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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눈 Nov 22. 2021

‘우리 집’은 있지만 ‘내 방’은 없는 어른들을 위하여

나만의 공간에 관한 고찰

 어느 날, 친정에서 놀고 있는데 두 돌 된 딸 아이가 친정엄마에게 물었다. 

 “할머니, 할머니 방은 어디야?” 


 친정엄마는 침대가 있는 안방을 가리키며 “할머니 방은 저기 제일 큰 방이야.”라고 말했다. 

 “아니야. 거기는 코~ 자는 곳이잖아.” 



역시 어린아이의 눈이 가장 정확하다. 엄마 집에는 ‘엄마 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방학 때마다 오는 대학생 아들과 집이 가까워 자주 오는 손녀에게 방을 하나씩 내주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결혼하고 30년 동안 나와 동생에게 방을 양보하느라 본인의 방을 갖지 못했다. 엄마의 양보 덕에 나는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으로 방을 가득 채우고 당시 유행하던 러브장도 만들고 공부도 하고 친구랑 다툰 날이면 혼자 훌쩍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오랜 시간 집에 머무는 엄마는 노동하는 주방과 거실, 가족 모두가 함께 자는 안방 외에 혼자서 자기 계발을 하고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은 자식에게 방을 양보하고, 잡동사니와 옷들에게 방을 내어줘서 본인의 방이 없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구태여 자식과 물건에게 소중한 방을 내어준다.



 ‘신박한 정리’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정리 컨설턴트가 연예인 집을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정은표 배우네 집이 인상 깊었다. 정은표 배우는 50대 베테랑 연기자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이 없어서 늘 구석이나 침대에서 대본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정리 컨설턴트가 침대 옆에 아주 작은 책상을 두어 배우 정은표만의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50대 남성 배우는 자신만의 공간을 보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



 


 미혼인 내 친구는 초등학생용 책상 하나에 눈물을 쏟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친구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자신만의 방이 있었기에 아마 공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되어 자식에게 방을 양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정은표 배우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다. 부모가 되면 많은 것을 자식에게 양보하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만의 공간과 그곳에서 보내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피차일반이다. 우리 집은 가족 모두가 함께 자는 안방, 장난감이 있는 아이방, 작은 드레스룸까지 총 3개의 방이 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잠든 후 밤 9시, 드레스룸 한편에 있는 작은 책상 앞 의자에서 엉덩이 싸움을 한다. 


묵직한 엉덩이로 상대방의 엉덩이를 밀어내는 힘과 기술을 요하는 싸움이다. 아이가 잠든 뒤 주어지는 달콤한 자유시간에 서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서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분하게도 체급 차이로 인해 대부분 나의 패배로 끝난다.




 엉덩이 싸움에서 진 나는 나의 자유시간을 거실 소파나 주방 식탁에서 보낸다. 좁은 방보다 훨씬 넓고 시야가 트인 공간이지만 나는 그곳에서의 자유시간이 만족스럽지 않다. 독서가 취미인 나는 자유시간에 책을 읽고 싶지만, 그곳에서는 왜인지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만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면 끝자리부터 앉고 카페에 가도 가장 구석 자리부터 앉는다. 타인과 거리를 두어 비교적 독립적인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고 상대방이 내가 모르는 새 나타나서 놀라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같은 이유로 거실의 소파에도, 주방의 식탁에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보여주면 안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불안하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의 자유시간을 위해 자리를 다른 방으로 옮겨보았지만 적절한 공간을 찾지 못했다. 안방에는 아이가 자고, 아이방은 형형색색의 어질러진 장난감들로 눈이 피로했다. 한참을 궁리한 끝에 드레스룸 안 책상을 차지할 수 있는 묘안이 떠올랐다.



 자유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엉덩이 싸움에서 패배한 그 의자에서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슬픈 영화를 보며 울기도 한다. 신랑도 나도 온전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부모도 나만의 방이, 나만의 책상과 의자가 필요하다. 정리는 물건의 자리를 정해주는 것이다. 물건의 자리가 정해지면 어질러져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물건이 자기 자리가 필요하듯 사람도 자기 자리가 필요하다. 자기만의 자리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리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내 공간을 마련하여 시간을 보내고 나니 친정엄마가 떠오른다. 친정엄마가 30년간 양보한 본인만의 방을 갖도록 돕는 것이 내게 남겨진 과제이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신박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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