한 대 내려쳐 얼얼해진 기분이었다. 그동안 엄마의 속마음도 모르고 행복해했던 나를 자책하면서도 엄마의 겉과 속이 다른 모습에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엄마에 대한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소한 불만으로 시작된 남편에 대한 비난은 점점 도를 넘어섰다. 엄마는 애초에 결혼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게. 내 맘에 드는 놈을 데려오지 그랬어. 대통령 아들이 와도 네가 아까워."


엄마의 말은 듣기도 거북했지만 내가 그동안 알던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것이다. 남편을 깎아내리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결혼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비난의 대상이 남편이라 할지라도 화살은 내게 더 큰 비수로 꽂혔다. 엄마는 거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남편을 향한 엄마의 비난의 말을 듣다 보니 내가 어떤 남자를 데려왔어도 이 일은 벌어졌을 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어떤 남자를 데려왔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알던 엄마는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버린 것 같았다. 이때 내가 겪은 상실과 절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동안 나를 지탱해 주던 근간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길을 잃었고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눈물로 며칠을 지새우고 그래도 엄마를 달래줘야겠다고 생각해 남편에게 엄마와 있었던 일을 솔직히 얘기했다.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이해해 줄 거라 믿었기에 주말에 엄마를 보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조금 충격을 받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담담하게 받아들여줬다. 남편에게는 지금도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 내게는 이토록 좋은 남편인데 엄마에게는 최악의 사위라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한 편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딸이 행복하다는데 엄마는 왜 내 행복은 보지 못할까라는 생각에 엄마에 대한 원망에 사무치기도 했다.


며칠이 지났으니 엄마가 많이 누그러졌을 거라고 기대했다. 엄마도 사실은 내게 그렇게 모진 말을 쏟아냈지만 전화를 끊고 후회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말이 되어 친정으로 갔고 아무 일 없는 듯 숨 막히는 하루를 보냈다. 아이가 잠든 뒤 엄마와 남편의 자리를 마련했다. 엄마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남편이 기다리다 내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장모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을 그때그때 말씀해 주셨으면 고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얘기 듣고 조금 서운했습니다."


"너 그렇게 매사에 분석적으로 얘기하지 마. 어른이 이야기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들어."


엄마는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말투로 말했다. 엄마는 남편의 기를 꺾으려는 듯 권위적인 말투로 말을 이어갔고 남편은 그저 "죄송합니다"라고 할 뿐이었다. 그냥 지켜만 보려고 했던 나는 화가 치밀었고 내가 한마디 보태니 엄마는 더 크게 화를 냈다. 남편과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남편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창피해 쥐구멍이 있다면 그냥 쏙 들어가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마도 엄마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부모의 권위를 세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것이 엄마의 외롭다는 울부짖음인 줄 몰랐다. 엄마는 점점 멀어져 가는 딸을 잡을 수 없어 외로웠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려가는 딸이 하염없이 멀어져 가는 것 같아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엄마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몰랐을 것이다. 나도 엄마가 왜 그러는지 몰랐으니까.


그 날밤 잠든 남편과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밤새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집을 잃은 것 같았다. 더 이상 친정은 내 집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늦은 새벽까지 잠 못 이루던 나는 잠든 남편과 아이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아, 이제 여기가 내 집이구나' 


비로소 엄마와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순간이었다.




브런치북 연재를 위해 작년 가을에 적은 글을 재발행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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