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청소년 대상 성교육 효과성 및 참여자 의식변화

by Nut Cracker

요즘 성평등 교육 활동가 선생님들을 만나면 안부 인사와 함께 “험난한 시국을 살아가느라 고생이 많으시다”는 위로와 격려가 담긴 말이 자주 오간다. 잘은 모르지만 활동이라는 게, 또 페미니즘 운동 역사가 늘 순탄치 않았을 것 같은데 이렇게 염려의 말이 떠도는 건 지금 문제가 유난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으레 현실의 문제가 크게 보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사람들 입에 계속해서 오르내리는 그 존재, ‘남성’을 페미니스트 동료로 초대하기 위한 고민과 말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 고민에 한 스푼을 더하고자, 남성 청소년 대상 교육 경험을 돌이켜 보며 이들의 눈여겨 볼 반응과 나름대로의 해석, 어떻게든 동료로 초대하고자 몸부림 쳤던 발버둥 경험, 그리고 작은 바람을 발제에 담아 나누어보려 한다. 초짜 활동가로 과분한 자리에 초대되어 치기어리고 뻔한 말만 떠들게 될까 염려되지만 미성숙한 고민이 더 많은 분들을 만나 길을 찾을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시작에 앞서, ‘남성’이라는 명칭을 둔 활동이 성별이분법을 강화하게 될지 모른다는 염려가 있다. 분명 교육에서 그 어떤 다른 청소년보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남자 청소년이 있었음에도 이를 ‘남자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납작하게 뭉뚱그리게 될지 모른다. 다만 교육 활동을 하며, 우리사회의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적인 남성연대의 문화, 남성성의 자장이 너무나 뿌리깊고 강력하여 남성으로 보여지는 청소년에게 계속해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이야기할 ‘남성 청소년’은 단순 주민번호를 기준으로 한 게 아닌, ‘우리사회 남성성의 자장아래 영향을 받은 남성으로 패싱되는 청소년’을 의미한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수많은 페미니스트 동료의 노력으로 앞서 언급한 ‘어떤 영향’이 만들어내는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여 언젠가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남자 청소년의 흔한 반응, 저항하거나 어그로를 끌거나


먼저, 다양한 남자 청소년의 반응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이 이야기 되는 게 남자 청소년의 ‘백래시’다. 그런데 이 ‘백래시’를 다 다르게 쓰는지라 최소한 이 글에서 생각하는 ‘백래시’가 무엇인지는 짚고 넘어가야지 싶다. 일단 교육에서 남자 청소년의 반발을 모두 ‘백래시’로 이야기할 수 없고 크게 두 종류의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페미니즘 의제에 대한 저항’이다. 이를테면, 장표에 쓰여진 ‘여성가족부’, ‘페미니즘’ 문구를 보며 ‘왜 남성가족부는 없냐’고 묻고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 여성 할당제, 여성전용주차장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 등 페미니즘 의제와 관련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경우다. 페미니즘이 그저 상식을 더하는 차원이 아닌 우리가 가진 인식 전반에 대한 변화를 꾀하기에 어쩌면 이런 저항은 불가피하다. 도리어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해줄 기회가 없었던 게 문제가 아닐까. 또 해당 저항 내용의 잘못된 지점을 짚었을 때, 우리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한 번 더 짚을 수 있고 참여자 역시 자신의 오해를 깨달으며 기울어진 지형에 최소한 질문거리를 갖게 된다.


그럼 ‘어그로’는 무엇일까? 게임에서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하게끔 유도하는 걸 어그로라고 부른다. 이때 말하는 어그로는 교육자 또는 다른 청소년의 관심을 끌기 위해 혐오표현을 쓰거나 강사의 말에 ‘저는 아닌데요!’라며 딴지를 걸고, 계속해서 웃기려고 하거나 등 페미니즘 의제와 무관한 방식으로 교육을 망치려 드는 행동을 뜻한다. 특히 인정투쟁보다 악의적인 어그로, 즉 이 수업을 망치고 말겠다는 식의 어그로는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을 때, 해당 교육이 자신, 또는 자신을 비롯한 남성을 교육의 주된 주체로 다루고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 더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남성 청소년 대상 강의에서의 고군분투


교실에서 어그로는 줄이고 저항을 활용하는 교육이 가능할까? 남성 청소년 대상 강의에서 몇 차례 시범 강의를 진행하고 참여자 반응을 복기하며 그 가능성을 살펴 보았다.


1차시 강의는 도입으로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고 친숙한 소재로 참여자와 교육자 간 관계를 쌓기에도 좋았고 뿌리깊은 성별이분법에 균열을 내기에도 적절했다. 해당 교육이 단순히 ‘여성’과 ‘남성’ 언급을 자제했다는 게 아니다. 디지털 성폭력 예방교육 만족도 조사지에는 “디지털성범죄가 나하고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항목이 있다. 교육 내내 강조했기에 으레 ‘매우 그렇다’ 쪽에 답이 나와야 하는데 이상하게 남자 청소년은 ‘그렇지 않다’, ‘매우 그렇지 않다’ 쪽에 체크하는 경우가 잦았다. 남자 청소년의 경우, 해당 질문을 보고, 자신을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로 생각할까 두려운 마음에 ‘그렇지 않다’는 쪽에 체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를 주변 선생님께 말하니, 자신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수업에서 남성 피해 사례를 이야기한 이후 해당 질문에 대한 응답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성별이분법의 자장아래 자신을 남성과 동일시하는 정도가 남다르다. 따라서 남성이 동질한 집단이 아님을 살펴보는 작업을 선행한 게 유효했다. 이 과정을 통해 참여자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은연 중에 학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교육 내용 중, 다양한 남성 성별고정관념에 대해 설명할 때, 자칫 참여자에게 남성성을 재생산하거나 대안으로 새로운 남성성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 위해 유의해야 했다. 특히 게임과 캐릭터의 ‘남성다운 모습’에서 참여자들이 굉장한 열의를 보여 교육자가 남성다움이 촉발하는 문제와 허구성을 다시 짚어줄 필요가 있었다.


2, 3차시 강의는 참여자의 관심이 큰 ‘관계’를 중점으로 섹슈얼리티와 동의를 다루었다. 먼저 2차시 섹슈얼리티를 다룰 때 솔직하고 흥미로운 반응을 기대했고 한편으로는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에 다소 과열될까 우려했다. 결과는 생각보다 진지한 반응이 많았다. 욕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여전히 성욕은 터부시 되는 경향이 컸다. 뒤이어 고백, 데이트, 스킨십에 대해 이야기하며 욕구와 관계를 연결짓는 부분은 모든 강의를 통틀어 참여자가 제일 즐겁고 흥미로워 했다. 참여자의 이런 열광적인 반응을 통해 그간 섹슈얼리티 교육이 소홀했던 문제와 섹슈얼리티 교육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이 교육은 참여자의 역동에 따라 교육자가 내용에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예컨대, 고백을 먼저 해야하는 지점이나 데이트 비용에서 부담을 느끼는 참여자가 있을 때는 성별고정관념을 이야기하고 스킨십에서 동의에 관한 참여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섹슈얼리티를 다룰 때 간혹 여성을 대상화하는 표현 등이 교실 여성 참여자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갈 수 있어 조심스러운데, 이번 교육에서는 그러한 염려 없이 참여자가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여성혐오표현이 나올 때 바로 짚을 수 있었다.


3차시는 참여자에게 익숙한 관계를 통해 동의의 구성요건과 이를 조성하기 위한 방법을 살펴봤다. 폭력예방교육에도 짧게 나오지만 해당 차시에서 더 많은 시간을 공들여 설명해서인지, 아니면 성별이분법이 드러나지 않고 참여자가 공감할 수 있는 사례여서 그런지 동의를 둘러싸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의 반발감이 적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2, 3차시는 성교육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로 어그로와 반발감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망의 4차시, 우려는 기우였다. 최소한 대놓고 교육에서 어그로를 끌며 수업을 망쳐버리겠다고 각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폭력예방교육, 심지어 성교육을 하더라도 강의 평가서에 온통 1점으로 도배하고 여가부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응답하는 참여자가 최소 10%쯤은 있었는데, 이 교육에서는 그런 비율이 확연히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그게 가능했던 건, 참여자들이 불만 갖던 지점을 외면, 회피하기보다 직면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 강의에서는 통계에 ‘여성가족부’ 명칭 하나만 언급돼도,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등장해도 곧바로 야유하거나 웅성거리고 술렁이는 게 느껴졌다. 허나 교육자는 강의 본 내용을 진행하는데도 벅차다보니 참여자의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수업은 계속되고 교육은 모두가 찝찝한 채로 마무리 되곤 했다. 이 수업은 페미니즘과, 여성가족부를 비롯하여 많은 여성단체와 운동을 둘러싼 여성혐오적인 시선 등 남성 청소년이 가진 불만과 질문을 직면한다. 막상 많은 참여자가 실제로 굉장히 뿌리깊은 안티 페미니스트이기 보다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 영상의 썸네일 정도를 살짝 본 정도다보니 조금 거부감을 드러냈다 가도 교육자의 설명에 수긍하는 모습, 최소한 더 이상 반발을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억울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임과 교복, 학교생활 등 청소년이 일상에서 수긍할 수 있는 성차별로 비교적 저항은 덜했으나 그래도 참여자의 불편한 감정이 억울함으로 솟구치곤 했다. 그러나 자신을 폭력의 가해자로 위치시켰다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겪고 있는 어렵고 힘든 지점을 알아달라는 표현으로 느껴졌다. 이에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공감하되, 1차시 ‘남성성’과 성별고정관념 내용을 복기하면서 문제의식을 다시 제대로 짚어 분노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게 했다.


글을 나가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 청소년의 성평등 의식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교육 현장에 가도 여성 청소년은 이미 해당 의제에 관심이 많아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반면, 남성 청소년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이 격차를 아우르는 교육을 하면 좋겠지만, 부족한 시간과 해당 문제의 주요 피해자가 여성 청소년인 현실 등으로 인해 교육자 마저도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릴 때가 많다. 당장 통합으로 더 많은 성교육을 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남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부족한 지점을 보완하는 교육이라도 필요하다. 그 외에도 교육 추진체계, 교육 시수 부족, 교육기관과 교육자, 교육참여자를 아우르는 시스템 등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남자 청소년 반응에 대한 대응은 언발에 오줌누기가 될 지 모른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우리사회는 여자 어린이를 남자 어린이와 같은 방식으로 키우려고는 하지만, 남자 어린이를 여자 어린이처럼 키울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그만큼 여전한 성차별적 현실에 대한 고민이며 동시에 성평등을 위해 그간 우리가 놓친 고리를 꼬집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언제까지 “요~즘 남자 청소년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문제의 원인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를 대물림한 결과로 바라보며 공통의 책임을 느끼고 개선을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늘 그랬듯, 페미니즘은 “이 한계를 껴안아 터뜨리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가 같이 “구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자는 말로 발제를 마친다.


위 글은, 지난 12월 3일과 8일 아하와 한성협 포럼에 공유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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