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청소년 대상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

by Nut Cracker

남자 청소년 대상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활동을 하며 청소년들이 성별에 따라 너무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여자 청소년은 어릴 때부터 무수히 많은 이야기 듣고 배우고 경험하며 성차별, 성폭력 이슈가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인식한다. 그렇다고 남자 청소년이 성차별, 성폭력과 무관한 삶을 사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다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거나 설령 인지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드러냈을 때 소위 가오상하는, 즉 자신의 남성성이 박탈되는 것을 염려하여 이야기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여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드러내지 못한 남자 청소년의 박탈감과 분노는 손쉽게 소수자를 향한 혐오로 나타난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들의 저항은 자신에게도 관심을 쏟아달라는 일종의 인정투쟁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저항이 아닌 너무 짧은 교육 시수와 시간이다.

1년에 고작해야 40분 짜리 수업 두 교시. 80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에 성교육, 폭력예방교육 과연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성별고정관념과 성적대상화가 우리사회의 성차별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ppt 장표 하나로 다 설명해야 한다. 자신의 성적욕구나 관계맺기 이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게다가 그 와중에 강사는 한 반에 놓인 수십명의 교육 참여자들 중, 어디에 속도를 맞춰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할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느린 속도에 맞추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나조차도 강의에 열심히 따라오는, 또 그 피해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여성 청소년의 속도에 맞추게 된다.


부족한 시간, 너무 다른 환경과 속도.

이 모든 문제는 이야기되지 않은 채, 그저 남자 청소년이 문제라며 혀를 끌끌 찰때, 교실에 흐르는 권력과 이해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혐오와 차별만 남는다. 그래서, 성별이분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남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올해, 운 좋게 한 성문화센터의 도움으로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남자 청소년 대상 강의안을 만들고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덕분에 지난 5, 6일 중학교 1학년 남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그것도 심지어 4차시에 걸친 시범교육을 진행했다.


1차시는 “나는 ‘남자 청소년’인가요?”라는 제목으로 남성성으로 맨박스와 관련한 이야기를 했다. ‘성평등 교육’이라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막연한 저항을 고려하여 앞단에 배치하였고 실제로 호응이 좋았다. 다양한 ‘남성’에 대한 성별고정관념과 구분짓기를 살펴보며, ‘우리가 말하는 남성이란, 남성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맨박스에서 벗어나자!”, “나 다운 삶을 살자!”는 허무하고 단편적인 선언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맨박스 밖에 위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어떤 비난과 구분짓기가 이루어지는가. (“게이같다”, “계집에 같다” 등) 그것이 의미하는 젠더권력구조는 어떤 모습인가. 질문해보면서 스스로 일상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연습해보는 시간이었다.


2차시는 “나 사랑해도 되나요?” 욕구, 그 중에서도 성적 욕구와 관련한 이야기다.

우리사회에서 남성의 성적 욕구는 이미 충분히, 심지어 과도하게 이야기 되는 듯 하나, 막상 한편으로 한 번도 제대로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방법은 배운 적 없는 듯 하다. 그저 쉬쉬하며 음지에서 이야기 된 결과, 자신의 욕구는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남성성만을 쫓다가 성적인 욕구와 지배욕, 권력욕을 구분하지 못하고, 폭력과 성관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 차시 가득, 자신의 욕구에 대해, 또 그 욕구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2차시의 하이라이트는 고백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데이트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떤 스킨십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물어보는 시간이었다. 일단 우려하던 것보다 참여자들이 훠얼씬 진지하게 임했다. 고백은 진지하게, 데이트는 소소하게, 스킨십은 상호 동의를 구해가면서 등. 너무 귀엽고 따뜻한 이야기가 많아서 나는 거진 한 마리의 망붕어가 되어 함께 주책을 떨었다. 사실 청소년들이 성교육에서 가장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하는 게 이런 내용일텐데, 지금까지 너무 단편적인 ‘폭력예방’에만 급급했던 게 아닐까 싶어 아쉽고 미안했다. 또 동시에 이 파트에서 남자 청소년의 성별고정관념을 풀어줄 수도 있었다. 청소년 통계를 살펴보면, 최근의 청소년들이 성별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데이트, 고백과 관련한 관계맺음 분야에서는 여전히 남자 청소년이 여자 청소년보다 더 성별고정관념이 강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앞서 살펴보았던 ‘남자다움의 덫’과 연관 있음을 이야기하며, 부담, 성별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자연스러운 욕구와 관계맺음을 연결지으며 마무리했다.


3차시는 “나는 동의했나요? 폭력예방교육의 핵심인 ‘동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차시에 걸쳐 풀어냈다. 내용이 너무 좋았던게, 기존 폭력예방교육에서 성폭력의 개념, 구조, 특징, 유형, 대처법을 정해진 시간 내에 풀어내다 보면 막상 개념과 원리에 대해서는 알게되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 써먹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안 가르칠 수 없으니 항상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 수업은 남자 청소년과 남성성에 방점을 찍은 추가보완 수업이다보니 ‘동의’의 그 복잡미묘하고 다층적인 내용을 심도 깊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특히, 동의를 구할때 그저 ‘YES OR NO’로 끝나는 게 아닌, 다양한 비언어적 포현을 살펴보고, 동의를 구할 때 우리사회의 권력격차를 감안하여 상대가 불편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해보는 게 정말정말 좋았다. 이런 내용이야 말로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발생하는 2차 가해, 성폭력과 피해자 통념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대망의 4차시 “나는 00000인가요?”라는 제목의 페미니즘 교육이다.

꼭 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제일 걱정이 컸던 파트다. 많은 청소년이 페미니즘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엄밀하게 살펴보거나 배운 적 없이, 인터넷에서 떠돌아 다니는 정보, 유튜브를 통해 학습된 분노다. 그렇다고 이걸 또 하나하나 풀어줄 시간, 기회가 없어서 매번 그냥 두루뭉술하게 ‘성평등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하거나 남함페 단체명을 소개하지 않고 넘어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회피하기보다 차라리 정면돌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어려운 길을 가야만 할 때도 있는거니까.


도입에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한 체벌금지, 평등하고 폭력 없는 군대문화, 청소년 참정권 확대 이야기를 했다. 뜬금없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 같지만, 연령을 이유로, 특정 문화를 이유로 누구도 폭력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거의 모든 청소년이 공감하고 동의할만한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다룬 주제로 페미니즘의 거부감을 낮추고 이해를 확장시키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라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자연히 참여자들이 어리둥절하고 반감을 보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에 페미니즘에 대한 흔한 편견과 오해,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다”, “페미니즘은 남성의 적이다.”에 대해, 페미니즘이라는 말의 어원과 인권은 제로썸 게임이 아님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반감이 그저 일부, 특정 시기의 문제가 아닌, 뿌리깊은 우리사회의 여성혐오적 역사와 이어짐을 설명했다. 이후 자연스레 페미니즘의 역사를 설명했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서부터 2015년에야 비로소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례를 통해 참정권 획득의 역사를 알아보았고 교육과 재산권이라는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보편적이라고 생각되는 권리가 페미니스트의 투쟁을 통해 지금도 계속해서 어렵사리 확장되어 가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통해, 페미니즘이 비단 인터넷에 떠다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그치는 게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위한 사회운동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그저 과거역사에만 그치는 게 아닌, 우리사회 현재에 계속해서 필요한 가치임을 이야기하기 위해, 교복에서 드러나는 성별이분법과 성별고정관념, 게임 속 여성혐오 문화, 학교 교훈, 교가에서 드러나는 성별고정관념을 살펴봤다. 그리고 스쿨미투운동, 불법촬영 규탄 시위를 통한 성폭력 처벌법 개정 사례 등을 소개하며, 페미니스트가 일궈낸 변화를 보여줬다. 생색내는 것 같지만 페미니스트가 만들어낸 변화를 꼭 보여주고 싶었던 게, 인터넷에서도 그렇고 안티 페미니스트들 진짜 악개처럼 쫓아다니면서, 마치 맡겨놓은 것마냥, “그럼 남성인권은요?”, “남자가 받는 성차별은 왜 이야기 안하나요?”라고 이야기 하는 게 정말 지긋지긋해서. 페미니스트는 이미 보편적인 인권 증진을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니 본인이나 좀 잘하시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신조어가 있으면 참 좋겠다. 한 번 고민해봐야지.


강의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모두 슈퍼파워 페미니스트가 되었다는 훈훈한 결말이면 참 좋겠으나, 세상에 그런 일이 호락호락하게 일어날 리 없지. 당연하다. 나도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데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저항이 쏟아졌다. 윤지선 교수와 보겸 이야기, 여성 할당제, 공정성, 군대 문제 등등. 이 저항은 나중에 아예 따로 정리해봐야지. 다만 요약해서 이야기하면, 분명 저항은 있으나, 그 내용이 결코 깊지 않다. 예컨대 여성 할당제를 이야기한 청소년에게 다시 되물었다. “정말 여성 할당제가 있나요? 그 이야기는 어디서 보았나요?” 물어보면, 유튜브도 아니다. 그냥 정말 어딘가 뉴스 기사 제목, 썸네일에서 본 게 전부다. 실제로 여성할당제는 없으며,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가 있고 이로 인해 혜택을 받는 것은 교육행정직의 남성들이라고 이야기해주자 함께 멋쩍게 웃었다. 군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특정 성별만 징집하는 현실을 만든 게 누구이고 무엇 때문이지, 성별고정관념, 성차별이라고 생각한다면, 진정 필요한 변화를 위해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계속 질문을 던지게한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에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갖게 되는 거라고 믿는다.


4차시 시범교육이 마무리 되고, 강의 평가서를 찬찬히 살펴봤다.

분명 여전히 저항하는 청소년도 있지만, 침묵하고 있던, 또 눈을 반짝이고 있던 청소년들의 희망이 담긴 목소리도 있었다. 언론과 미디어에서 목소리 큰 사람의 이야기가 과대대표 되며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걸 보면 분명 세상은 느리더라도 좋은 쪽으로 변한다는 걸,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믿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벌써 다음 교육이 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또 이 강의안으로 교육을 할 기회가 생기겠지. 그때까지 또 강의안을 깎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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