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나중에 꼭 만족스럽길 바랐고 행복하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나를 괴롭혔다. 그래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어떤 이유가 있어야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단계를 거쳐 결과로 생기는 사랑과 믿음만이 값지고 진실된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이유를 만들기 전엔 나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나를 너무 사랑해서, 미래의 내가 이상향을 이루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서 그런 거라 여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현재의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이상향을 이룬 나를 사랑한 것 같기도 하다.
이유 없이 믿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도 사랑해’라는 말은 그저 텅 빈 말뿐이라 생각했다. 나를 믿는 마음의 크기는 철저히 여러 근거들이 얼마나 모였는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내겐 증명된 근거들로 인한 믿음만이 진짜였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쌓아 올린 믿음은 오늘 해낸 것, 결과에 따라 너무도 쉽게 변했다. 며칠간 나는 하루에도 나를 믿는 마음과 믿지 못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바꿔 끼웠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정신적으로 너무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안정적일 수가 없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쉽게 변하는 걸까. 급변하는 내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를 의심해야만 꿈꾸는 이상향이
미래에 이루어질 거라 믿었다.
나는 이상향의 실현을 원했다. 그래서 부족한 나를 의심하며 더욱 완벽히 준비하고, 성과를 내며 나를 믿으려 했는데, 이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나를 믿는 마음 없이 시작한 행동은 잘 되지 않을 때 불안을 더욱 높였고 자책을 일삼게 했다.
…
그런데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나를 괴롭히지 않아도 이상향에 닿을 수 있다면?
그냥 복잡한 생각은 뒤로 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나를 믿어줄 수는 없을까? 현재의 나는 이상향을 꿈꾸니까, 그런 나를 믿으면 이상향에 맞는 행동을 자연스레 하지 않을까? 내 마음이 직장도 아닌데 성과를 내야만 사랑과 믿음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참 웃긴 짓인 것도 같다.
바쁘게 사는 하루만이 의미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졸면서도 해야 할 것들을 해내고서야, 나는 나를 사랑해주었다. 하지만 삶이란 매번 똑같을 수 없다. 열심히 일하면 열심히 휴식을 취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필요한 휴식을 취한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마저 직장으로 여겼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체를 사랑하고 아껴주지 않았다. 열심히 산 나만을 사랑했고 오늘 해낸 것들을 척도 삼아 나에게 사랑이라는 마음을 보상으로 주곤 했다. 나는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말 유일하게 나만이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무것도 없는 나 자체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내가 그 행동은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10대, 1년 2개월이 남은 이 시점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지, 결과는 어떨지 참으로 궁금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한 행동으로 채워보자. 1년 2개월 후에 지금 드는 내 생각이 진짜 맞았는지 살펴봐야겠다.
23. 0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