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이한의 한 해 연말정산

by Nut Cracker


들고 난 게 꽤 많았던 2021년, 한 해의 번잡함이 갈무리되는 연말.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잘 기워서 괜시리 마음 허한 날 덮어 볼 수 있는 조각보를 만들어야지.


올해의 키워드는 성평등 교육 활동가

단연 올해의 키워드는 성평등 교육 활동가다.

과연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프리랜서 교육 활동가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염려가 많았는데 올해도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다분히 주변 좋은 활동가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베풂 덕분이다. 성평등 교육 활동가라는 정체성이 참 좋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공부하고 진솔하게 소통하는 과정이 즐겁다. 매번 드라마틱한 변화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현장에서 변화를 느낄 때가 있다. 언젠가 썼듯, 교육은 조금씩 사과나무를 심는 활동.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보면, 언젠가 싱그러운 사과밭이 생기겠지.


특히 올해에는 남자 청소년 대상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꿈 같은 기회가 생겼고 몇 차례 교육을 나가며 강의경험을 벼릴 수 있었다. 다른 센터, 기관과의 접점도 점차 생기면서 연말로 갈수록 그래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교육 활동을 나갈 수 있었다. 이 자원을 어떻게 주변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교육을 하며 참 많이 싸돌아다녔다. 최근만 해도, 제주도, 춘천, 횡성, 이천... 물론 오전부터 서울 반대편에 있는 학교에 갈 때는 고통 받지만, 그래도 덕분에 겸사 여행도 하고 드라이브도 할 수 있어서 좋다.


이제는 많이 안정 되고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남아있다. 언제까지 내 자원을 퍼다 쓸 수 있을까?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원은 무엇일까? 끝없는 고민과 질문에 자문자답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턱 괴고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으니 비수기인 1~2월 동안 그간 열심히도 우려먹은 강의안을 업그레이드 해야지. 내년에 제일 해보고 싶은 건, 남성 대상 페미니즘 입문 강의다. 올해 성평등 센터의 기획 강좌를 통해 기획, 홍보, 진행을 두루 경험했으니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도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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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라는 업보

어릴 때부터 늘 글을 쓰고 싶었는데 꿈을 좀 격하게 이뤘다.

일단 강의를 복기하기 위해 늘 쓰던 강의 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은 늘 쓰던 것과 별반 다를 거 없는데, 사람들의 수요와 맞아 떨어진 게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덕분에 프리랜서로서 입지는 나쁘지 않아졌다. 다만 그만큼 글쓰기에 따르는 부담도 커졌다. 원체 걱정이 많은 성격인데 보고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드니까 괜히 글을 쓰기가 더 어렵다. 그래도 계속 글을 쓰면서 생각을 다듬어야지.

한 출판사에서 에세이 제안을 받아 진행 중이다.


아마 내년 중에는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세상 유명하고 똑똑한 분들이 모여있는데 어찌된 영문으로 내가 끼어있는 지 모르겠다. 운 좋게 얹혀 갈 수 있어 그저 성은이 망극망극. 또 성평등 교육 활동가 모임 ‘모들’에서도 포괄적 성교육과 관련하여 많은 현장 활동가 선생님을 모아 출판을 기획, 진행 중이다. 막연하기만 했던 포괄적 성교육과 관련하여 다양한 현장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가장 기대하는 작업은 남함페 단행본이다. 19년, 20년도에 했던 작업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에너지가 나지 않아 거의 모든 작업을 남함페 연구자 분이 진행하고 나는 옆에서 그저 물 떠놓고 기원하는 정도로 참여했다. 그래도 내용이 정말 좋아서 벌써 너무 기대 된다. 세상에 페미니즘과 남성을 둘러싼 이야기가 일개 개인 차원을 넘어서 담론으로 이야기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동네 찬스로 인문교양 월간지 유레카에 글도 기고하게 됐다. 분명 고통 받을 걸 알면서도 이 기회에 글쓰기 실력 좀 키워보자 해서 넙죽 참여했는데… 업보만 쌓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생각을 글로 잘 정리하는 작업을 꾸준히 연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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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

활동가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의 사생활은 어땠는지 잘 정리해봐야지.

이 시국에 별로 적절치는 않지만, 그래도 정말 나는 ‘사람이 먼저’인 사람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고 사람이 동력이 되는 사람. 그만큼 취약한 게 없다고 생각하며 부정하려 했지만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프리랜서로 살면서 만나는 사람이 없다보니 이런 마음이 더 커진다. 내년에 셰어 오피스를 들어갈까 하는데 그러면 좀 나아질까?


사람 좋아하는 성정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래서 뚜-벅을 꾸준히 했다. 생각보다 잘 닦여진 길이 많았고 월 1회 친구들과 함께 걷고 마시는 게 그렇게 행복했다. 추운 날씨와 거리두기로 잠정 휴업 중이지만, 이건 언젠가 다시 꼭 해야지. 글램핑도 참 좋았다. 자연도, 사람도 좋아하니까. 나에게 정말 딱 맞는 취미인데 아직 같이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더 발전을 못 시키고 있다. 내년에는 더 본격적으로 해봐야지.

들고 난 사람도 많았다.


인연만큼 어렵고 난해한 게 또 있을까. 어렵고 위태로워도 결국 사람은 사람과 함께할 때 치유 받으니까(오은영 교수님 짤) 갑자기 만난 인연, 멀어진 인연, 드물게 연락하지만 늘 반가운 사람, 여차저차 보지만 이야기는 잘 못 나눈 사람 등등. 성격 상 그렇게 잘 챙기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천성이 골든 리트리버라 모두 애틋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찰나의 취미생활

연말에 번아웃이 세게 올 정도로 일이 많은 한 해였다.

그 와중에도 계속 잘 쉬고 놀고 싶어 안간힘을 썼다. 일환으로 클라이밍은 꾸준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강습도 받고 소모임도 가입해서 조촐하게 나마 체력을 유지하려고 안간힘 쓴다. 코로나의 훼방에도 볼 수 있는 공연은 최선을 다 해서 보러 다녔다. 이 시국의 추억거리가 될 윤지영의 온라인 공연, 위위위 페스타와 다브다, 정우, 버둥 공연까지.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안 되는 이런 낙 덕분에 숨통이 트인다.


좋은 술을 맛있는 음식과 페어링 해서 먹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좀 좋다. 워낙 맛에 둔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 자체가 참 좋다. 특히 핫한 동네 인근에 살고 있는 덕분에 주변에 좋은 혼술집이 많다. 시간 제한이 조금 풀리면 다시 또 다녀봐야지. 아예 내년부터는 요리를 조금씩 배워볼까 싶다. 코로나 이후에 배달음식을 계속 먹으면서 건강도 안 좋고 살도 찌고 환경에도 엉망이 되니까. 나를 돌보는 일환으로 요리를 배워두면 참 좋지 않을까.


한 해를 버티게 한 가장 큰 동력원은 드라이브였다.

제주도와 태안, 뚜벅도 하며 여행을 다녔지만 그건 이벤트에 가깝고, 일상은 거의 온 종일 일로 가득하다보니 우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훌쩍 북악이나 강화도, 장흥 등 근교로 떠나는 게 그렇게 좋았다. 그냥 바람 쐬며 달리기만 해도 행복했다. 얼른 날씨가 풀렸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꼭 국도여행을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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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의 늪에서 벗어나 하루를 살기

어려웠던 기억은 굳이 적지 않는 편이지만 올 한해도 참 다사다난 했다.

마음을 어렵게 했던 일들은 대체로 오늘, 지금에 살고 있지 못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명상이 도움이 됐다. 내 육신은 한 치도 지금을 벗어날 수 없는데, 정신이 미래에 쏠려 있을 땐 걱정과 불안에 괴로웠다. 과거에 매달려 있을 땐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했다. 가만히 걷는 게 좋은 건, 이걸로 건강해지겠다는 바람이나 잘 걷고 싶다는 욕심 없이 그저 오른발, 왼발을 착실히 옮기는데 집중할 수 있어서였다. 현실에 살기에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인과의 늪에서 벗어나서 지금 이 순간의 나에 집중하는 시간을 더 많이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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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참 좋았다.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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