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어린이와 페미니스트 동료되기> 강의후기

by Nut Cracker

페미니스트 양육자를 위한 연속강좌 <우리집 어린이와 페미니스트 동료되기> 강의후기


바쁜 일상에 치여 글쓰는 걸 잊었다. 그래도 <우리집 어린이와 페미니스트 동료되기> 강의는 기억에 오래 남기고 싶으니까 후기를 써야지.


먼저 이 교육은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기획,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지점이 감동 포인트라 두루 널리 알려야 한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좋은 교육, 좋은 교육 활동가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음에도 많은 기관이 강사를 양성하고 이후는 각자도생, 신자유주의에 떠맡긴다. 반면 이 강의가 좋았던 건, 성평등 센터에서 양성한 강사가 지속해서 활동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 자리를 만들고 보수교육을 열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직접 강의를 기획, 진행할 수 있게 판을 깔았다. 덕분에 서로 다른 자원과 강점을 가진 활동가들이 모여 꼭 필요하면서도 흥미로운 교육을 도모했다. 또 그냥 하나의 강의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강의 이후 서로 모여 피드백하고 어려움을 나누며 다독였다. 다른 교육 활동가 선생님들의 교육을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이었다.


<우리집 어린이와 페미니스트 동료되기>라는 양육자 페미니스트 대상 교육도 이런 배경에서 기획, 진행됐다. 처음에는 막연히 아들을 양육하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고민과 관심 정도였다. 최근 오렐리아 블랑의 ‘나의 아들은 페미니스트로 자랄 것이다.’라는 책을 흥미롭게 보기도 했고, 실제로 하나 둘 결혼, 양육 하는 주변인이 생기는 시기였다. 남자 자녀를 둔 양육자가 교육을 의뢰하거나 고민을 나누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막상 개인적으로 양육을 상상해본 적 없는 처지라 난감해 하다가 기왕 이렇게 된거 아예 자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생각은 저절로 교육이 되지 않는다. 막연했던 생각이 운좋게 센터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물꼬가 트였다. 한 분은 기혼 여성 페미니스트 모임 ‘부너미’ 선생님, 또 다른 한 분은 학교에서 어린이를 만나는 선생님, 그리고 간헐적으로 학교 강의를 하는 강사인 나.


보통 양육자, 교사, 강사가 성평등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한 자리에 모이기는 참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업무분장이 참 어렵다. 양육자는 돌봄에 부대끼다보니 성평등을 전담하기 어려워 학교를 바라보게 되고 교사는 복잡한 학교 업무에 부대껴 강사를 바라보게 된다. 강사는 시간적 한계와 열악한 환경에 치여 양육자와 교사를 바라본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다가 서운해하고 원망하는 악순환이 펼쳐지곤 한다.


어린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마을까진 몰라도 양육자, 교사, 강사끼리만 좀 모여도 뭐든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강의 활동을 하며 현장에서 성평등에 관심 있는 한 명의 양육자, 교사가 얼마나 소중하고 큰 역할을 하는지 매번 느낀다. 불법촬영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데 옆에서 열심히 찰칵찰칵 사진 찍는 선생님, “우리 부모님이 ‘성평등’ 아니라 ‘양성평등’이라던데요?”라고 말하는 어린이 교육 참여자. 매운맛 말고 좋은 사례도 많다. 고단한 행정 노동을 감내하며 내부 인원을 설득, 한 번이라도 더 성평등 교육 기회를 마련하는 선생님, 학교가 제대로 성평등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민원 창구를 알아보는 양육자.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이들 덕분에 세상은 조금씩 나아진다.


여튼 그래서 모였다. 일단 양육자들 십여명이 함께 모인 그 광경이 감동이었다. 줌 화면 너머로 언뜻 비추는 어린이와 페미니즘과 돌봄이라는 주제를 온몸으로 현실에서 마주하는 양육자들. 어린이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는 나았으면 하는 뜨거운 마음과 일상 속 돌봄에서 마주치는 고단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유치원에 들어간 어린이가 공주님 옷을 입고자 할 때, 작은 입에서 “여자는, 남자는!”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 마냥 낙담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 페미니스트의 치열한 고민이 시간을 가득 채웠다.


좋았다는 이야기를 한 만 번쯤 더 하고싶다.

고립감을 느끼던 이들이 연결될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청년 세대의 문제에 갇혀 있다가 조금씩 다른 세대와 소통하며 벽이 깨어지고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던 것도 좋았다. 최근, 페미니즘이 뭘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자신을 보편에 두고 타인을 손쉽게 대상화하거나 타자화 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생각을 글이 아닌 현실에서 가능케 하는 건 역시 계속해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교류하며 넘나드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넘나들 수 있도록 열심히 터를 닦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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