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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Jun 16. 2024

살아야 할 이유

24. 4. 28. 브런치스토리 저장 글

싶은 순간이 있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다 싶은 그런 순간.


그 순간 속의 나는 너무 아팠고 매일 매 순간 죽고 싶었다. 매일 밤 잠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뜨기 싫다고 되뇌었다. 그리고 아침은 계속되었다. 삶이 너무 잔인했다.




지금은 죽고 싶지 않다. 현재도 만족스럽고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 살고 싶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죽고 싶은 때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적고 싶었다. 좋은 시간은 무조건 온다.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면 세상엔 살 이유들이 많다. 정말 사소한 것들 일지라도. 어떨 땐 그 사소함만이 주는 기쁨이 있지 않은가. 뻔하지만, 어떻게든 버텨 보자. 살 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올 거니까.




죽고 싶은 순간에서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생각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그래야지만 그나마 이 고통을 버티며 내일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내가 죽는다.


그렇다면 일단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고, 주변인들에게도 상처를 주는 일임에 분명하다. 내가 죽은 뒤 일어날 일들에 책임지지 못하겠다. 어차피 책임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겠지만, 내 문제를 남에게 떠넘기고 사라져 버리는 짓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이유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아픈 것 밖엔 우선순위가 없었다. 여유랄 것도 없고 그저 아픈 게 끝났으면 하는 절망감뿐이었다. 근데 웃긴 건 그때 나는 남을 되게 신경 쓴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더 챙겨주고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나 아픈 상황 속에서도 웃고, 이야기를 하고, 학교를 다니고, 아픈 티를 내지 않는 것. 지금은 아프지도 않으니까 그것들이 당연한 것이지만, 그때는 그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가는 행동이었다. 아픔을 참는 것 자체로도 버거웠다. 그러니 주변을 어떻게 신경 쓸 수 있나.


그래서 나는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했다. 너는 살아서 뭘 하고 싶니, 왜 지금 살아있어야 할 것 같니, 물었다. 처음엔 몇 개 밖에 생각나지 않았지만, 죽고 싶을 때면 그 질문을 던졌고, 참 희한하게도 점점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수능이 끝나면, 친구와 여행을 가기로 했다. 보고 싶은 책도 애니메이션도 엄청 많다. 비 오는 날 반나절 동안 멍하니 있고 싶고, 하루종일 침대에서 지내도 보고 싶고 하루종일 노래만 듣고도 싶고 하루종일 책만 읽고도 싶다. 좋아하는 연예인 콘서트도 가보고 싶고 대학도 경험해보고 싶다. 연애도 해보고 책도 내보고 내 이야기를 하는 강연도 해보고 싶다. 미래의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직장에서 돈도 벌어보고 싶다.



고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것들을 포기한다면 정말 후회가 없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미련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중의 행복을 기대할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나한테 물어본 결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언제든 나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고 죽으면 끝이니까. 죽음의 가장 큰 맹점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도저히 죽음은 선택할 수 없었다. 지금껏 못 해 본 게 너무 많아서, 삶에 미련이 넘쳐흘렀다. 그런 나를 보면서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구나, 생각했다.


고통의 순간에는 희망 한 자락 없는 고통만 이어질 뿐이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별 게 아니었다는, 뭐, 그런 뻔한 일들이 우리 삶에서 반복되지 않는가.


그때 했던 생각들은 살 이유들이 되어줬다. 특히 매일 밤, 밀려오는 아픔과 죽고 싶단 생각들을 되돌려 보내는 문지기 역할을 해주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그 문을 쌓아 올렸다. 동기는 아마도 억울함이었다. 아프기만 하다 죽는 게 너무 억울했다. 또, 너무 많이 못 살아보기도 했고.


버텼던 시기는 대략 세 달 반이다. 그 이후로 내 가치관은 아주 많이 변했다. 사람은 큰 충격이 있어야 바뀐다는데,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쉽게 바뀌지 않는 게 사람이다. 일단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 늘 생각하면서 잘못 살아왔다. 죽음이 닥치고 나니 알겠다.
중요한 일들을 계속 미루기만 하면서 살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저서 <죽음 1>의 문장이다. 나는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공부나 생기부나 대학이나,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내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것, 지금 건강하고 행복한 것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되었다. 마음을 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사는 것

무언갈 추가하는 것뿐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믿어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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