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말 운 좋게 육군사관학교 생도 대상 교육을 할 수 있게 됐다.
군인 대상 교육은 불특정 다수 남성을 대상으로 교육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이기에 이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언젠가 꼭 한 번 군인 대상 교육, 군대 문제를 다루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고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이며, 동시에 가장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는 영역. 또 무슨 말만 꺼냈다 하면, “군대나 다녀오고 말해!”라고 외쳐대는 히스테릭한 반응에 더 이상 논의가 불가능해지는 경험을 워낙 많이들 해서 주변에서도 늘 어려워하는 문제였다. 그래도 우리는 이보다는 더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해야하지 않을까 육사에서의 교육으로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해당 문제를 밀접하게 다룰 이들을 언저리에서 만나보며 앞으로 조금 더 나은 현실을 만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과 더 너르게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사실 처음에는 우려가 앞섰다.
교육 참여자의 주가 남자 청년일 때 교육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이미 수차례 경험했기에, 심지어 제복을 입은 30여 명의 교육 참여자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강의가 시작되고 참여자 면면을 살펴보니, 제복 아래에는 ‘군인 아저씨’가 아닌, 앳된 ‘구닌 칭구들’이 보였다. 금세 정신을 차리고 강의를 진행했다.
육사생도라는 특징과 환경 덕인지 그 어떤 다른 곳의 교육 대상보다 집중도가 높았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이, 기계적인 반응을 하는 게 아니라 교육 내용에 따라 생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컨대 앞단에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이야기하며, 남성이 직접적인 가해자가 되지 않더라도 성폭력 문제를 계속 외면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말할 때, 대부분 여성 생도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반면, 일부 남성 생도는 불편함에 고개를 떨구거나 눈을 맞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육이 이후 질문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성평등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거부감이 너무 강하다거나 교육을 할때도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는 듯 해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잠재적 가해자’라는 망령이 자꾸 소환되는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다. 미디어와 정치권의 짜증나는 강령술사 탓도 분명 크지만 한편 그게 계속 이렇게 오래도록 만연하게 지속되는 데에는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성별이분법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싶다. 대부분 ‘폭력예방’으로 진행되는 교육에서, 조금이나마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폭력 상황이 제시되고 이와 함께 피/가해자가 양분된다. 바람직한 방향은 폭력을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함께 피해자를 조력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겠지만, 여/남 성별이분법에 너무나 강력하게 영향을 받은 까닭에 자신과 가장 유사한 ‘남성’이라는 성질로 급하게 자신을 이입하고 또 동일 성별로 묶이는, 또 묶는 경험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자신의 개인성이 지워지고 ‘남성’이라는 대명사로 통채로 묶여 대상화 될까 두려워하는 것 아닐까? 타자화에 대한 염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페미니즘적 사고와 한끗차 아닌가?
나 역시 성평등 교육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무결함을 증명하고 싶어 안절부절했던 기억이 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그건 우리사회에 이토록 만연한 폭력과 차별을 몰랐던, 또는 외면했던 것에 따른 불편함 때문일 것이며 내 탓이 아니라며 억울해하는 게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발 벗고 나설 때 해소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자 다들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교육이 끝나고 나올 때까지 질문이 계속 됐다. 특히 주변에 성평등을 전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질문이 많았다. 그 고단함에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나눴다. 내 경험으로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염려되는 한편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데 감동받았다. 이렇게 성평등 교육과 거리가 먼 것 같은 곳에서도 계속 노력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마음. 정말 변화는 구석구석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사실 이렇게 자리가 주어지기 전에 더 많이 논의해야 했다.
나의 경험이기도 하고 내 주변 수많은 친구들의 경험이다. 교육에서 만나는 천진한 어린이가 아마도 높은 확률로 겪어야할 경험이며 무수히 스쳐지나온 이들이 겪고도 외면해온 이야기다. 군대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기본권 박탈과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에서 발생하는 다종다양한 문제를 그저 애국심 같은 것으로 퉁치려 하지 말고, 개인의 고민과 불만, 트라우마를 그저 나약하다 치부하며 술자리 땔감으로 쓰거나 약자를 향한 차별과 분노로 발산하지 말고, 이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찾아, 더 많이 이야기하여 조금이나마 나은 대안을 찾는 자리가 필요하다.
하수상한 시국, 쓸데 없이 발언권만 큰 안티 페미니트스트가 사회에서 설쳐댈 때마다 교육 현장이 자꾸 출렁인다. 그렇게 사회에 유해한 바람이 흩날려도 여전히 묵묵하게 자기 몫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을 헤치며 나아가는 거대한 물결의 잔가지에도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무엇이라도 해보기 위해,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고 약소하게나마 힘을 보탰다. 부디 이 자리를 시작으로 더 많은 논의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길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군대가기 싫은 이유>
- 일시 : 2021.12.2. (목) 18~20시
- 대상 :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청소년, 후기청소년 누구나
- 신청링크 : https://forms.gle/HHNV2Bkx8A8fWbhv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