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시작했다
“창 밖으로 숲이 보이는 요가원.”이라는 문구에 홀린 듯이 찾아가 주 2회 요가를 등록했다. 막상 가보니 창 밖으로 보이는 건 숲이 아니라 작은 공원의 소나무들이었다. 그래도 수련실의 탁 트인 유리창과 나무를 보니 숨이 쉬어졌다. 방금 지어진 듯, 때 탄 곳 하나 없이 깔끔한 화이트톤의 수련실이 내 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을 대고 누워 눈을 감고 사바사나 자세(일명 송장 자세로 편안하게 누워 이완하는 자세)를 할 때는 이대로 잠들어 내일 아침 이곳에서 눈을 떠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상상 속에서도 출근하는 영락없는 직장인이었다.) 이런 공간에서 운동한다면 아픈 허리도 금방 좋아지고, 늘어난 체중도 바로 감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등록만으로 모든 것을 이룬 듯 뿌듯했다.
요가는 생각보다 더 느린 운동이었다. 헬스장에서 했던 요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려운 동작들을 따라가기 바빴는데, 이곳에서는 동작에 천천히 머무르며 자극을 느껴보라고 주문했다. 솔직히 김이 샜다. 땀을 뻘뻘 흘리며 격한 운동을 해서 살이 쏙 빠지고 단단해질 몸을 한껏 기대했는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 달 수강료 10만 원을 이미 시원하게 결제한 후였다.
그래도 요가는 내게 스마트폰 없이 오로지 나와 있는 한 시간을 선물했다. 그런데 난 그 한 시간을 오로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데 썼다. 방귀 걱정이 시작이었다. “요가 가기 전에 꼭 방귀를 뀌고 가." 먼저 요가를 다니던 친구의 조언에 따라 난 40분을 걸어서 요가원에 갔다. 가는 내내 내 안의 모든 가스를 소진하기 위해 애썼다. 수업 중에 혹 잘못 힘을 주어 방귀를 끼지나 않을까 신경이 곤두섰다. 가끔 방귀가 나오면 선생님이 내 자세를 교정해주러 오지 않길 간절히 기도했다. 입고 갔던 면티도 신경 쓰였다. 응당 운동복이라고 하면 갖춰야 할 쫀쫀함이 없는, 누가 봐도 집에서 잘 때 입을 법한 티셔츠를 입고 간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그렇다고 레깅스를 입을 자신도 없었다. 레깅스를 입은 사람은 다 요가 중급자 이상으로 보였다. 간혹 나처럼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면 묘한 안도감을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실력이었다. 아침에 기지개 켜는 일도 거르는 내게 유연함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앉아서 팔을 펴고 허리를 살짝 굽히기만 해도 뒷다리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와서 자세를 봐줄 때마다 ‘내가 너무 못해서 그러나’ 싶어 얼굴이 화끈해졌다. 같이 듣는 수강생들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몸이 뻣뻣할까’라고 속으로 흉보는 것만 같았다. 집에서 연습이라도 해야 하나. 나는 왜 요가도 시험 보듯 쩔쩔매며 하는 걸까. 요가를 가르치는 친구에게 나같이 못하는 수강생을 만나면 어떠냐고 물어보려다 참았다. 누군가 내게 글쓰기 수업에 못하는 수강생이 오면 어떠냐고 물으면 뭐라 답하겠는가? “못하니까 배우는 거지.”
결정적으로 요가는 ‘잘’과 ‘못’이 없는 수련이었다. 선생님은 말했다. “힘들면 블록을 받히고 하셔도 돼요. 할 수 있을 만큼만 적당히 하세요.”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너무 못해서 나한테 하는 말인가?’ 싶었다. 그것이 지나친 자의식이 만든 망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 말을 꽤나 자주 했다. 그러니 내가 참여하지 않는 클래스에서도 할 것이 분명했고, 당연히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모두가 나를 신경 쓸 거다, 세상이 아니 적어도 이 요가원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 거라는 망상에서 벗어날 즈음 그 일이 일어났다.
그 주는 평일에 너무 바빠서 처음으로 주말 수련에 갔다. 1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간 바라고 바라던) 힘들고 힘든 자세들이 이어졌다. 평일 수업과는 뭔가 달랐다. 나는 종종 다리에 쥐가 나 그냥 누워있었다. 그런데도 오기가 생겨 블록을 받히지 않고 무리해서 동작을 따라 했다. 수업이 끝나고 매트 정리를 하는데 선생님이 다가오며 말했다.
“평일 수업처럼 하는 건지 알고 오셨죠?”
수련실에는 아직 수강생이 가득했고, 나는 얼굴이 화끈했다. 역시 이 사람도 내가 ‘특별히’ 못한다고 생각했구나. 나는 슬럼프에 빠진 운동선수라도 되는 양 요즘 허리가 아파서 침을 맞고 있고, 코로나에 걸린 이후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변명했다. 그는 내 허리가 좋지 않은 근본 원인을 물었다. 순간 그가 너무 얄미웠다. 내 생활 습관 전반을 비난받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 앉아서 일해야 한다는 나의 대답에 그는 요가를 꾸준히 하면 나아질 거라며 격려했다. 나는 적당한 미소를 지으며 도망치듯 요가원을 빠져나왔다.
한동안 그의 수업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첫 요가 선생님과 홀로 결별한 채, 다른 선생님의 수업에 들어갔다. 새로 만난 선생님은 칭찬을 잘했다. “잘하고 있어요.”, “아주 좋아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구부러진 내 몸이 더 쫙 펴지는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폴더폰처럼 몸이 접힐 것만 같았고, 건강해질 거란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그렇게 신나게 요가를 하고 걸어 나오는데, 허리가 주저앉는 통증을 느꼈다. 그날 밤새 끙끙 앓으며 알았다. 그동안 내가 한 건 내 몸을 살피는 요가가 아니었구나, 그저 선생님의 칭찬에 호응해 반응하는 재롱에 불과했구나. 내가 호응해야 할 건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했던 첫 요가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문득 “할 수 있는 만큼만 적당히 하세요”라는 그의 말이 그리워졌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적당히 하세요.” 이 다정한 말이 내게는 왜 그동안 “너는 그만큼밖에 안 된다”는 비난의 말로 들렸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 얼만큼인지도 정작 몰랐으면서. 천천히 요가 동작을 할 때마다 내 안은 잠잠해지기는커녕 더 시끄러워졌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동작이 이게 맞나, 선생님이 또 와서 지적하면 어떡하지 등등. 그러면서 알았다. 내가 얼마나 남을 의식하며 사는지, 그 두려움이 얼마나 나를 추동하는지. ‘열심히’가 미덕인 세상에서 아등바등 허덕이면서도, ‘적당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미워하고 질투해왔단 걸.
용기 내어 다시 그의 수업에 갔다. 쿠션을 끌어안고 아기 자세를 한 채 담요를 덮고 15분이나 누워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내 허리가 나아질까 싶었지만, 이내 그 마음을 내려놓는 게 내 첫 수련이구나 싶었다. 앉아서 허리를 굽히는 자세를 할 때 그가 말했다. “불편한 사람은 블록을 이마에 대세요. 요가는 열심히 하는 거 아니에요. 할 수 있는 만큼만, 적당히 하세요.” 그 말에 얼른 블록을 가져와 머리에 댔다. 한결 편했다. 이만큼이 지금의 나라고 받아들이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생각할 때 누군가 잠이 들었는지 코를 골았다. 웃음이 나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여기, 우리는 각자의 수련을 하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