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감사인사와 후기

by Nut Cracker

애정하는 박정훈 기자님의 두번째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를 남함페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다. 첫 번째 책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부터 남함페에서 꼭 같이 읽고있는데, 책 제목과 내용, 분량 모두 너무나 찰떡이라 함께 읽기 참 좋다.


20210517_185041.jpg


세 번에 걸친 독서 세미나가 끝날 때 쯤, 참여자들 사이에서 “고결한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실천을 도모해볼 수 있을지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페미니즘을 접하고 차별적인 현실에 눈 뜨며, 실천에 대한 갈증을 느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해 답답해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부대끼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안전하게 실수하고 발맞춰 성장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부족하다. 일단 많은 남성이 기존 관계에서 페미니즘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청년남성 4명 중 3명은 페미니즘에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하다. 좋은 기회로 페미니즘을 접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서로 질문을 던지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사고를 확장해야 하는데, 어딜가도 온통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환경에서 날이 선 질문과 비난을 무릅쓰고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게 어디 쉬울까.


그래서 아예 자리를 옮겨, 페미니즘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를 찾으려 해도 갖은 난관에 부딪힌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 페미니즘 책 모임, 단체를 찾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괜한 민망함과 부담감이 느껴졌다. 대부분 대체로 지정성별 여성이 많은 공간이기에 그쪽에서는 전혀 의도치 않더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의도가 있다고 오해하면 어쩌지?’, ‘나 때문에 불편해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들로 빨리 무해함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내다가 말 실수를 하기도 하고 말문이 막혀 참여 의지가 꺾인 적도 있다.


운 좋게 여성 페미니스트와 관계가 쌓인 이후에도 나의 고민과 너무 다른 결을 갖고 있고, 속도 마저 달라 논의가 방향을 잃곤 했다. 한편으로는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야 하는데, 안전한 곳만 찾아 다니는 게 맞나 싶어 현타가 오기도 했고, ‘남성’을 모으고 이야기하는 게 또 다른 남성연대를 구축하는 게 되지 않을까 싶어 불안하기도 했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사람들이 지쳐 냉소와 자조, 좌절로 빠지는 것을 보는 게 고역이었다.


그 누구도 페미니스트로 태어나지 않는데, 이렇게 던져진 이들이 갈리고 사라지는 동안 그저 나는 내 몫만 잘하고 손가락질만 해도 정말 괜찮은걸까. 안전한 공동체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며 사유를 더해가는 시행착오의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하다.


우리사회의 젠더권력구조와 위치성은 개인의 노력, 의지와 무관하게 다른 환경과 시야를 제공하고 같은 말도 다르게 전달되게 한다. 예컨대, 기존 페미니즘 진영에서 사용하던 ‘미러링’이라는 전략을 지정성별 남성 페미니스트가 사용할 때, 그게 기존 의의, 의도와 동일하게 전달될 수 있을까? 지정성별 남성의 위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는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독서 모임 참여자 한 분이 책에 나온 ‘페미니즘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시도하는 모임을 도모해보자고 의지를 내 주셨다. 아직 무엇이 남성적이고 어떤 글이 페미니즘적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유에서부터 글 쓰는 방식, 발신하는 방법까지, ‘남성적’이란 무엇인가 꼼꼼히 같이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든든하다. 누가 뭐래도 세상은 정말로, 진짜로 변하고 있다. 이만하면 괜찮은 정도가 아닌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 덕에, 조금씩 계속해서 변할거다. 이런 변화의 초석을 다져 준 박정훈 기자님과 앞선 수많은 페미니스트에게 다시 한 번 감사 드리며 인상 깊은 책의 구절로 대신 마무리해야지.


왜 남성에게 페미니즘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흔히 ‘맨박스’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말도 옳지만, 나는 페미니즘이야말로 남성이 타인과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무엇보다 한 사회 속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문제의식을 키울 때, 최소한 자신도 모르게 ‘억압자’나 ‘가해자’가 되는 일은 피할 수 있다. 더불어 관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 남성문화 속에서 키워온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_박정훈,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284쪽



#이만하면괜찮은남자는없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자 청소년 대상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