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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별 Aug 17. 2023

자학이었다


8월 10일

저장되어 있던 글을 수정한 마지막 날이다. 백지에 새로운 글을 쓴 지는.. 2주 정도 된 것 같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마음이라는 실타래를 풀어보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나는 2주간 내 마음을 전혀 보지 않았다. 볼 시간은 있었다. 공부를 다 하고 쉴 때, 여러 기회가 있었음에도 난 매번 쉬운 쾌락이라는 열매(유튜브, 웹툰)를 선택했고 열매의 달콤함에 듬뿍 물들여졌다. 새벽 2시나 3시가 되어서야 잠들었고 달콤한 포만감은 너무나 쉽게 증발했다. 그리고 다음날 또다시 나는 그 달콤함을 찾곤 했다. 스스로 했던 약속은 너무나 쉽게 묵살됐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 버틸 것 같았다.

공부도 잘 풀리지 않았고 참 버티며 살았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다시금 글로 돌아왔다. 분명 내 성격에 맞는 공부법으로 호기심 있게, 재미있게 해 보겠다 다짐했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 흐릿해진 의미를 구체화하지 않았다. 몇 없는 계획, 그마저도 나는 도망쳤다. 자존감은 줄고 좁은 시야에 기대 살았다. 진정한 나에게 집중하지 않으니까 외적인 나에게 집중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예전의 내 모습이 반복되고 있음을 눈치채자 나는 모든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충격적이었기에.

왜 그때로 다시 돌아온 걸까.
내가 집중해야 하는 건 뭐지?
어떻게 집중할 수 있을까.


정체성은 그 사람의 행동으로, 말로 표현된다.

그 말인즉슨,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 내가 요즘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부 말고 도대체 나는 무얼 한단 말인가. 글도 쓰지 않았고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나는 2주간 일러스트작가라는 정체성을 인정할 나름의 행동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상기시키지 않았다.



공부든 글이든,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할 때, 친구 Y와 이야길 나눴다. 거진 40분 정도. 수학 공부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말들이 몇 가지 있다.


문제집은 개념이 응용된 문제니까 한 번 틀려도 다음에 맞출 수 있어, 나는 다음에 맞추면 오히려 좋던데.

”다음에 또 못 맞추면?“

또 다음에 풀어서 맞추면 되지.


이 마인드는 정말 새로웠다. 나도 한 번에 맞추는 게 거의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Y는 아예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 틀리는 건 정말 상관없는 것으로 여겼다.


지금 맞아서 뭐 해. 시험 문제는 다르게 나오는데.

“그건 그렇지..”


나는 문제 풀 때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공식을 만든 거지?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이런 풀이를 만들 수 있는 거지?
처럼, 화도 좀 내고 그냥 푸는 편이야.

나는 나를 탓하면서 지금 틀리는 건 내가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즉, 내가 예습한 부분의 문제가 틀렸으면 예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나에게 잔소리를 일삼았다.


‘풀어야 되는데’가 아니라
‘풀리겠지’라고 생각해.


부담이 꽤 덜어졌던 말이었다. 나는 매번 당연하게 풀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하며 풀었는데 Y는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문제를 마주했다. 지금 내게 정말 필요한 말이었던 것 같다.


너무 결과만 생각하지 마.
넌 너무 완벽주의 기질이 있는 것 같아.


중간중간엔 조금 뻔한 말도 있었지만, 나는 그 뻔한 것조차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자학하며 살아온 것 같다. 나는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문제를 풀거라 어림짐작 했었는데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나를 자학하는 습관은 정말 버려야겠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시간과 진심이 담긴 Y의 말은 너무 고마웠다.



오늘은 5, 6교시에 동아리 활동을 했다. 우리 학교 미술 동아리는 꽤 자유로워서 이번에도 사물은 자유였기에, 무얼 할 지 조금 고민 중이었는데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 그냥 그 순간 끌렸다. 자학하는 이 마음을 쓸어 담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복잡하게 살아온 2주가 너무 버거웠고 외로웠다.



실기로 대학을 갈 건 아니기 때문에 잘 그리는 건 필요 없었다.

나는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마음 편히 샤프를 들었고 그것들에게서 느껴지는 것들을 선으로 구체화했다. 무얼 중점에 두고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상상하며 그려나갔다. 그림에 빠져 헤엄치자 아이디어는 조금씩 샘솟았다. 그리고 마음속 무언가는 빛을 보았고 자유를 찾은 듯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분리수거 팻말을 적을 땐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그동안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았어! 그리고 매일 해나가고 있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말하기까지 했는데,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었으며 내가 습득한 것이었다면 이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니까. 나는 이해하지 못한 내 모습, 행하지 못한 모습을 외면하려 내 마음의 심연 속으로 던져버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빛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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