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ft. 줄쓰큰)

2019 이한의 백수생활_백수기 #2 (2019.01.26.)

by Nut Cracker

<독후감>

2017년,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 이라는 페미니즘 공부 모임에 참여했다.

남성들도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한다는 취지로 성별을 망라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었다.


일원으로 함께하면서 기억 남는 논의 중 하나는 '이름'을 둘러싼 갑론을박이었다.

'남성을 위한'이라는 대목에서 이퀄리즘의 냄새가 난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실제로 구성원들도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오해가 번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이름을 바꾸자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다.


‘남성도 함께하는 페미니즘,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남성이 함께하는 페미니즘...’


각종 조사들을 둘러싼 사소하지만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다.

너무 남성들만이 주체로 부각 되거나 이퀄리즘 느낌이 나지 않으면서 남성들을 대상으로 페미니즘을 공부 한다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전달력 있는 이름을 찾기 위해 긴 토의를 거쳤다.


끝내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하 남함페)으로 결정 되었으나 정작 깨달은 것은 이름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남성’과 ‘페미니즘’이라는 두 단어 사이의 위화감은 단어의 배치나 조사를 바꾸는 것으론 극복할 수 없었다. 특히, 이 ‘남성’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해로움은 쌓아온 역사만큼 때가 덕지덕지 쌓여서 어찌할 노릇이 없었다. 가해자, 방관자, 동조자, 찌질함, 피해의식, 게으름, 왜곡, 혐오세력 등 떠오르는 연관검색어는 안고 가야할 업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함페 활동에 이유 있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함께 하고 있는 나도, 자신이 없다. 내가 저지른 잘못들을 주워 담기에도 모자란데, 글을 쓰고 모임 활동을 하는 게 가당키나 할까 싶어 죄 없는 이불만 찬다. 그렇게 이불을 차다가 남는 시간엔 죄 많은 내 엉덩이도 걷어찼다. 하지만 낙담과 자조는 너무 손쉬운 해결책이다.



“새로운 주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형성되는 사회적 과정에 개입하고 그 과정을 바꾸어내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책 277쪽)


책의 말마따나,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그 시스템과 지배를 해체하는 법을 고민해야 하고 이 고민을 이어갈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야 다. 특히 그 주체 형성 과정에 조금이나마 개입하여 과정을 바꾸어내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거의 전부일지 모른다. 더구나 그게 지금까지 ‘남성’에 때 묻히는데 함께한 동조자라면, 낙담과 자조는 변명처럼 들리고 말 것이다.


다행히 남함페에도 또 주변에도 조금씩은 앓고 닳았으면서도 또 조금씩은 지혜롭고 탁월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갈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도에 힘을 복 돋아준 이 책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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