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9_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마음잇다 상담사 성인지감수성 강의후기
이래저래 싱숭생숭하고 심란한 4월.
번잡한 말들이 속 시끄러 이래저래 피해다니며 일로 도피하고 있고 그게 또 제법 적성에 잘 맞는다. 강의안 깎는 노인이 되어 세간의 떠도는 말들은 흘려 넘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이하 활지센)에서 진행하는 마음잇다 상담사 선생님을 대상으로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진행했다. 활지센과 함께하는 강의는 믿고 수락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걱정이 앞섰다. 전문성을 갖춘 상담사 선생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조금 부담스러웠고 무엇보다 40~50명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강의라는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이런 걱정은 모두 기우였고 도리어 지치고 힘들 때 슬쩍 꺼내어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응원을 잔뜩 받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부담과 걱정스런 마음에 강의안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있겠지만, 사실 나란 인간은 거의 매번, 모든 강의에서 그 정도 불안과 걱정은 상시 달고 다니는지라 별다를 것 없는 일이었다. 비록 짧은 경험이지만 나름대로 생각해보건데, 강사의 준비와 강의를 주최하는 측, 교육 참여자, 이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하는 것 같다.
먼저 활지센은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특유의 섬세함으로 참여자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신경썼고 강사가 놓치고 지나가는 일이 없게끔 매번 모든 강의에 적극적으로 피드백해줬다. 같은 강의를 세 번 정도 하다보면 나부터도 같은 농담과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는게 민망스러운데 매번 너무 잘 참여해줘서 느슨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애초 강의를 의뢰할 때부터 다른 곳과 다르다. 정성이 담긴 강의 요청서와 꼼꼼한 프로그램 안내를 받으면 그 어느 강사라도 준비에 의욕과 힘이 담길 수밖에 없다. 강의에 따른 피드백도 남겨주신다고 하니 또 다시 성은이망극하다. 이런 청년단체와 곁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건 참 큰 행운이다.
교육 참여자는 배움에 대한 의지가 엄청났다. 상담사라는 특성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더구나 이 프로그램이 상담사 선생님들에게도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는게 상담 선생님들이 다양한 청년과 접점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생각된다. 애초 나부터도 작년 이 프로그램으로 처음 상담 문턱을 넘었다. 그간 비용이나 편견 등으로 문밖을 서성이던 청년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건 지원 사업 대상자인 청년 못지 않게 상담 선생님들에게도 너무 좋은 기회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참여가 진짜 적극적이었다. 채팅창도 열심히 활용하고 서로 정보도 주고 받고,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등 생소한 단어나 내용이 나오면 휘둥그레 하며 열심히 기록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자친구’, ‘남자친구’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가 내담자와 관계 형성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 등을 공유하면서 성인지감수성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배움에 대한 의지를 함께 불태웠다. 개중에서도 제일 감동적인 장면은 막바지에 담은 서로의 경험과 고민, 노하우를 공유하는 장이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상담자 모임 ‘성상모’, 내담자가 편하게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도록 퀴어 프렌들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레인보우 스토어’, ‘무지개점’을 들려볼 것 등 각종 정보를 나눴다. 각자의 시행착오를 나누고 서로를 다독이는 시간, 이거야 말로 강사가 일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더 필요하고 중요한 교육이 아닐까.
온라인 강의 환경과 방법에 익숙해진 것도 한 몫 했다.
일단 노트북과 함께 듀얼 모니터를 사용하고 확장으로 세팅한 후, 연결된 모니터에 PT 화면을 공유 한다. 그리고 노트북 모니터 절반에는 발표자 노트를, 절반에는 참여자 화면과 채팅창을 띄운다. 이렇게 하면, 시선처리뿐만 아니라 강의 내용을 숙지하고 전달하는 것도 한결 자연스럽고 매끄러워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채팅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소통하는 것도 교육 참여자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면, 강사 발음이나 발성이 아무리 좋아도 각자 접속 환경에 따라 전달이 어려워지기 쉽다. 그래서 참여자의 눈치를 더 열심히 살피고 채팅도 더 신경써야 한다. 발표자 노트에 필요한 정보를 요약 정리했다가 설명이 끝난 후 바로 복사&붙여넣기로 채팅에 남기기도 했다. 예컨대 영상 시청 후 풀버전 링크를 올린다거나 주석작성 기능 사용하는 방법, “강사의 화면을 보고 있습니다 -> 옵션보기->주석작성. + 주석작성 기능이 어려우면 채팅창에 남겨주세요.” 등. 이렇게 실시간으로 소통해야 그나마 온라인에서의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 하다보면 참 유튜버가 새삼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진다.
그리고 최대한 교육 참여자가 다른 곳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고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긴장도를 높여줄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계속해서 마이크를 교육 참여자에게 임의로 넘기고 이야기를 시작한 교육 참여자가 또 다음 참여자를 초대하는 방식으로 참여를 유도했다. 그다지 친절한 방법은 아니지만 교육이 마냥 친절하고 편하기만 해서야 배움이 가능할까. 그래도 ‘지목’ 대신 ‘초대’라는 용어를 성북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배워서 사용하고 있는데 단어 하나 차이이지만 한결 부드럽게 느껴진다.
주요 참여 활동으로는 앞서 주석작성 기능으로 참여자들이 쓴 것 중, 인상깊은 것을 읽거나 본인의 소감을 공유하는 형태로 한다. 이렇게 하면 익명성을 보장하여 편하게 참여를 유도할 수 있으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그나마 효과적이다. 한 번 이야기를 듣고 강사가 정리를 하거나 의견을 보완, 수정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아직까지 온라인 참여는 이 형태가 제일 편하고 좋은 것 같다. 의견을 받기 위한 트렐로, 잼보드 등 프로그램 사용도 계속 고민해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참여자의 문턱과 화면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집중력이 떨어질 것 등이 우려된다. 줌의 소모임 기능 사용도 계속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고 소모임 기능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참여자간 신뢰와 충분히 소통이 된 촉진자가 필요하다. 아직은 소모임 기능을 원활하게 잘 써볼 기회가 없어서 아쉽다. 충분한 시간과 환경이 확보되면 도전해봐야지.
강의가 끝나기 10분쯤 전, 교육 참여자가 수업 내용을 복기하고 서로 소감 및 인상깊은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갖는 게 정말 좋은 것 같다. 빠르게 휘발되는 기억을 조금이라도 남길 수 있다. 사실 그것도 그거지만, 이 때 나왔던 이야기를 통해서 나도 어떤 내용이 잘 전달됐는지, 어떤 내용은 내가 중요하다 생각한 것 만큼 전달이 잘 되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많은 선생님들이 따뜻한 소감을 함께 써주셔서 삭막한 강의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위로를 받았다. 지칠 때마다 두고두고 읽어야지.
교육을 하면서, 활동을 하면서 매번 느끼지만, 정말 세상은 쉽게 망하지 않는다.
다 망했다고, 안 될거라고 자조하고 절망하는 순간에도 묵묵히 조개를 주으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부디 다들 오래오래만 했으면 좋겠다.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노인이 되어서까지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끝이 애매할 때는 역시 좋은 책의 좋은 구절로 마무리를 해야지.
기대와 희망이 무너져 내린 광장의 폐허를 돌아보며 세상이 망했다고 한탄하면서 시류에 떠밀려가는 것은 언제나 쉽다. 무엇보다 어렵지만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일은 당장 잡아먹어도 부족할 돼지를 부득부득 먹이고 키워내는 일이다.
_손희정, ‘다시, 쓰는, 세계’, 오월의봄, 2020, 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