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교육과 저항에 대한 단상

by Nut Cr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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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차 쓰는 교육 후기가 어쩌다 빵 뜨면서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쓴 글이라 주워담고 싶은 말도 많고 이곳저곳에서 제멋대로 읽고 씹고 뜯고 맛보는 것을 보며 속상하기도 하지만, 이미 글은 내 손을 떠났고 그저 더 많은 글로 생각을 덧씌우는 수밖에.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왜 하필 그 글이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을까.

이후에도 그 글과 관련해서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질문을 하는 개인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그만큼 백래시, 특히 남자 청소년들의 저항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큰 까닭이겠지. 그 염려를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염려가 이른바 ‘요즘 것들’에 대한 너무 손쉬운 타자화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유구한 타자화의 역사. "요즘 것들은 유튜브를 많이 봐서, 오냐오냐 자라서, 문해력이 떨어져서, 이명박근혜를 안 겪어서" 등등… 너무나 손쉽게 어린이·청소년과 거리두기 하고, 가르치려 드는 태도로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령 지금 어린이·청소년에게 유별난 저항이 있더라도 그것이 ‘요즘’ 세대만의, ‘새로운’ 문제가 아닌 우리사회의 가부장제와 누적된 여성혐오의 자장에서 일어나는 일일것이다. 마치 유별난 별종이 뜬금없이 등장한 것처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얼마나 손쉽게 스스로의 과오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가.




그리고 한편으로 교육에서 드러나는 저항을 과연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기존의 인식론을 뒤집어 엎는 페미니즘 교육에서, 저항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오히려 저항 없이 모두가 수긍하고 오냐오냐 하는 페미니즘 교육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다. 교육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 상식과의 차이에 당황하고 어려워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효과성 높은 페미니즘 교육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항은 피해가야할 게 아닌, 더 발견하고 함께 논의해야할 주제로 드러내야 한다. 저항은 분명 일종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믿는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으로 내가 남성의 위치에 있기에, 이렇게 백래시와 저항을 ‘감내할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비단 말로 그치지 않도록 더 많은 남성 참여자를 발굴하고 찾아다녀야지. 물론 또 4차 봉쇄가 이야기 되고 있는 현실이라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그래도 또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어차피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은 아닐테니까. 페미니즘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곳은 주구장창 생길테니까. 아마도 계속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크나큰 기쁨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근 읽은 사라 아메드의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에 나온 글로 마무리한다. 모쪼록 내일은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줄고, 교육이 취소되지 않기를…




60쪽 - 페미니스트 되기는 우리가 속한 세상을 다시 설명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나와 타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패턴과 규칙성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확인하기’ 와 ‘시작하기’ 이 말은 언뜻 무리 없어 보이지만 결코 쉽거나 일사천리로 가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가 그 잘못된 부분들과 함께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64쪽 - 당신이 터진 조각을 맞출 때 그것은 어쩌면 마법 같을 수도 있다. 찰칵하고 맞춰지는 순간에 경이로움, 이전에는 모호하던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던 때, 상황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은 순간. … 내게 페미니스트 이론을 읽는 것은 찰칵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이후 여성학을 가르치는 것 역시 크나큰 기쁨이었다. 타인들의 찰칵하는 순간과 접속할 때 당신 역시 그 자리에 동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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