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기의 시작

by Nut Cracker


그다지 운이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인복은 참 유난한 것 같습니다. 좋은 이웃일 뿐만 아니라 멋진 여행작가이자 죽은 글도 살려내는 편집자 모모 덕분에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에 한 꼭지를 맡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마감은 금방 돌아오고 늘 소재 고갈과 능력 부족에 허덕이지만 주신 귀한 기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잘 써보겠습니다. 지난 11월 유레카에 실린 첫 기고글을 공유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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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분투기의 시작

(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성평등교육활동가 이한)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이라는 작은 단체에서 성평등 교육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만 스물아홉 살 한국 남자, 이한입니다. 인생 참 종잡을 수 없어서 제가 대체 어쩌다 이런 활동을, 게다가 교육까지 하게 되었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입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남성’, 그리고 ‘페미니즘’이 함께하기까지


때는 2017년,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의 바람이 한창이던 시기. 남녀 불문, 저와 제 친구들이 모인 건 바로 공통의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남성과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 실천할 수 있을까?”


계기는 전부 제각각이었습니다. 가족과 애인, 친구, 동료 등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가부장제라는 오랜 부조리를 개선하려고…. 하지만 무엇보다 우린 모두 페미니즘을 통한 변화가 우리 사회의 모든 이들, 특히 남성까지 가닿아야 함에 공감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제 이야기를 통해 조금 풀어보려 합니다.


페미니즘에 f도 모르던 때, 여성 친구들이 자신이 경험한 일상의 차별과 폭력 경험을 나누어 준 덕분에 그간 남성으로 살며 알지 못했던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을 통해 비로소 남자인 제 삶도 변했습니다. 남자는 왜 울면 안 될까? 왜 힘들다고 하면 ‘사내자식이…’ 같은 말을 들어야 할까? 점점 감정표현에 서툰 사람으로 자라난 제 모습이 다름 아닌 강요된 남성성을 무의식중에 학습한 결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여성을 이성과 연인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동료로 소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전, 크게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과 폭력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가깝게는 소중한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게 됐습니다.


성평등은 단연 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 사회 절반에 달하는 ‘남성’이 함께 할 때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함페는, 페미니즘에 대해 오해하고 외면하고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여전히 만연한 성차별적 현실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문제로 와닿게 하며, 더 나은 실천을 도모하고자 시작됐습니다.




적어도 500명에게 빚질 각오


책 읽고 모임을 열고 각종 캠페인, 집회에 참여하며 바쁘게 지내던 중, 우연히 강사 양성과정을 발견하고 ‘놀면 뭐하니’하는 마음으로 시도했습니다. 교육을 듣는 건 마냥 좋았지만 교육을 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첫 강의시연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땀이 납니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애처롭게 지켜보는 동료 활동가들….


자괴감에 몸부림칠 때, 한 선배 활동가가 애정 어린 눈빛과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주시더군요.


“앞으로 좋은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 못해도 500명에게는 빚질 각오를 하셔야 해요.”


현장의 모진 풍파를 헤치며 두껍게 쌓인 굳은살이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교육 활동에 뛰어든 지 2년 차, 처음 우려와 달리 도망치지 않은 제가 내심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위태롭고 겁 많은 제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다분히 앞선 선배 활동가들의 다정한 말과 도움,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희노애락 덕분입니다.


강의실에서의 상황은 정말 버라이어티합니다. 강의 시작 전부터 외면하고 반발하는 참여자를 만나기도 하고 그 와중에 눈을 반짝이며 성평등에 관심을 보이는 참여자를 만나 위로받기도 합니다. 버라이어티는 강의실 안에만 있지도 않습니다. “최대한 짧고 재밌게 유머를 섞어서 부탁드려요. 아 참,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는 다루지 말아주세요~” 이런 요청을 받을 때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성평등 교육은 뭘까요?


성평등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시대에 켜켜이 쌓인 고정관념과 차별, 혐오, 폭력의 문제를 과연 ‘유쾌’하고 ‘간단’하게, 그저 ‘교양’ 수준의 시간과 분량으로 다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벨 훅스는 저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이란 성차별과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라 말했습니다. 이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착한 마음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문화를 바꾸는 교육과 뒤처진 제도를 개선하려는 수많은 이들의 헌신, 피땀 어린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이게 그저 제가 교육 현장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애써 지면을 빌려 시끄럽게 이야기하려는 이유입니다.




오늘도 활동을 합니다, 진 빚을 갚기 위해


2020년 ‘N번방 사건’으로 알려진 성착취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많은 이들이 인간에 대한 좌절과 절망, 환멸을 느꼈을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활동가들 사이에선 교육의 실패라는 자책감이 돌았습니다.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평등 교육에 충분한 자원과 시간을 쓴 적 있었나 싶어 원통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공권력이 ‘어차피 안 된다’ ‘못 잡는다’고 외면할 때도 발 벗고 나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결국 이 사건을 공론화시킨 많은 사람들…. 굵은 빗줄기에도, 땡볕에도 거리에 나가 “함께 구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자” “죽지 마, 우리가 싸워줄게”라고 외치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작은 힘은 모여 해일이 되고, 단단하게만 느껴졌던 성차별적 구조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육이 생각대로 잘되지 않아 ‘나는 자질이 없는 게 아닐까’ 자책하며 너털너털 교문을 나설 때였지요. ‘N번방 사건’의 주범 한 명이 징역 40년 형을 선고받은 기사를 봤습니다. 충분한 죗값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전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달라진 처벌 수위를 보며 변화를 체감했습니다. 비록 오늘의 교육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이렇게 세상이 변했다… 오늘은 외면했던 참여자에게도 언젠가는 변화의 물결이 닿으리라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또 빚을 졌습니다. 성평등 활동, 크게는 우리 사회에서 무사히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서로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돌봄과 가까운 이의 호의, 이름 모를 사람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혼자서 1인분으로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일 테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조금씩 빚을 갚아보려 합니다. 남함페, 성평등 교육 활동을 하며 안팎에서 겪었던 희노애락, 고민을 이 지면에 나눠보려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초심을 다지는 이야기로, 또 누군가에게는 위로로 읽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욕심내 보자면, 이 글을 읽고 비슷한 문제의식과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공명하여 우리 세상을 조금 더 성평등하게 만드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성평등 교육 활동가 이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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