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에 끌리지 않으면서 함께할 순 없을까?

by Nut Cracker


2학기가 시작됐다. 오늘은 남양주 한 중학교에서 디지털 성폭력 예방교육을 했는데, 저출생은 딴나라 이야기였는지 무슨 한 반에 서른 명이 훌쩍 넘었다. 복작거리는 교실이 압박스러웠으나 그래도 대면 수업이 어디냐 싶어 기쁜 마음이었다. 그러나 교육 시작 후 10분도 채 안되어 목이 다 쉬면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남자 청소년들의 어그로,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어그로는 게임에서 비롯된 말로 일종에 관심 끄는 말, 행동을 뜻한다. 어그로는 저항과는 또 다르다. 차라리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이슈와 같은 교육 내용에 대한 저항이면 이를 다루며 나름대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겠으나, 어그로의 목적은 ‘관심’ 그 자체에 있기에 교육 내용과 상관 없이 강사의 말에 딴지를 걸고 진행을 방해한다. 지금까지 겪어본 어그로를 정리하면 몇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강사의 말에 일단은 “아닌데요!”라고 하면서 말을 빼앗는 유형, 뜬금 없이 자신의 관심사, 또는 아는 것을 뽐내는 유형, 괜히 더 과격하게 말하는 유형, 드립에 목숨 건 유형 등.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목을 받고자 하는 그 순수한 욕망만큼은 늘 진심이다. 이런 행동이 수업에 관심을 보이고 열심히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까지 방해 하기에 문제라할 수 있겠으나, 또 한편으로 그 순수함과 열의를 적의로 돌릴 수 없고 실제로 수업 참여가 저조한 것 보다야 낫다는 생각도 있기에 이를 잘 다독이면서 함께하는 방법을 찾는 게 시급하다.


이들의 이런 태도가 성폭력 문제를 체감하지 못하는 남성 특권에서 비롯됨을 부인할 수 없다. 허나 특권이 자신의 의지,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한다는 점과 이 청소년들이 놓인 배경과 이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교육 받아본 적 없다는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이 특권이 얄밉게 느껴질 수는 있을지언정, 단지 게으름의 산물이거나 마냥 악의로 치부할 수는 없지 싶다. 또 한편으로 이런 모습이 유난히 남성 청소년에게 많이 드러나는 까닭을 고민해보면 이 청소년들이 위계질서와 구분짓기를 기저로 한 남성연대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낀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획득하고 위계적인 남성연대 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라 생각한다면 이 애처로운 인정투쟁은 우리사회 가부장적 질서가 만들어낸 피해의 한 단면이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제 나름의 문제파악은 여기까지 하고,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요즘은 내가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해야할 것으로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다.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그로 끄는 태도의 문제를 제대로 짚어주고 좀 더 진지하게 동기부여 하면서 수업과 관련한 참여를 독려할 수 있도록 참여 방법을 도모해보자. 늘 시간에 쫓긴다고 변명하지만 생각해보면 준비한 강의안 내용을 다 전달해야 한다는 내 욕심, 강박의 문제다. 교육의 목적이 정해진 시간에 정보를 쑤셔 넣는 게 아닌, 참여자에게 동기부여하고 생각과 태도에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임을 잊지말자. 다음에는 애써 무시하거나 둥가둥가하며 넘어가기보다, 이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이 짧은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이 문제에 남자 청소년의 관심과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설명해야지. 또 그 청소년의 에너지를 제대로 발산할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참여형으로 구성해야지 싶긴 한데… 안전하고 애초의 목적과 취지에 맞는 참여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려면 참여 기획, 설계가 굉장히 탄탄해야겠다.

함께 해야할 것은?

일단 교실 인원 줄이자. 서른 명 넘는 순간, 진짜 국민MC가 와도 안된다.

쾌적하게 하려면 20명 안쪽으로, 보조강사도 있으면 성은이 망극하겠으나 현실적으로 시일이 좀 걸리지 싶다. 시간이 넉넉까진 아니어도 쪼들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40분씩 두 교시는… 정말 내용만 전달하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지 않나? 또 아직 대놓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내 짧은 생각과 바람으로는 특성별 분리수업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출발지점에 설 의지조차 없는 대상과 이 문제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대상, 이 둘을 한 교실에 놓고 한 강의안으로 수업하는데 한계를 느낀다. 성별이분법을 재생산한다는 지적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성별로 나누기 보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대상을 분리해서 수업할 수는 없을까? 물론 그렇게까지 폭력예방교육, 성평등 교육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 줄지는 또 다른 문제다.


게임에서 어그로는 종종 한타(싸움)로 이어진다.

이니시를 잘 받아안아 스노우볼을 굴려서 승부를 결정할 한타까지. 착실하게 차근차근.

역시 게임에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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