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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이

by 메리포핀스


더운데 그늘에 있으라니까 땡볕 아래서 자꾸 나가자는 고집을 부린다. 일부러 그늘에 묶어둔다.


"네가 목욕시키고 나니까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렇지? 씻고 나니 시원한 거지 뭐, 눈에 총기가 총기가..."

"시원도 하고, 애정을 주니까... 아이고, 검둥아. 누나 곧 가는데 너 어쩌냐?"


우리 집 검둥이는 순하고 어수룩한 노총각 같다.

실제 견생으로는 할아버지에 가깝지만, 느낌적인 느낌이 그러하다.


"검둥이 바보야. 제 밥도 다 뺏기고."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순해서 그렇지 뭐."


"온 동네 급식소다. 고양이한테도 뺏기고, 까치한테도 뺏기고, 강아지들한테도 뺏기고."

"그러니까, 먹다가도 오면 비켜주더라. 편하게 먹으라고 시선도 안 줘. "


"까치가 얌체 같이 먹고 가는 게 아니라 물어다 나르기도 하거든, 그러면 기다리고 있다니까..."

"순해, 순해"

"바보지 뭐."


"외로워서 그런가? 그렇게라도 친구들이 오는 게 좋은 거 아냐? 엄마 아빠가 안 놀아주니까.

난 검둥이 똥 쌀 때 낑낑대는 거 말고는 짖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어.

까치가 밥만 먹는 게 아니고 장난을 막 치던데? 통통통 튀어 와서는 털도 뽑고. 집 짓느라 그런 건지, 장난을 치는 건지 "

"그래 그런다."


세상 평화로워 보이는 마당 풍경이다.

욕심 없는 검둥이의 코가 오래오래 촉촉했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털의 윤기가 돌았으면 좋겠고

오래오래 까치에게 밥과 털을 나누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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