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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Feb 27. 2023

넌 정말 사랑받고 자란 것 같아 (1)

과연 부모님의 사랑으로 지금의 내가 된 것일까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이 말의 근거로는,

1.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는다.

2. 나라는 존재를 당당히 여긴다.

3. 실수나 잘못을 합리화가 아니라 인정을 한다.

4. 뒤에서 남을 까내리지 않고, 남을 바라보는 시선이 선입견 없이 순수하다.

5. 남의 행동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1부에는 ‘1, 5번의 나’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드러난다.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받은 건 명백한 사실이다.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랐으니. 하지만 이 친구가 말한, 사랑을 받고 자란 것 같다는 근거 속의 내가 된 것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론 중학교 3학년때부터 그런 근거를 지녔고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그런 근거를 열심히 뽐냈다. 그러니 이 친구가 말하는 ’사랑받고 자란 나‘는 ’ 1년 반 동안의 나‘인 것이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친구였던 걸 생각하면 비교적 최근의 나에 더 익숙해진 것 같다.


나는 사랑받고 자란 사람으로 보이는 근거가 부모님께 사랑받았기 때문이라 말할 수 없다. 물론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부모님께 사랑받았기 때문에 그 근거의 내가 된 것은 아니다. 이건 정확한 사실이다. 왜냐, 나는 부모님께 사랑받지 않았던 적이 없다. 결국 부모님은 나를 사랑해 주시고 신경 써주시니까. 그럼 ’1년 반 동안의 나‘가 아주 어릴 때부터여야 말이 들어맞는다.


모순적이게도 난 중학교 2학년때까지 눈치를 많이 봤고 관계에 신경을 썼다. 매일을 친구들과 잘 지내려 노력했고 관계에서의 내 위치를 따졌다.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친구들이 나와 있어 줄지, 무슨 행동을 해야 나를 무리에서 떨어트리지 않을지, 시시때때로 계산하기 일쑤였다. 관계에서 뒤떨어지는 걸 두려워해서 그저 그 친구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내보일 뿐이었다. 나를 나 스스로가 부정했고 나 스스로가 비난하며 다른 색으로 덕지덕지, 덧칠을 해댔다. 그렇게 조금 있어 보이는 가짜의 나를 만들어내니, 이젠 내 주변 모두가 가짜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내가 상상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사실 그때의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대답하지 못했고, 혼란의 시기였다. 내 손으로 밀어 넣은 자책의 진흙탕 속에 나는 잠겨 있었다.




이런 내가 달라진 이유는 놀랍게도 부모님이 아니라, 혼자서도 편해 보이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봤는데, 그때 난 처음으로 혼자서도 편하게 다니는 친구의 모습을 봤고 점심시간에 혼자서도 편하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도 봤다. 어느 정도 친해졌을 땐, 동경심까지도 들었다. 옆의 친구를 보니 학교에서의 나를 돌아보게 됐고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이런 거였는데. 지금 나는 왜 이렇지? 사실 너무 힘들다.
저 친구처럼 되고 싶어.


나는 그동안 학교 안에서 혼자 있는 것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보면서 내 생각이 변했다.

아, 그동안 나는 너무 좁은 시야로 살아가고 있었구나. 그런데, 아직 저렇게 행동하는 건 두려워.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엄마와 나눴고, 엄마의 물음이 나를 행동하게 했다.

네가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나는 이 질문을 받고는 조금 생각하다 대답했다.

나한테 안 오지만 내가 가면 또 잘 지낼 것 같아. 내가 싫어할 짓은 안 했으니까, 나를 싫어할 일은 없겠네..


구체화하지 않은 두려움을 구체화했고, 그렇게 껍질을 까 보니, 별 거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내가 속으로만 정말 원하던 모습들을 하나하나 실현해 나갔다.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정말 나만 신경 쓰고 있었던 작은 것들부터 했다. 예를 들자면 쉬는 시간에 혼자 책을 읽는다거나, 공부를 한다거나. 조금씩 범위를 넓혀갔다. 그런데 그렇게 점점 혼자의 시간을 넓게 가져도 관계엔 전혀 별 일이 없었다. 오히려 힘들게 이어나가고 있었던 관계가 자연스레 허물어지면서, 내 본모습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더 친해졌고 그렇게 형성된 관계가 내겐 지금까지도 더욱 의미 있고 만족스럽다.

여기까지가 내 중학교 이야기이다. 내 친구가 말한, 내가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라는 근거의 1, 5번에 부합하는 이야기.

이렇게까지 주야장천 떠든 이유는 하나다. 눈치 보지 않고 남의 행동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내가 되기까지 부모님의 영향은 크지 않았다는 것. 중간에 엄마의 질문으로 행동을 시작한 건 맞고 아직도 이 부분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처음의 엄청난 어색함과 주변의 조그만 변화들을 견뎌내고 마주하며 끝까지 ’진짜 나‘를 추구한 건 ‘진심으로 이 상황을 바꾸고 싶었던 나’다. 혼자 잠깐 있다가 어색함에 져서 친구들과 어울렸다면, 또 비슷한 관계 고민을 했을 테고 그럼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나는 절실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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