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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 Jun 20. 2024

서른에 찾아온 사춘기

부모님의 결혼 반대와 함께 사춘기가 찾아오다.

 평범한 집안에서 장녀로 자라 꽤 괜찮은 딸내미로 살아온 지 30년이 되었다. 워낙 집순이 재질이라 20대가 되었음에도 밤늦게 집에 오는 일은 손에 꼽았다. 또 승부욕은 꽤 있는 편이라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성적도 중상위권을 계속 유지했고 대학에서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자랑스러운 딸내미로 등극했다.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나는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게 취직을 했고 직장을 다녔다. 돈을 모았고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며 나의 또래들과 인생을 발맞춰 잘 살았다. 20대 후반이 되어보니 슬 친구들과 길이 갈리기 시작했다. 결혼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아이가 있는 친구도 생겼다. 그에 반해 비혼을 선언한 친구도 있었고 해외나 타 지역으로 가서 혼자 삶을 꾸려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뿔뿔이 흩어지는 친구들을 보며 "부럽다"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들만의 인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빚어 만들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대견하고 부럽다고 느껴졌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주말에 놀러 나갈 때면 몇 시까지 집에 들어오겠다고 부모님께 보고를 하는 나 자신을 보며 뭔가 한심함을 느꼈다. 


물론, 부모님께는 감사했다. 내 돈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집에는 항상 배를 채울 뭔가가 엄마의 정성으로 차려져 있었고, 늘 나의 안부를 걱정해 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다는 게 나는 감사하게 느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를 불편함이 자꾸만 생겨났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나무랐다. 남들은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 먹고 싶어 하는 데 매일 그걸 먹고 있는 스스로는 그게 싫다고 느껴질까. 참 나쁜 아이구나. 남들은 아빠와 거리감 없이 이야기하고 전화하는 것을 부러워하는데 나는 왜 그게 귀찮게 느껴지고 간섭이라 느낄까. 나는 참 복에 겨운 아이구나. 하며 스스로를 '행복해야만 하는 아이'라고 통제했다.


그러던 중, 내가 30살이 되면서 나는 사귀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있진 않았지만 소소하게 우리끼리 작은 결혼식을 하고 조그만 집 월세를 구해서 시작하면 될 거라는 계획으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그렸다. 걱정도 물론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설렘과 희망의 감정이 가득 찼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어떻게 재테크를 할 것이며 투자나 경제적인 관념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사람과 함께라면 정말 행복한 나의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크리스마스날 가족이 다 모인 앞에서 중대발표를 했다. "나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부모님은 놀란 눈치셨지만 그러면서도 금세 침착해지셔서 내 남자친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셨다. 부모님은 왜 인지 그 사람이 성실한지 어떤지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 사람의 집안은 얼마나 잘 사는지,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내 남자친구의 직업은 어떤지, 대학은 어디를 나왔는지 그런 것에만 관심 있게 질문을 했다.


나의 남자친구는 나의 기준에서 꿀리는 것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더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부모님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결혼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그런 것까지 다 생각해야지. 다시 생각해 봐라. 결혼을 반대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나는 세상이 하얘진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대꾸할 생각조차도 나질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한다고 하면 나는 부모님이 조금 별로라도 얼굴이라도 보고 밥이라도 먹자 할 줄 알았다. 딸이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는데 그러면 궁금하기라도 하지 않을까 했으니깐. 그런데 얼굴도 보기 싫다고 왜 수준에 맞지 않은 결혼을 하려고 하냐는 부모님의 말씀에 뒤통수를 정말 세게 후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언제나 부모님이 말씀하시기를 "성실한 사람", "책익감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말에 나는 정말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걸 최우선으로 나의 이상형을 정해왔는데 이제 와서 그것은 정답이 아니었으니 다시 정답을 찾아오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나는 큰 배신감을 느꼈다.


나는 며칠을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거절당한 이유는 하나였다. "경제적인 차이." 우리 집과 그의 집안 재정적인 차이가 크긴 했다. 하지만 나도 결혼에 있어서 재정적인 부분도 무시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집안에 대한 재정사항도 결혼을  다짐하기 전에 미리 오픈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었다. 나도 나름의 깊은 고민과 생각 끝에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것이었다. 하지만 30분도 안되어서 내린 부모님의 결정에 나는 심히 상처를 받았다.


처음에는 내 의견은 듣지 않으시는 부모님, 단지 겉으로만 보고 판단을 내리는 부모님께 실망감을 느끼고, 두 번째로는 성실한 남자를 찾으라더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배신감, 그리고 세 번째로는 나의 생각은 안중에도 궁금해하지 않으신 부모님에 대한 원망감이 커졌다. 나는 분노와 억울함이 섞인 감정으로 일주일 넘게 보냈다. 혼자 밤에 자려고 누워있으면 온갖 생각에 잠겨 잠도 자지 못했다. 속상함과 어떤 부정적인 마음이 뒤엉켜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내 선택이 잘 못된 건지 계속해서 곱씹으며 생각도 해봤다. 부모님이 반대한 결혼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며 남자친구와 지내온 4년의 시간을 곱씹어보기도 했다. 헤어져야 하나 고민도 했다. 시작부터 어려운 결혼, 잘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기도 했으니깐. 그렇게 두 달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남자친구에게는 우리 결혼을 미루자고 말했고 남자친구도 눈치껏 알아들었다. 그러면서 남자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자신이 못나 미안하다고, 너를 더 힘들게 한 것만 같다고. 자신이 어떻게든 더 노력해 봐야겠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깊은 고민 끝에 나는 결혼은 뒤의 문제고, 부모님과 나의 사이에 뭔가가 문제가 생겼음을 인식했다. 부모님의 말씀에 왜 그렇게까지 감정적이었는지 알아야 했다. 부모님이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부모님과 나의 생각은 다를 수 있음을. 그리고 이건 나의 인생을 나로서 오롯이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고 충분히 이야기해 봐야 하는 문제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30대에 뒤늦은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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