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강사 모임 ‘모들’에서 <000에게 성평등이 필요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기획, 진행했다. 강사가 각 대상에 필요한 강의를 기획해서 진행하는 강의였고 나는 남성을 대상으로 강의를 준비했다. 문제는 참여자를 모집하고 보니 남성보다 남성에게 어떻게 페미니즘을 전달할지 고민하는 활동가 선생님들이 훨씬 많았다. 급하게 강의 기획을 변경하여, ‘남성과 페미니즘’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절반, 남성 대상으로 성평등 강의할 때 쓰는 내용 소개 절반으로 구성했다.
참여자 모집 과정에 몇 가지 이슈가 있었지만, 그래도 당일까지 14명이 신청하여 애초 목표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런데 막상 강의 당일, 시간이 되었는데도 참여자가 3명 뿐이었다. ‘불광이 멀어서 늦게 오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강의를 진행했는데 결국 끝까지 더 오는 사람은 없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보증금이라도 받았어야 할까. 전날 연락을 좀 더 남겼어야 할까. 최근 앞서 말한 몇 가지 이슈로 강의 기획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못했다. 선생님들 말마따나 불려가서 강의만 하고 돌아오는 강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전반을 신경쓰고 컨트롤하는 기획자가 되었어야 했는데, 변명은 소용이 없고 실패는 배움을 남긴다.
01. 성평등 교육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참가자가 3명이어도, 강의는 진행 된다.
그래도 활동가 선생님들이라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다.
도입부는 남성이 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전에 사용하던 ‘개인 경험에서 비롯한 남성이 페미니즘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의 간소화 버전인데, 이것 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 같다. 다만 이렇게 했을 때,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된다’”(출처 : 정경직, <페미니즘의 쉼표, 이분법 앞에서>, 43쪽) 는 메시지 전달이 다소 약해지는 것 같다. 지난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시도가 사람을 페미니스트로 만들 수 있음을 한 번 더 강조해야겠다.
02.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빠르게 도입을 마무리하고 참여자가 가장 궁금해 할 것 같은, ‘남성과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로 들어갔다. 청년시기는 직장생활, 경제활동을 시작하며 성차별적 현실을 맞닥뜨리고 이 과정에서 성평등 의식이 커진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불법촬영 규탄시위’ 등은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이다. 뿐만 아니라 4B운동, 탈코르셋 운동, 먼지차별 등은 기존 일상의 사적이고 사소하다고 여겨지던 부분까지도 성차별과 폭력이 만연함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고자 하는 목소리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흐름에 남성청년은 예외인 것처럼 보인다. 시사인 3부작에서 그려지는 남성청년의 모습은 ‘안티 페미니스트’ 그 자체다. 물론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페미니스트는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활동가는 마냥 이러한 현실을 욕하고 자조하기 보다, 어떻게 이들과 함께 페미니즘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변화하는 남성성과 성차별’ 연구, 2019년 활력향연 ‘남성페미니스트를 찾아서’를 토대로 한줌 희망을 살펴봤다.
먼저 계속 이야기 하는 건, 그래도 1/4에 해당하는 ‘반성차별주의 성향’의 남성 청년이 있다는 것. 물론 아주 소박하고 미미하지만, 그래도 생각하던 것 보다는 많은 숫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개별 이슈로 들어가면 남성청년 사이에서 ‘여성 차별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20대 42.5%, 30대 48.8%로 늘어난다. 이를 비단 인지부조화로 생각할 게 아닌, 변화 가능성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급한 희망) 다만 이 부분에서 ‘여성 차별 반대 운동 지지’에 대한 숫자가 맞는지, 맞다면 그 자료 출처를 좀 제대로 명기해야겠다. 그리고 ‘페미니즘 정보 접촉 경로’를 살펴보며 페미니즘을 접하는 경로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활력향연 ‘남성 페미니스트를 찾아서’는 위 연구를 활동으로 풀어낸 자료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남성 중,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계기를 물었다. 주요 계기로 세 가지를 발견했다.
첫째,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해석하고 사회운동으로 승화하는 움직임이 남성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친밀한 관계의 조력자’다. 앞서 여정원 연구 및 개인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들에게는 페미니즘을 접하고, 관심갖게 만든 애인, 친구, 가족, 동료 등 친밀한 관계의 조력자가 있었다. 이는 이후, 다른 남성을 타자화하고 그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셋째, ‘문화자본’이다. 서툴고 거친 표현이고 근거도 아직 희박하지만(관련해서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이야기 좀 해주세요) 페미니즘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서 수업이나 스터디, 동아리 등으로 페미니즘을 접했다고 이야기 했다. 수도권에서 살며 관련 교양, 대중 강의를 들을 기회가 많았다는 것도 문화자본이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후 이들의 실천 양상을 짧게 살펴봤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실천 양상에 두드러지는 게 별로 없다. 내 조사가 부족한 것인지, 실제 많은 남성 페미니스트의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어서 어려움과 한계를 이야기했다. 이른바 ‘속죄 페미니즘’이라 두루뭉술하게 부르는데, 하나는 ‘내가 자격이 있을까?’로 대변되는 소극적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나 손 쉬운 타자화’다. 둘 다 결국 활동과 관계가 위축되고 고립되며 활동할 여력, 공간은 협소해진다.
이는 코넬의 지적과도 이어진다.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른 집단하고는 다르게 아주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 페미니즘과 성정치를 이야기하는 남자들은 기대와 태도, 개인적 스타일과 대면적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추지, 경제적 불평등이나 제도화된 가부장제 또는 정치 운동으로서 페미니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_R.W.코넬, <남성성/들>, 이매진, 2013, 194쪽
2장은 페미니즘이 ‘성차별과 성차별주의로 인한 차별과 억압을 종식하기 위한 운동’임을 강조하며 사회구조 문제 변화를 위해 힘쓰는 정치운동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03. 특권과 성인지감수성
3장부터는 남성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강의 할 때 어떤 구성으로,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를 중점으로 이야기했다. 최근에는 ‘특권’ 개념 설명을 도입으로 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너무 쉽고 이해하기 좋게 잘 설명해서 이 내용만 잘 이야기 해도 ‘성인지감수성’으로 이어지는 게 굉장히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특히 성인지감수성을 이야기할 때, 최근 청소년들이 ‘관짝 소년단’을 패러디하며 논란이 되었던 사례를 추가했는데 이 부분이 마음에 든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갑론을박 했는데, 청소년들이 악의를 가지고 하진 않았을거라 믿는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블랙페이스’가 가지고 있는 인종차별의 역사로 인해 이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의도와 다르게 불편하게 읽힐 수 있음을 인지하고 고려하며 나아가 개선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 예를 들어, 이 청소년들이 관과 복장을 정성스레 준비한 만큼 블랙페이스만 개선하더라도 충분히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성인지감수성을 가진 태도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이어서 ‘나의 성인지감수성 점검하기’ 파트는 아주 두고두고 잘 써먹고 있다.
설명 예시도 적절히 바꿔서 잘 쓰고 있다. 다만 이 파트에 통계라던가 구체적인 숫자 등이 많이 활용되는데 아직 암기가 부족해서 종종 화면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숫자를 좀 더 철저하게 외우자. 그래도 이 파트에서 참여자가 이야기할 거리가 조금이나마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지적 관점으로 마주하기’는 조금 점검이 필요할 것 같다. 다소 ‘성인지적 관점’과 동떨어진 이야기도 있고 대상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었던 것 같다.
04.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페미니즘 강의의 딜레마가 있다. 강의가 아무리 좋아도 늘 아는 사람만 오고 막상 필요한 사람은 오지 않는다. 그런 점을 고려하여, 강의를 듣는 사람은 성평등 동반자가 되어 페미니즘을 확산하고 실천하는 역할을 해야하고 나아가 성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4장은 해당 내용을 담았다.
그 시작으로, 권김현영 선생님의 ‘차이나는 클라스’ 영상을 담았다.
(자료 : JTBC, <차이나는클라스>, n번방을 키운 사회, 끝내는 핵심 포인트☞ 목격자 차이나는 클라스(jtbclecture) 161회, 2020.6.15.) 2분의 짧은 영상에 위 문단 내용을 다 담았고 심지어 재밌기도 하니 아주 유용하다.
이어서 성평등 공동체와 회복적 정의 구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먼저 성평등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문화적 조건을 설명했다. 이 부분이 다소 뻔한 것 같다. 수평적이고 민주적이며 평등한 문화? 이것만큼 모호하고 당연한 얘기가 또 있을까? 그런데 또 빼자니 이야기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고민이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이후 시스템과 구조 설명은 그래도 조금 괜찮다. 특히 사례 보고서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평등 동반자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성평등 동반자가 되기 위한 연습을 네 단계로 진행한다.
첫째, 누군가의 성인지감수성 부족으로 불편한/했던 상황을 공유한다.
예를 들면, ‘화장을 지적 받은 경험’. 공동체에서 이를 공유하여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
둘째, 불편한 상황에서 표현/대처법을 공유한다.
최소한의 자기방어를 연습하는 것도 있고 더 중요한 건, 이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이 불편한 상황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다른 구성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셋째, 목격자의 적극적 개입 연습한다.
첫째와 둘째를 공유했다면, 이제 공동체 구성원이 어떤 상황을 불편해하고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숙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불편해하고 있을 때, 성평등 동반자로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이 대목에서 많이들 어려워한다. 여전히 문제는 당사자 간 해결하고 와야 할 과제 정도로 생각한다. 결국 이런 태도가 문제 발생 시 방관자를 만든다. 공동체가 안전하고 성평등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를 함께 머리 맞대고 논의하고 해결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불편을 초래한 당사자로 지목된다면?
앞서 특권 개념에서 살펴 보았듯 특권은 아주 다양하게 상호 교차하기에, 우리가 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해도 언제든 문제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염두해야 한다. 이 때 어떻게 그 지적을 받아들이며 충분히 책임지는 자세를 보일 것인가.
이어서 강의 마무리는 배우 김윤석의 사례다. 그리고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비단 김윤석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사회에 성평등 동반자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임을 강조하며, 그래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음을 이야기 했다. 역시 마무리는 그래도 희망이 필요하니까.
‘페미니즘은 예방주사다’ 이야기도 넣었다. 계속 사용하던 마무리인데, 오늘은 이야기 하면서 이게 자칫 질병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거나 ‘건강한 몸’에 대한 정상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해지기 위해 예방주사를 맞는 게 아니라, 코로나19, 독감과 같은 전염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또 남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주사를 맞는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로 알고나면 다소 불편하고 어려울 수 있지만, 나를 위해 또 남을 위해 필요하다’ 이 정도의 메시지면 괜찮은가? 그런데 오늘은 왜 어렵게 느꼈을까. 젠더온에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교수님이 있다는 조언을 들었는데 동영상을 살펴보며 한 번 참여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봐야겠다.
강의가 끝나고
강의가 끝나고 조금 시간이 남아서 참여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너무 좋게 이야기 해주셔서 정말 눈물이 찔끔 날 뻔 했다. 다 너무 좋았지만 개중 가장 감동적이고 좋았던 건, 강의를 들으면서 ‘불편하다’고 느꼈던 지점이 없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참여자가 활동가라 유난히 더 신경쓰긴 했지만, 그만큼 다들 예민한 감수성으로 보았을텐데 언어나 말투, 태도, 강의내용 등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니 너무 다행이다.
페미니즘을 머리로 아는 것과 삶의 태도, 행동으로 받아들이는 것 사이 괴리가 어려웠다. 그 간격을 좁혀나가는 게 결국 활동의 알파이자 오메가일텐데, 오늘은 그래도 베타까지는 다가간 것 같아 뿌듯하고 행복했다. 이어지는 사건 사고와 우울의 나날에서 위로 받았다. 오늘은 비록 소규모 참여자였지만, 그래도 강의는 이제 막 시작했고 앞으로 기회는 또 있을테니까. 자, 다음 목표는 남자 고등학교, 남자 대학생 교육이다. (의욕넘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