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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눈 Nov 01. 2021

내일도 보고 모레도 봐요

첫사랑을 만난다면(23_소설)

“그럼 우리 돌아갈까요?” 그가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일어났다. 나는 베고 누웠던 가방을 그에게 건네주며 치마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와 아까 하다만 스무고개 게임을 하며 한국대로 돌아왔다. 그가 자주 간다던 피자집은 나도 몇 번 왔었지만, 들뜬 그를 위해 처음 온 척했다.


    

“여름씨, 어때요? 여기 피자 괜찮죠?”

“네, 정말 맛있어요. 자주 오게 될 것 같은걸요?”

“다행이네요. 아까 말했던 ‘여름의 피자’도 정말 맛있는데, 없어진 게 아쉽네요.”




“유현씨, 피자 말고 다른 건 뭐 좋아해요? 취미라든지.”



“음, 헤드셋이랑 카메라에 관심이 많아요. 음악 듣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요. 친구들이랑 축구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축구요? 의외인걸요?” 지난번 만남 때 그에게서 축구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그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기도 했고 대부분 그가 내게 맞춰줬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아갈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왜요? 운동 못할 것 같아요? 저 별명이 슛돌이예요!”

“공격수예요?”



, 그럴 때가 많긴 한데, 사실 동아리에서 하는 거라 포지션은  바뀌어서 멀티로 해요. 카메라에 친구가 찍어준 축구 영상 있는데 볼래요?” 자랑하고 싶어서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그가 너무 귀여워서 , 하고 웃음이 나왔다.



카메라 화면엔 그가 하프라인에서 왼발로 공을 찬 것이 포물선을 그리며 상대편 골네트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보였다. 그와 친구들은 네트 안으로 공이 들어간 순간, 뛰어와서 서로 얼싸안았다. 그가 밝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쾌활한 모습을 보자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며 기분이 좋았다.



그때 그 영상을 찍는 사람이 “오, 안유현, 좀 하는데?”라며 카메라를 자신의 얼굴로 돌려서 엄지를 척 올렸다.    




“아 이분은?” 그는 나와 유현이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사람이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성민이, 제 룸메이튼데.”



“아, 아뇨. 지인 중에 닮은 사람이 있어서 착각했네요. 이분이랑 둘이서 같이 살아요?”

“네. 전역하고 나서부터 4개월째 같이 살고 있어요. 집 구하는 게 어려웠는데 친구 덕에 쉽게 구했죠.”



“친구랑 같이 살면 불편하진 않아요?”


“흠, 딱히 그런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친구랑 저랑 서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이기도 하고. 아, 딱 하나 불편한 게 있다면 동기들이 너무 자주 와서 약대 아지트가 된 거? 공강 때 갈 곳 없으면 저희 집으로 불쑥불쑥 찾아와서 게임하고 있더라고요.” 그는 상상만으로 즐거운 듯 씩 웃었다.




“친구들이 비밀번호도 알아요?”


“네. 너무 자주 와서 그냥 알려줬어요. 저희 집은 투 룸인데 남자 8명이 같이 잔 적도 있어요. 얘들이 술만 마시면 집까지 가기 귀찮다고 우리 집에 오더라고요. 체인 걸어서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없고. 그래도 같이 있으면 시끌벅적 재밌어요. 전 형제도 없고 할머니 손에 자라서 외로웠거든요. 그래서 지금이 좋아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람을 좋아하고 믿는 대형견 같아 보였다.




“유현씨는 정말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우리 둘이서 피자 한 판 다 먹었네요!”


“그러게요. 배부르니 더 기분 좋네요.” 내가 계산서를 들고 일어서니 그는 연신 잘 먹었다는 인사를 했다. 그는 나를 집까지 배웅해주겠다고 했고,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7시, 석양이 깔릴 무렵의 낮은 햇빛과 부드러운 바람이 조화로웠다.     








“유현씨도 모든 사람들이 다 좋진 않죠? 어떤 사람이 싫어요?”


“그럼요. 전 예의 없는 사람이요. 종업원한테 막대하고, 쓰레기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



“저도요. 길 걷다가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땅바닥에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가서 한마디 해주고 싶어요. 근데 소심해서 그렇게는 못하고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아요. 그래도 늘 괘씸해요.”



“저도 그래요. 다음엔 같이 한마디 할까요? 둘이면 용기 나지 않겠어요?”


“좋네요. 그럼 혹시 특이한 습관 같은 거 있어요?”



“특이한 습관이요? 음, 아!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런지 종업원들이 늘 안쓰러워요. 그래서 진동벨을 받으면 돌려줄 때 종업원 손이 아니라 진동벨 더미 위에 놓는다던지, 주문을 한 번에 말한다던지, 쿠폰 사용할 거면 미리 말한다던지. 이런 습관이 있어요. 특이하다는 범주 안에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아르바이트 하시는군요? 언제요?” 알면서도 괜히 모르는 척, 물었다.


“네. 빙수 파는 카페에서 평일 저녁에 해요. 주문받고 커피 만들고, 가끔 스쿠터로 학교 안에 배달도 가고요.”



“스쿠터도 탈 줄 아나 봐요. 전 한 번도 안 타봤는데.”

“다음에 기회 되면 제가 태워드릴게요. 속도는 안 나지만 나름 재밌어요.” 뿌듯해하는 그의 미소가 귀여웠다.




“좋아요. 여기가 저희 집이에요.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네. 혹시 연락해도 될까요?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그는 경쾌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그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그가 긴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요. 우리 자주 만나요. 내일도 보고 모레도 봐요.”

“내일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그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럼요. 내일 4시쯤 어때요? 전 주말에 아르바이트해서 4시부터 시간 되는데.”


“좋아요. 전 아무 일도 없어요. 그전에 연락할게요, 여름씨, 푹 쉬어요!” 내 쪽을 보며 해맑게 웃으며 손을 크게 위로 흔드는 그를 보니 자꾸만 웃음이 났다. 결혼을 약속한 태형씨와 있을 땐 늘 불안함에 주눅 들어있던 내가 유현이를 만나면서 하루 만에 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 안에서 노란빛의 기운이 샘솟는 것 같았다.     








하지만 푹 쉬라는 유현이의 말과 달리, 나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선우를 만나는 것.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야. 혹시 9시에 볼 수 있어?”


“1시간 남았네? 응, 스터디 곧 끝날 것 같아.”

“그럼 9시에 철학관 앞 벤치에서 만나자.”     




남자 친구와 약속을 잡은 뒤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12년 전에도 했고, 왜 더 빨리 말하지 못했을까 늘 후회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나보다 5살이나 많고 취업을 준비하는 남자 친구가 어른 같았다. 그러나 남자 친구보다 나이가 많은 지금은 그가 여린 아이 같아 보였다. 그래, 너도 마음 고생이 많았겠다. 어쩌면 내가 네게 마음이 없었다는 걸 알았을지도 몰라. 나보다 경험이 많았을 테니. 친구들은 모두 졸업하고 하나둘 취업을 시작하니 불안했겠지. 그런 와중에도 나한테 참 잘해줬는데….




취업 문제로 힘겨워하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조금 더 살아보니 취업이 늦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네가 뒤처진 게 아니라고. 모두 다른 속도로 가는 거라고.     



힘겨워하는 그의 얼굴을 떠올리자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과 이별을 결심한 마음은 별개였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의 마음을 최대한 덜 아프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내 말을 들을 그의 표정을 떠올리니 심장 한편이 아릿했다.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 남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로 갈아입고서 집을 나섰다. 그와 나는 철학관 앞 벤치에 앉아서 가끔 속에 있는 말을 하는 시간을 보냈다. 왜인지 그 벤치에만 앉으면 숨겨둔 진심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물론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가장 중요한 진심은 전하지 못했지만.



내가 먼저 벤치에 도착하고 조금 지나니 그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이 벤치에서 보자고 하니까 좀 떨렸어. 무슨 할 말 있어?”





매주 월요일, 목요일 4시30분에 업로드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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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 @bombi_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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