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를 탐구하는 HPV예방접종 원정대

by Nut Cr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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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함페에서 올해 꼭 하고 싶었던 활동 중 하나인 <섹슈얼리티를 탐구하는 HPV예방접종 원정대>(이하 원정대)를 진행했다. 우여곡절, 다사다난 중에서도 무사히 활동 하나를 끝낸 것에 감사하며 그 후기를 남긴다.


앞서 남함페에서 왜 이런 활동을 기획했는지 개인적이고 또 사회적인 의미를 풀어냈다.


먼저 개인적인 이유는 최근, 성교육 활동을 하며 들었던 고민 때문이다.

성교육, 대체 왜 할까? 스스로도 잘 설득이 되지 않았다. 우리 몸의 생물학적인 기능을 알기 위해서? 그렇다면 남자 청소년과 월경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당장 청소년이 섹스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 사회문화는 이야기 하지 않은 채, 주구장창 정자난자 이야기만 늘어놓고 기껏해야 피임법이나 가르치는 성교육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선배 교육활동가 선생님들의 이야기와 교육안, 보수교육을 통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결국 내 몸의 쓰임에 대해 아는 것을 넘어서, 타인과의 교류, 관계맺음의 한 일환인 성적인 관계를 어떻게 잘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성교육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성교육, 청소년뿐만 아니라 청년들에게도 너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의 청년들, 청소년 때 이런 유형의 성교육을 들어본 적도 없고 성인이 되어서도 성과 관련해 들을 수 있는 교육이라고는 기껏해야 폭력예방교육이 전부다. 그나마도 일정 규모 이상의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가능하며 온라인으로 넘겨버리기가 부지기수인 현실에서 청년들은 온 세상의 왜곡된 성문화와 치고 받으며 좌충우돌 성에 대해 알아간다. 이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교육을 기획해서 진행하고 싶었다.


또 사회적인, 남함페 나름의 이유도 있다.

작년 수면 위로 드러났던,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너무 끔찍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 여기에 ‘성욕’은 없다. 그저 지배욕, 권력욕, 상대를 착취하고 괴롭히는 폭력만이 난무한다. 어디 이 사건만 그랬나? 미투운동으로 드러난 수많은 성희롱, 성폭력 사건들, 웹하드를 비롯한 디지털 성폭력 카르텔, 유구한 역사의 다종다양한 성착취 산업. 현기증이 날만큼 끔찍한 사건과 사람들, 그 안에 만연한 폭력과 착취를 그저 ‘남성의 성욕’이라는 이름으로 퉁쳐버리는 모습을 너무 오래, 많이 봤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조차 못 느끼지만, 그래도 한편으로 이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마냥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차별과 혐오, 폭력, 범죄 아래 뿌리깊게 깔린 이성애 중심주의, 성별고정관념, 성별이분법, 왜곡된 성문화 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잘못된 통념에 목소리 내고 균열을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엄청나게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 것 같으나 실제 그 안에 섹스는 존재하지 않는 형국이다. 예컨대, 남성들의 성욕과 정력에 대한 숭배의식, 성기 길이와 크기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대체 어떤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며 무슨 판타지를 위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애처로울 지경이다. 이런 모순을 너무 잘 보여주는게 바로 기혼남성의 부부간 성관계를 의무방어전이라고 부르는 모습이다. 청소년기부터 “섹스”를 미사여구처럼 사용하던 남성들이 결혼 하고 나서는 도리어 섹스를 두려워하고 귀찮아 한다. “섹스, 또는 성욕 = 남성성” 아니었나? 고작 손가락 모양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들이 이런 농담은 서로 잘도 주고 받는다.


섹스를 이야기했으나 섹스는 없다.

그저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한 인정투쟁만 난무한다.

진짜 섹스에 대해, 자신의 성적 욕구와 성적인 관계 맺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과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소하게나마 남함페에서 자리를 마련했다.


첫번째 시간에는 나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대체 어떤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을 가지고 있을까. 많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의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자연스럽게’라는 이름으로 질문을 회피, 외면한다. 하지만 몇 가지 질문과 고민을 더해보면 과연 스스로 그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이기만 할 수 있나 자문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이 과정을 돕기 위해 임의로 만든 몇 가지 툴과 질문, 사례를 제시했다. 지금 쓴 툴은 다소 조잡한듯 하여 좀 더 정제하고 수정한 이후에 공개해야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의 사랑하는 애인이 성별정정을 한다면?”


정말 너무너무 사랑하여 신장도 기꺼이 떼어 줄 수 있는 애인이다.(심장은 좀…)

그 애인이, 성별정정을 하겠다고 한다면? 이 질문에 친구와 함께 고민하며 내린 결론은, (트랜지션에 따르는 위험, 부담,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걱정과 별개로) ‘그게 뭐 대수인가’였다. 사랑이(물론 사랑도 또 복잡하지만) 단지 성기만을 향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해당 워크숍에서도 대다수 비슷한 입장과 의견이었다. 그랬을 때, 우리는 단순히 헤테로섹슈얼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짙게 깔린 이성애중심주의, 그리고 내 안의 호모포비아를 점검하고 질문해볼 수 있게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성정체성과 관련해서는 나의 태국 해외봉사 경험을 이야기했다.

태국에서 트랜스젠더를 진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방콕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시골 학교에도 어딜 가나 있었다. 선생님 중에도 트랜스젠더, 게이, 레즈비언이 다 있었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서도 트랜스젠더, 게이, 레즈비언이 있었다. (물론 더 다양했겠으나 그때 당시 내가 아는 게 그게 전부였다)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이었음에도 다들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우니 나 역시도 별 대수롭지 않았다. 그저 여성형/남성형 언어 사용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게 전부였다. 도리어 스스로 정체성을 묻지 않은 내가 더 이상했다. 나는 스스로를 ‘남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없다면 왜 없었지? 어떻게 남성이라고 확신하고 살아왔지? 참여자들과 고민을 더하며 우리사회의 지독한 통념, 한계, 이분법을 넘어 스스로의 성별 정체성을, 성적지향을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상상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두 번째 시간은 우리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할 수 있도록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엄청나게 천박하거나 지나치게 경건한 섹스 이야기 말고, 우리 곁에 있는, 현실적이고 진솔한 섹스 이야기를 해보고자 했다.


우리는 왜 섹스를 하는가? 단순히 나의 성적 욕구만을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자위라는 편리하고 안전한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번거롭고 어렵고 심지어 각종 폭력과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섹스인가?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대체로 ‘관계맺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제시한 문장이,


“섹스는 오르가즘을 위한 팀 프로젝트가 아니고, 당신은 바이브레이터를 이길 수 없다”


였다. 많은 남성들이 정력을 위해서라면 못 먹을 게 없으며 그러면서 고작 손가락 모양에 벌벌 떤다. 지속력과 길이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이성애자일 경우) 이를 통해 여성을 성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남성의 성기는 그 어떤 싸구려 바이브레이터, 딜도도 지속력과 길이로 당해낼 수 없다. 심지어 3분이면 오르가즘이 가능하다는 반려기구가 있는 21세기에 고작 인간 따위가 그런 단순한 기능으로 비벼서 이길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인간의 기능을 하자. 딜도나 바이브레이터가 하지 못하는 교감, 공감 그런 것들. 기계가 되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기대, 바람을 내려놓고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면 그간의 허세와 불안에서 벗어나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한 섹스를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그런데 왜 HPV 예방접종 원정대인지’를 설명했다.

앞서 활동으로 ‘좋은’ 섹스를, ‘잘’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파트너와의 교감과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공감대를 모았다. 거기에 이 막연하고 추상적인 ‘노력’을 조금이라도 구체화하고 현실적인 실천으로 기억에 남기기 위해 HPV 예방접종을 선택했다. 자궁경부암을 비롯한 항문암, 구강암의 원인이 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전염을 막을 수 있다는 실효성도 있으니 금상첨화다. 다만, 비급여라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비용부담이 상당하기에 그저 ‘예방접종을 맞자!’는 캠페인으로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워크숍 형태로 진행하여 성평등한 관계맺음을 위해 섹슈얼리티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또 당장 백신을 맞지 못하더라도 HPV 백신에 대한 정보를 얻고 필요성을 인지, 정보를 주변에 확산하는 것만으로도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꼭 해당 백신을 맞지 않더라도 원정대원으로서 주기적으로 성병검사를 하는 것 등의 실천이 가능함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두 시간 반이 꼴딱 지났다.

처음 기획하고 준비한 워크숍인데다가 주제도 주제인지라 부담, 걱정이 컸다.

그래서인지 용어 사용에 주의를 받기도 하고 정보 제공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서만 하던 생각과 고민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참여자도 정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적극적이라 진행하는 내내 행복했다. 때로 힘들고 괴로워도 이런 순간이 있어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한동안은 또 이 기억으로 살 수 있다.


소중하고 소박한 우리네 활동이야 말로 길고 오래가길 바라 본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남함페 #HPV예방접종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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