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젠더살롱
몸을 둘러싼 글을 써보았다.
사실 애초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던지라 주변 여성들이 풋살, 크로스핏, 주짓수 같은 것을 열심히 하면서 다쳐서 오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학교 운동장에 눈돌리며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몸을 향한 사람들의 기대가 너무나 다르다.
최근 나온 기사에서도 여성들은 저체중이나 정상체중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체중 감량을 시도한다. 이 서로 다른 기대가 마치 그냥 '다른' 것으로만 이야기 되지만, 실은 그것이 어떤 기능을 박탈시키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자원, 권력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새해가 밝았다.
한동안 일기장에 2023년이라 써놓고 '아차' 하며 그 위를 새로운 숫자로 채우는 일들이 반복된다는 의미다.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연연하지 않고 싶지만 또 그만큼 무거워지는 몸은 시간을 비껴갈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새해에는 그렇게 운동을 다짐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운동이라고는 사회운동(Movement)만으로 충분하다고 변명하던 날들을 뒤로하고, 살기 위해 본격적인 운동(Exercise)을 해보겠다고 다짐하며 의욕을 앞세우다가 자잘한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
돌이켜 생각해보면 몸에 대한 서로 다른 기대는 세상 곳곳에 흔해서 아주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쌓여 왔다. 이를테면 반에는 힘이 조금 세거나 활발한 성격에 ‘조폭 마누라’라는 영화 제목에서 비롯한 별명을 가진 여자애들이 꼭 한 명씩 있었다. 키가 조금 크거나 덩치가 큰 여자애들은 남자애들과 비교 대상이 되며 놀림거리가 됐고 그들의 어깨는 자주 움츠러들었다.
성인이 되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 차이는 주민등록증 두께만도 못했다. 대학생 시절, 학교는 넓고 산 중턱에 위치한 단과대도 많아서 지각을 면하려면 재빠른 발은 필수였다. 헐레벌떡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중에는 아찔하게 높은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성 학우들이 있었고 그 모습은 서커스처럼 신기하면서도 위태로웠다.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생계유지에 힘쓰는 지금도 사정은 비슷하다. 강의를 하러 갈 때면 부랴부랴 준비를 하느라 마음이 늘 촉박하다. 준비물을 잘 챙겼는지, 강의안은 충분히 숙지했는지 신경 쓸 시간도 부족하건만, 때로 카메라 앞에 서거나 중요한 자리다 싶을 때면 소소하게나마 뭘 또 찍어 바르고 머리에도 잔재주를 부려야 했다. 나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주변 여성동료들에게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
남성에게 기대하는 기능하는 몸은 그 자체로 건강한 상태와 직결되거니와 사회의 권력과 자원을 획득하게 하는 데 여러모로 유리하다. 위기상황에서 더 손쉽게 벗어나게 하고 때로는 권력을 전복하거나 상대의 폭력에 대응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반면 여성에게 기대되는 보이는 몸은 어떤가? 그것을 더 잘 수행할수록 건강해지기는커녕 외부 상황에 취약해지기 쉽다. 이로 미뤄 보았을 때, 우리 사회 몸 규범은 남성에게 자원이 독점된 가부장적 권력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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