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중학교 성평등 교육 후기

by Nut Cr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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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 센터와 함께 남자 청소년 대상 4차시 성평등 강의안을 개발하고 지난 시범 강의에 이어 다른 학교에서 강의 요청을 받아 다녀왔다. 해당 강의안으로 벌써 두 번째 강의다. 기껏 강의안을 만들고 썩히는 경우도 허다한데 이렇게 교육 기회가 생기다니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다. 대상은 중학교 1학년 남자 청소년으로 심지어 4차시 전체 진행을 요청 받았다. 의무로 해야하는 폭력예방교육도 시간을 줄여달라는 요구하는 판이라 4차시로 만들어 놓고도 2차시로 줄여서 진행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는데, 역시 마포대교도, 세상의 정의도 아직 무너지지 않았나보다. 교육 영역에 있는 실무진 한 명 한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럴 때마다 새삼 느낀다.


약간 어려웠던 건, 아직 해당 강의안을 숙지한 강사가 부족한지라, 강사 3명이 6개 반을 맡아야 했다. 18일에 1, 2차시 두 개반, 19일 3, 4차시 두 개반. 이틀 동안 순수 교육시간만 총 6시간. 성대와 무릎 연골을 잃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강의안을 좀 더 확실하게 내 언어로 만들 수 있었다. 간단하게 이번 수업에서 인상깊은 것과 느낀 것을 중심으로 복기해보자.


1차시, <나는 ‘남자청소년’인가요?>

1차시는 젠더박스와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다. ‘성평등’이 남자 청소년에게도 밀접한 이슈임을 인지시키기 위해 제일 앞에 넣었다. ‘남자다운’ 게임과, 캐릭터가 무엇일지 맞추는 퀴즈를 풀며 참여자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 일단 게임, 만화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참여자가 들뜨는 게 느껴지고, 하나하나 다 다른 의견을 들어보며 우리가 말하는 ‘남자다움’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질문할 수 있다. 또 지난번 온라인 교육을 하며 현직 교사의 능숙한 진행을 보고 배운 덕에 퀴즈를 좀 더 쫄깃하게 풀어낼 수 있었다. 마지막에 기존 젠더박스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하나씩 버리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도 참 좋았다. 시간만 좀 더 넉넉했다면 참여자에게 기존 규범이 쓰인 포스트잇을 박박 찢으며 대안을 직접 말해볼 수 있게 할텐데, 45분은 정말 너무 짧다.


2차시 <나, 사랑해도 될까요?>

말랑말랑한 제목으로 ‘성’, ‘성욕’에 대해 이야기하는 파트다.

개인적으로 성교육은 동기부여가 중요도의 절반쯤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에 ‘성’을 잘 이야기하는 게 왜 중요한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한다. 욕구의 자연스러움과 함께 차이, 다루는 방법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한다. 그래야 ‘자연스럽다’는 게 타인을 함부로 대하거나 차별하는 근거로 쓰이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지, 고백은 어떻게 하고 어떤 데이트와 스킨십을 하고 싶은지도 이야기 나눴다. 근데 솔직히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이상의 이야기로 나가지 못했다. 기존의 연애각본, 규범을 해체하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하는 강의를 학교에서 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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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시 <나는 ‘동의’ 했나요?>

‘동의’를 소재로 상대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의사소통, 눈치, 사회성, 배려를 이야기하는 교육이다. 사실상 폭력예방교육의 프리퀄. 이 교육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이게 교육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무례한 남성에 대한 괴담이 끊이지 않는 건 단연 그래도 괜찮은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것을 교육으로 눈치 보게끔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약간 한숨이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교육하는 자들의 몫이 있다고 믿는다. 안할 놈은 때려 죽여도 안하겠지만, 몰랐던 사람들은 할테고, 그리고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눈치를 보면 염치를 밥 말아 먹은 사람도 옆구리 찔려가며 변하겠지. 사회성은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그래 내가 뭐 세상 천사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코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차근차근 해야지.


4차시 <나는 00000인가요?>

대망의 페미니즘 교육.

괜히 지난번보다 더 떨렸다. 앞에서 3차시 동안 충분히 관계를 쌓았지만,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이 파트 앞에 자기소개를 넣었다. 왜 ‘견과’라는 닉네임을 쓰는지, 어쩌다 이 활동을 하게 됐는지, 무엇을 꿈꾸는지. 좀 효과적이었던게, 닉네임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는 참여자들이 계속 있었고 이 자기소개가 끝나자 (반 장난으로) 박수를 치는 참여자도 있었다. 웃기고 애석하지만 만화 송곳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좋은 뜻과 논리, 내용만큼이나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더군다나 이렇게 짧은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 교육에서는 더더욱.


서론은 학생인권조례를 통한 체벌 금지, 폭력 없는 군대 문화, 청소년 참정권이라는 비교적 남성 청소년 참여자도 공감하기 쉬운 주제로 차별과 폭력 없는 문화 확산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많은 청소년들이 앞서 주제에 당연히 동의하며 자연스레 몰입하게 됐고 바로 이어서 이런 변화의 한 흐름이 ‘페미니즘’임을 설명하는 장표까지 이르자 참여자의 눈에 물음표가 떴다. 구성원 중, 절반 정도는 진짜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몰라서 떠오르는 물음표였고 나머지 절반 중 거의 대부분은 페미니즘에 대해 어렴풋이 이야기 들었으나 그게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해 위 연결 고리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물음표였다. 막상 페미니즘에 대해 정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동의할 수 없다는 식의 물음표를 띈 참여자는 많아야 두 세명 정도?


참여자들에게 떠오른 물음표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에도 만연한 차별과 이를 바꾸기 위한 페미니스트의 활동을 이야기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단연 게임에서 나타나는 여성혐오 문화. 또 참여자들이 다니는 학교의 같은 재단 남자 학교는 00중학교, 여자 학교는 00여자중학교라는 점, 같은 교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뜻 풀이가 남자 학교는 ‘굳건한 의지’를, 여자 학교는 ‘우아한 용모’를 상징한다고 쓰여져 있는 점 등을 이야기하자 실시간으로 숙연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무리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이런 잘못된 문화를 바꾸기 위해 남성들이 함께 해야 하며, 실제로 그런 변화에 동참하는 남성들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사후 평가지와 설문지를 쓰면서 앞에서 계속 질문을 유도했는데 딱히 질문이 쏟아지지 않았다. 앞에 페미니즘 이야기가 처음 나올 때, ‘보겸’을 이야기하는 청소년도 있었으나 그 청소년도 후반부까지 와서는 별다른 저항이나 반발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나중에 설문지를 확인했을 때도, 그 어느 강의를 했을 때보다 평가가 좋아 왜 이러지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세상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교육 할때마다 자꾸 기대하게 만든다. 이 지긋지긋한 츤데레 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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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고 함께 진행한 강사 쌤들과 함께 교육 복기를 했다. 서로의 노하우와 어려움을 나눴다. 다들 조금 지쳤으나 그래도 상기된 모습. 이제는 자신감이 더 붙어 대상을 넓혀서 중학생 전반을 대상으로 진행해봐도 좋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맨날 혼자 강의 하고 혼자 복기하곤 했는데, 이렇게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생기다니, 생각보다 변화가 빠를지 모르겠다는 치기어린 생각마저 든다.


기존 폭력예방교육을 하고 마지막에 평가 설문을 받으면 꼭 “성폭력이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질문에 “그렇지 않음”을 고르는 교육 참여자들이 있었다. 분명 교육 시간에 성폭력이 우리와 동떨어진 일이 아닌, 굉장히 밀접하고 일상적인 문제임을 강조해서 이야기 했는데도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의아했다. 아무리 교육에서 젠더 폭력의 심각성을 실컷 이야기 해도 일단 많은 교육 초점이 그루밍, 디지털 성폭력 카르텔, 불법 촬영 문제 등 지금의 젠더 지형에서 피해에 취약한 여성 청소년을 향해 있기에 남자 청소년은 젠더 폭력을 자신의 문제로 공감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많은 남성 청소년이 “성폭력이 나와 밀접한 관련~”이라는 질문에 자신을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위치로 상상하게 되어 자신은 해당 문제와 무관함을 증명하기 위해 “그렇지 않음”을 고른 게 아닐까. 한 노련한 강사 선생님은 교육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한 몸캠 피싱 사례를 설명하니, 해당 설문 응답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남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이 성평등 교육의 목표 중 하나는 남성 청소년이 젠더기반폭력을 자신의 이슈로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이제 겨우 출발선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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