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성에 대한 단상

감정표현에 인색한 남성성

by Nut Cracker

201101_남성성에 대한 단상


남성성 대체 뭘까.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활동할수록 남성성 대체 뭘까 싶다.

막연하게 나를 포함한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감정표현을 억제하고 폭력성을 내재하며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이야기 하는데, 대체로 두루뭉술할 때가 많다. 우리나라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무엇이며 어떠한 형태로 발현할까. 그 주변부는 어떻게 종속, 공모되어 있나.


일단 남성성과 관련한 개인의 경험을 모으면 어떨까.

동정으로 기울지 않고 타자화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남성성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가변하며 사소하고 동시에 뿌리 깊은지 드러내 보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젠더이분법과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남성성이라는 한 축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갑자기 써보는 남성성에 대한 단상.


올해 초, 정말 오랜만에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함을 이겨내고 미소를 짓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다들 그랬지만, 유독 아빠가 의아할 정도로 미소 짓는 걸 어려워해서 여러 번 NG가 났다. 사진을 찍어주는 선생님은 머쓱해하는 아빠에게 중년남성들이 대체로 다 저렇게 잘 웃지 못한다고 위로했다. 아빠는 나름 웃상(눈이 작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이고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을 대면할 기회가 많아 사회적인 편일텐데도 웃음 짓는 것을 어려워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중년 남성이 환하게 웃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성격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환한 미소를 띈 중년 남성의 얼굴’을 보거나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김호성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의 다섯 단계가 있어요. 임종과 관련된 극단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 상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정 단계가 있고 그 다음이 분노-협상-우울-수용을 거친다는 건데, 사람마다 강하게 경험하는 감정이나 순서는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특징적으로 아버님들은 부정을 강하게 경험하세요. 그에 비해서 어머님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수용하시는데, 다만 다른 사람을 걱정 하느라 그 시간을 잘 못 보내요. 주로 자식이나 남편이죠. 제가 어머님들에게 자주 하는 게 “어머님이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거든요. 아버님들에게는 이런 얘기 안 해요. 할 필요가 없어요.
- 출처 : 장일호, ‘아파도 미안하지 않으며 질병도 비극이 아님을’, 시사인 685호 2020.11.3.

* 시사인 685호 기사 ‘아파도 미안하지 않으며 질병도 비극이 아님을’에 나온 남성성의 한 모습


많은 성평등 교육활동가들이 가장 어려운 강의 대상으로 늘 중년남성이 많은 곳을 꼽는다. 교장, 교감 선생님, 군과 경찰 고위직 등 직종을 막론하고 중년남성들은 이른바 ‘체면’을 차리느라 웃거나 호응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고 한다. 그렇게 웃음기를 쫙 빼고 차린 체면이 남성성을 수호하는 것 외에 무슨 기능이 있나 싶다. 행복하게 웃지도, 수평적 관계를 맺지도 못하는, 정말로 차린 것 없는 상이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비극이다. 환히 웃는 아빠를, 강의를 들으며 자지러지게 호응하는 중년남성을 희망한다.


이를 ‘감정표현에 인색한 남성성’ 정도로 불러야지. 누가 대신 연구 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시리즈로 남성성들이 묶이면 나중에 ‘K-남성성/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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