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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눈 Oct 28. 2021

차도에 누워본 적 있나요?

첫사랑을 만난다면(22_소설)

"여보세요?" 10년 만에 듣는 내 첫 남자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름아, 답사 갔어? 하나 민박은 어때?”

“좋아. 방금 예약하고 이제 내려가는 길이야.”



“그렇구나. 근데 여름아, 미안해서 어쩌지? 오늘 저녁 같이 못 먹을 것 같아. 스터디가 생각보다 길어지네.”

“괜찮아. 혹시 오늘 밤에는 볼 수 있어? 할 말이 있는데….”


“밤엔 시간 괜찮아. 그럼 나중에 보자. 나 이제 스터디 시작해서 가봐야겠다. 저녁에 연락할게! 조심히 와.”     






선우 오빠와의 전화를 끊고 유현이를 보았다. 그는 내가 전화하는 동안 길거리 사진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걸어가자 그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길거리 사진기 신기하네요. 다른 곳에서도 찍어보고 싶어요. 핸드폰 줄래요? 아까 번호 찍으려다 전화가 와서.

그에게 핸드폰을 건네니 그는 큰 손으로 내 핸드폰의 자판을 꾹꾹 눌렀다. 그가 찍어준 11개의 숫자를 보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저장했어요. 전화 걸게요.”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네. 전화 왔으니 이제 끊어도 돼요. 음, ‘여름씨’ 저장!” 그의 말에 나는 내 핸드폰을 슬그머니 뒤로 숨겼다. 나는 ‘유현이’라고 저장했기 때문이다.



“네. 집에 가서 사진 보내줄게요.”

“좋아요. 저도 사진 찍은 거 보내드릴게요. 용량이 커서 메일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문자로 메일 주소 보내줄래요?”



“그럴게요. 오래 걸었더니 덥네요. 유현씨 맥주 좋아해요? 버스 올 때까지 한 잔 마실래요?”

“정말 좋죠. 덕분에 민박 예약도 편하게 했으니 제가 살게요. 저기 편의점 있네요.”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기네스와 블랑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제 것까지 골라주시게요?”

“아, 죄송해요. 습관적으로 두 캔을 잡았네요.”



“안목이 좋으신데요? 취향이 비슷한가 봐요. 저는 둘 중 기네스로 할게요.”

그가 맥주값을 계산하는 동안 나는 빨대를 두 개 챙겼다. 빨대의 투명 비닐을 제거하고 캔맥주에 빨대를 꽂았다.




“유현씨, 잘 마실게요. 다음엔 제가 살게요. 고마워요.”

“좋아요. 더 비싸고 맛있는 수제 맥주로 얻어먹을래요.” 그가 혀를 빼꼼 내밀며 웃었다.




“아님 지금 살까요?용돈을 보냈다는 엄마의 문자를 흔들며 말했다.     

“좋죠. 여름씨 피자 좋아해요? 이 주변에 맛있는 피자집이 있어요. 아까 여름씨 볼 때부터 거기 가고 싶었어요. 가게 이름이 ‘여름의 피자’거든요. 버스로 두 정류장 정도 거리에요.”



“그럼 걸어갈까요? 산책도 할 겸.” 

“햇빛 괜찮겠어요? 여름씨 얼굴이 많이 붉은데.” 나도 내 뺨이 불그스름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햇빛 때문은 아니었지만, 내 본심을 숨겨준 햇살이 고마웠다.




“괜찮아요. 이쪽인가요?”          

20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 외에 일반 자가용이 달리지 않는 동네라 가게까지 걸어가는 길은 아주 한적했다. 파아란 하늘에 둥실 떠있는 몇 점의 구름은 마치 솜사탕 같았다. 맑은 하늘 아래 초록빛 싱그러운 나무들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그 길을 맥주를 마시며 함께 걸으니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유현씨, 스무고개 할래요?”

“좋아요. 진 사람이 저녁 사기 할까요?”



“제가 사려했는데. 저야 좋죠. 그럼 일반적인 스무고개 말고 대답을 길게 말하는 걸로 해요! 대신 질문은 5번만 할 수 있는 걸로. 제가 먼저 문제 낼게요.”



“오, 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좋아요. 질문을 신중하게 해야겠어요. 음, 하루 중 언제 볼 수 있나요?” 그는 생각에 잠긴듯 눈을 위로 뜨며 물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어요. 다만, 요즘 사람들은 이걸 볼 여유가 없는 것 같아서 슬퍼요. 저는 이거 보는 걸 제일 좋아해서 매시간 봐요.”



“음, 책인가? 아님 핸드폰?”

“정답은 마지막에 한 번만 말할 수 있어요! 정답을 말한 건가요?”



“아뇨,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여름씨는 이걸 몇 개 가지고 있어요?”

“이건 소유할 수 없어요. 하지만 모두가 가질 수 있죠. 그래서 전 이것의 전부를 가지고 있을 수 있어요.”



“어렵네요. 무슨 색깔인가요?”

“색은 다양해요. 파란색이 주를 이루지만, 흰색, 분홍색, 노란색, 주황색, 회색, 검은색도 있어요.”



“이걸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아름답다? 좋아하는 사람 얼굴도 떠오르고요. 사실 무슨 생각이 든다기 보단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보면서 멍 때릴 때가 많아요.”



“생각이 사라진다라, 더 좋은걸요? 사실 우리에겐 생각을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왠지 저도 그게 좋아질 것 같아요.” 그는 즐거운 듯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유현씨도 좋아할 거예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거든요. 마지막 질문은 뭐예요?”



“저도요? 음, 그럼 저와 함께 이걸 본다면, 언제 어디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음, 이건 다 좋은데. 파란색은 같이 봤으니 붉은색을 함께 보고 싶네요. 붉은색일 때는 높은 곳에서 봐야 멋져요. 산이나 건물 옥상에서 보면 좋겠어요.”




“저 알 것 같아요! 하늘이죠?”

“맞아요. 제가 마지막에 힌트를 너무 많이 줬나 봐요. 원래도 제가 사려했으니 맘껏 먹어요!” 내 말에 그는 신나는 듯 코를 찡긋거렸다.




“저도 하늘 보는 거 좋아해요. 그래서 산이나 바다에 가면 전 늘 누워서 하늘을 봐요. 햇살에 눈이 부실 때, 눈을 살짝 감으면 눈앞이 붉은색으로 보이는 게 너무 좋아요.”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길을 걷는데, 그가 당황한 듯 허둥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유현씨, 왜 그래요?”



“어, 이상하다. 가게가 여기쯤이었던 것 같은데. 분명 여기가 맞는데.”

“‘여름의 피자’라고 했죠? 저도 같이 한 번 찾아볼게요.”     

주변을 둘러봤지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음식점은 보이지 않았다.




“음식점이 있을 것 같지가 않은 동네인걸요?”

“네. 그 음식점 딱 하나만 있어요. 나름 맛집으로 유명해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는데, 없어졌나 봐요. 미안해요, 여름씨.”




“아녜요. 찾아올 정도의 맛집이라니 좀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우리 조금 더 찾아보고 없으면 한국대 주변에서 먹을까요?” 내 말에 그는 잘못한 강아지마냥 풀이 죽어있었다. 얼굴에 미안한 빛이 떠오른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정말 괜찮아요, 유현씨. 덕분에 산책도 하고 좋았는걸요. 여기 길이 예뻐서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네요.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도 잘 보이고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조금 더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이에요.” 



     

음식점 찾기를 포기하자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더 잘 띄었다. 해가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자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왔다. 부드러운 바람이 머리칼을 스칠 때의 간지러움이 기분 좋았다.








“여름씨, 차도에 누워본 적 있어요?”

“네? 아뇨?”

“그럼 우리 누워봐요!” 그는 서슴없는 발걸음으로 2차선 도로 중앙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위험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지금까지 차 한 대도 안 왔잖아요. 거리가 조용해서 멀리서 차가 오면 소리가 다 들릴 거예요. 저 귀가 밝거든요. 꼭 알려줄게요.” 그의 말에 안심이 됐다. 그리고 내가 죽는 날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그가 누워있는 곳 옆으로 가서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시선을 낮추니 나무가 더욱 커 보였다.

“여름씨, 괜찮아요. 누워봐요. 아, 머리! 내 가방 베고 누워요.” 그는 메고 있던 검은색 가방을 자신의 머리 가까이 두었다. 그가 가방을 내려둔 곳에 살포시 머리를 대고 누웠다.




“음, 좋네요.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여름씨가 좋아하는 하늘도 정면으로 보고. 서서 하늘을 보면 아무래도 나무, 건물, 전봇대가 같이 보이잖아요. 근데 누우면 오롯이 하늘만 볼 수 있어요. 여름씨가 좋아하는 하늘 보며 멍 때리기 해요, 우리.” 그는 몇 번 해본 솜씨인 듯 아주 편안해 보였다.  




  

하늘 보며 아무 생각 안 하는 걸 좋아했던 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와 머리를 가까이 마주대고 누워서인지 그의 숨소리가 들렸고, 눈을 옆으로 돌리면 그의 목이 보였다. 그의 목을 보자 괜히 기분이 이상해져서 침을 삼켰다. 침 삼키는 소리가 그에게 들렸을 것 같아 민망해서 헛기침이 나왔다.



내가 혼자 헛기침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무척 평온하게 눈을 감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다. 가방이 아닌 그의 팔을 베고 누워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팔뚝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저 구름은 뭘 닮은 것 같아?라고 물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름씨, 거짓말했죠?” 그가 정적을 깨며 물었다.

“네?”



“빤히 바라보는 거 습관 아니라면서요. 아무래도 습관인 것 같은데.”

“아, 아니에요! 제가 바라보긴 뭘요! 이제 그, 집에 갈까요?” 내가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는 걸 들킨 것 같아 민망했다. 눈을 감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안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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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해진 시간에 연재하려합니다!


매주 월요일, 목요일 4시30분에 업로드할게요. :)

부디 매주 늦지 않게 잘 올릴 수 있길....ㅠ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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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 @bombi_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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