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기 #12 (2019.08.12.)
1. 남성 페미니스트를 찾습니다.
서울시NPO지원센터 활력향연 지원을 받아 <남페미를 찾아서>라는 공론장을 열었다.
꼬박 일주일을 넘게 곱씹곤, 이제야 겨우 기록을 남긴다.
다분히 사적인 이유로 시작한 활동이었다.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 공부하기 시작했고
공부하면서는 하나씩 발견되는 불편함을 해소하려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간 조잘거리고 보니 다른 남성들을 손가락질하고 질타하는 내 모습이 황망했다.
그런 방식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가닿겠으며, 고작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 짓는데
그치는 건 아닐까. 운 좋게 좋은 사람과 환경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라고 얼마나 달랐을까. 자신의 활동범위와 역할을 한계 짓는 것도 어색했다. 내게 이 활동은 스위치 켜고 끄듯 조절 가능한 영역인가.
어디 그 뿐일까. 주변에는 나날이 폐허가 늘었다.
오랜 관계에 균열이 스며들었고 매번 자신을 향한 자책이 반복됐다.
거대한 사회문제 앞에서 내 고민은 사소해질 뿐이었고 바스러진 삶은 사막을 이뤘다.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드는 고민은 어디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앵무새처럼 남 말을 반복하거나 속죄로 끝나는 활동 너머,
개인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상상할 수는 없을까?
2. <남페미를 찾아서> 공론장 그 이후
그렇게 기획된 행사였다.
페미니즘을 접한 계기를 나누면서 남페미 시작의 실마리를 찾고,
남함페 활동을 통해 쌓인 고민을 전달하였으며
페미니즘을 접한 뒤 겪은 변화를 서로 이야기 나눴다.
사람 사는 모습은 대체로 비슷해서 다들 각자의 영역에서 분투하였겠으나
또 동시에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지난했을 테니까.
이 자리가 소중하고 꼭 필요했을 거라고, 감히 짐작한다.
다만, 드는 걱정과 아쉬움은,
이 활동이 또 다른 남성연대로 변질되지는 않을까.
또 서로를 토닥이고 마는 자조모임에서 그치는 건 아닐까.
지난 번 읽은 한 책에서는 남성 페미니스트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른 집단하고는 다르게 아주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페미니즘과 성정치를 이야기하는 남자들은 기대와 태도, 개인적 스타일과 대면적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추지, 경제적 불평등이나 제도화된 가부장제 또는 정치 운동으로서 페미니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194쪽, <남성성/들>, R.W 코넬, )
코넬이 말한 ‘남성 동맹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배움이 짧은 지금의 나로선 막연히 어림짐작할 뿐이다.
다만 운이 좋다면 이 활동이 초석이 될 테고, 운이 나쁘면 반면교사가 될 테니
그럭저럭 나이스한 과정을 보내고 있다고 자화자찬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찌되었든, 행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수많은 영수증과 고민을 남긴 채, 이번 턴을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