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은 내게 고통으로만 채워진 시간이었다. 먹고 있던 피부과 약이 점차 내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눈치챘다. 피부과 약의 부작용이 정말 심하게 와서 온몸이 건조해지고 간지러웠다. 특히 얼굴은 너무나 건조해서 씻고 나오면 갈라져서 아프기까지 했다. 나는 그저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더 큰 고통을 받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정말 억울했지만 원망은 어느 쪽으로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피부과에 걸음한 것은 나였기에, 나를 원망하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을 만큼 온몸이 가렵고 건조했다.
나를 믿지 않은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내 몸인데, 나는 내 몸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주도권을 의사에게 맡겼고 나는 그것이 꽤 편했다.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결과는 고스란히 내가 감내해야 했다. 믿을만한 이를 믿은 것뿐이었는데,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 몰라서 한동안 너무 화가 났다.
피부만큼은 혼자서 도저히 바꿀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느꼈던 감정은 절망감이었다.
내 생각에 절망감이 가장 무서운 감정 같다. 무력감과 무기력의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마음은 나를 믿지 못하게 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게 나의 주도권을 넘겨줬다. 알아서 해주겠거니 했다. 하지만 결국 내 삶이었다. 아픈 것도 나고 책임을 지는 것도 나다. 믿었던 그들은 내가 아파도 해주는 것이 없었다. 아무리 말을 했음에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방관하는 관찰자였다.
나는 꼭두각시를 자처했다. 하지만 아무도 꼭두각시의 줄을 잡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기에, 더 이상 꼭두각시인 채로 있을 수 없었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당시의 나에겐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느낌이었다. 정말 세게도 찍혔다.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고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고독을 마주했다.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것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것이 가장 정답 같다. 내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절망감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 행동만으로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나는 이 믿음을 내 것으로 해보려 한다. 의존한 결과가 너무 아파서 의존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그럴 바에야 나는 나를 믿어보겠다. 적어도 이번과 같은 결과가 나오진 않을 테니까.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은 고독함과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다.
내가 바꿀 수 있다고 믿자. 내 몸은 내 것이고 불안한 나의 마음을 드러내는 창이다. 약에 의존하지 말고 땀 흘려 운동하자. 그리고 불안한 것을 마주하자.
다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자.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