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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눈 Nov 04. 2021

마음 바뀌면, 언제든 돌아와도 돼.

첫사랑을 만난다면(24_소설)

“사실 이 벤치에서 보자고 하니까 좀 떨렸어. 무슨 할 말 있어?”

“응, 오빠. 요즘 시험 준비한다고 힘들지? 좀 어때?”




“괜찮아. 여름이 네가 있으니 힘이 돼.”


… 미안해. 더 이상… 힘이 되어줄 수 없을 것 같아.”




“… 여름아, 그게 무슨 말이야?”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헤어지자. 시험 얼마 안 남았는데 힘들게 해서 미안해.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미안해.” 

그에게 미안한 감정과 이 한마디가 어려워서 몇 년간 마음 고생했다는 생각에 북받쳐 눈물이 흘렀다.




“갑자기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내가 더 노력할게 여름아. 시험공부한다고 널 많이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냐, 그런 문제가 아냐. 그냥 내 마음의 문제인 거야. 오빠와 함께 할 때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내 마음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아. 나는… 오빠를, 사랑하지 않아.” 이윽고 침묵이 드리웠다.




“그랬구나. 사실 조금은 눈치채고 있었는데 아니겠지, 모르는 척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었어. 내가 더 노력하면… 안될까?” 



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저릿했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고 해서 마지막 1년을 이전과 똑같이 보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그가 한참 나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알겠어, 여름아. 네 성격에 말 꺼내기 어려웠을 텐데….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알아줘. 혹시나 마음 바뀌면, 언제든 돌아와도 돼.”




“… 고마워. 오빤 좋은 사람이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 봐도 될까?”



날 포근하게 안는 그의 품에 기댔다. 몸이 익숙한 지 편안했다. 내가 사랑하진 않았지만, 처음으로 연애를 한, 처음으로 누군가를 안는다는 느낌을 알려준 사람. 사랑이란 감정은 없었지만 그의 다정함과 끈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진심으로 그가 행복하길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눕자 노곤함이 밀려왔다. 과거로 돌아온 첫날부터 한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사람과 헤어지며 감정 소모가 컸던 것이다. 1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세우려 했지만 몰려오는 피로에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오랫동안 커피를 만들지 않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보다 오랜만에 커피 향을 맡으며 일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옷장을 열어,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았을 하얀 티셔츠에 붉은색 테니스 치마를 입었다. 오늘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카페에 도착하니 같이 일하는 언니가 물었다.

“여름아, 오늘 어디 가? 옷 버린다고 맨날 청바지만 입고 오더니, 웬일이래?”




“날씨가 좋아서 입어봤어요. 앞치마 유니폼 입으니까…. 괜히 부끄러워서 말끝을 흐리며 카페 오픈 준비를 했다. 오픈 준비를 하고 있자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현씨!” 내가 반가운 기색으로 그에게 먼저 아는 체를 했다. 그가 깜짝 놀라며 입구에 서서 날 바라보았다.



“어, 안유현이 오늘 왜 왔지? 근데 둘이 서로 아는 사이야? 유현이가 너랑 같이 일한 적이 있었나?” 언니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뇨, 그건 아니고 어제 우연히 만났어요.” 두 눈을 가게 입구에 선 유현이에게 고정한 채 대답했다.



그때, 사장님이 지나가며 말씀하셨다.

“여름이, 유현이 알지 않아? 예전에 같이 커피 마셨잖아.



“네?” 그 말에 놀라서 사장님을 바라봤지만 사장님은 이미 재료 점검하러 창고에 올라가신 후였다. 



         

“여름씨,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오늘 주말 아르바이트 대타 왔어요. 어제 많이 걸었는지 피곤했는데, 여름씨 있는 걸 보니 일하러 오길 잘했네요. 여름씨, 몸은 어때요?” 유현이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보다 유현씨, 우리 예전에 본 적이 있나요?”

“어, 기억났어요? 어제는 모르는 눈치 더니.”


“네?”



“여전히 모르는 눈친데, 사장님께서 알려주셨어요? 말 안 해줄래요. 사장님께도 비밀로 해달라고 말씀드려야겠어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벽화마을 이전에 만난 기억은 없었다.


“궁금한데….” 내가 여러 번 알려달라고 물었지만 그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피크 시간인 1시가 되기 전까진 사장님을 포함한 4명에서 일을 해야 했다. 유현이와 나는 홀에서 커피를 만들고, 사장님과 언니는 주방에서 빙수를 만들기로 했다. 오픈 시간이 되자 손님들로 카페가 북적였다. 




지금부터 정확히 1년 뒤, 옆에 들어온 커다란 빙수 프랜차이즈로 인해 우리 카페는 장사가 안되다가 사장님께서 장사를 그만두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처럼 정신없이 바쁜 카페가 너무 반가웠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커피를 만들었다. 걱정과 달리 몸이 커피 만드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학생, 좋은 일 있나 봐. 표정에 생기가 도네.” 카페에 자주 오시는 아주머니께서 말을 거셨다. 오랜만에 보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반가워서 기분 좋게 인사하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얘들아, 연유가 떨어져서 좀 사 와야 할 것 같아. 내가 다녀올 테니 그동안 유현이가 주방에서 빙수 좀 만들어줄래? 홀도 바쁠 텐데 미안해.”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럴게요, 사장님.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그가 있는 주방과 내가 있는 홀 사이엔 빙수와 빈 그릇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작은 창이 하나 있었다. 한동안 정신없이 빙수와 커피를 만들다가 손님이 잠시 뜸할 때였다.     




그가 작은 창 사이로 빙수가 아닌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엔 힘들어하며 누워있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평일 아르바이트와 달리, 일이 많은 주말에 놀란 듯했다. 그의 귀여운 그림에 웃음이 났다. 





나는 이 정도는 끄떡없다는 뜻으로 그의 쪽지 옆에 이두박근을 과시하는 팔 모양을 그려 건넸다. 내가 쪽지를 내밀자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내 입꼬리도 따라 올라갔다.



     

그는 다시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서 건넸다. 연필로 썼다 지웠다 하는 소리가 들려서 대체 뭘 적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오늘 일 끝나고 뭐해요?’ 연극을 보러 가자고 말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는데 이때다 싶어 바로 답장을 썼다.




‘연극 보러 가요! 유현씨랑 같이 가고 싶은데, 어때요? :-)’




쪽지를 쓸 때는 가볍게 썼는데 막상 종이를 건네고 나니 심장이 뛰었다. 시간이 몇 초 흘렀을 뿐인데도 조바심이 났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의 펜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작은 창으론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답답했다.     




그때, 손님이 나가시는 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큰 소리로 인사를 한 후, 행주를 들고 손님이 나간 자리를 닦았다. 빈 그릇을 정리해서 주방으로 보내려는데 작은 창 아래에 아주 큰 종이가 보였다.     








매주 월요일, 목요일 4시 30분에 업로드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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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직접 촬영, 친구 그림

인스타그램 : @bombi_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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