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미디어가 여성가족부를 둘러싸고 책임감 없이 여성혐오 메세지를 쏟아낸다.
비판을 빙자한 유구한 여성혐오의 역사가 지겹지만 그 여파가 교육 현장까지, 일상으로까지 밀어닥치기에 말을 얹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혐오를 쏟아내는 이들이 대체로 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을 하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막상 꼭 들어야 하는 사람은 듣지 않고 들을 필요 없는 사람만 또 듣는다. 그렇다고 소용없다고 포기하거나 자조할 수는 없다. 여성혐오 메세지를 발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 한 사람만 유난히 이상한 게 아니라 그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신호다. 따라서 당장 혐오발언을 한 사람이 개과천선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 주변이 동조하지 않도록, 더 이상 혐오발언, 차별, 폭력이 번져나가지 않도록 침묵하지 않고 말을 얹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말을 얹으면 좋을까? 혐오에 매번 언성 높이며 정면돌파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게 가장 효과적인지도 모르겠고 더구나 모두가 매번 투사로 살기란 너무 어렵다. 개인의 성향, 권력과 관계가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현생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쫄보에 갈등 회피형 인간으로 갈등이 첨예한 활동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번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덕분에 나름 임기응변이 늘어 교육에서 제법 그럴싸하게 써먹고 있다. 개중 최근 여가부를 둘러싼 말들에 나름 효과적이었던 대응법을 나눈다.
1. 여가부와 게임
교실에서 ‘여가부’ 얘기를 꺼내면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게임과 관련한 부정적인 반응이다. 여가부가 ‘게임 셧다운제’의 담당 부서라는 이유로 조롱과 혐오가 놀이처럼 퍼졌다. 게임 셧다운제 문제에는 일단 공감한다. 청소년을 그저 통제와 관리 대상으로 바라보고 다른 무엇보다 게임을 문제 원흉으로 치부하는 문화에서 만들어진 요상한 결과다. 그런데, 셧다운제 누가 만들었을까? 여성가족부 장관? 여성 대통령? 여가부는 행정부 소속이다. 법, 제도는 입법부인 의회에서 주로 만들고 셧다운제는 국민의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 소속의 김재경 ‘남자’ 의원이 처음 발의했고 계속된 국회의원들의 입법 시도 끝에 이명박 정권에서 최종 입법된다. 그렇게 똥은 의회에서 싸고 욕은 여가부가 먹은지 거진 10년이 다 되어서야 셧다운제는 폐지되었다. 이를 위해 전용기 의원을 비롯한 권인숙, 허은아, 류호정 의원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어디 그 뿐일까? 셧다운제 문제의 주된 원인인 청소년을 통제와 관리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 가장 크게 비판의 목소리 내는 곳 중 하나가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인 ‘위티’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셧다운제처럼 청소년이 경험하는 문제의 원인을 설명하고 해결하는 언어가 된다.
2. “여성가족부는 있는데, 왜 남성가족부는 없나요?”
유사한 맥락으로, ‘양성평등가족부가 되어야 한다.’, ‘여성 가족부의 ‘여’가 ‘같을 여’자다.’ 등이 있다. 이런 ‘역차별’ 담론은 현재 우리나라 정도면 성평등하다고 믿기에 나오는 반응이다. 이에 먼저 왜 ‘여성’가족부인지 설명한다.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건 다른 운동의 예시를 드는 것이다. 왜 ‘흑인’인권운동일까? 왜 ‘장애’인권운동일까? 백인과 동양인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아서, 비장애인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현재 그 사회에서 소홀히 치부되기에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인권은 돈이나 다른 자원과 달리 서로의 것을 뺏고 빼앗는 제로썸 게임이 아니다. 지하철 엘레베이터 설치를 이끈 장애 인권 운동이 좋은 사례다.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이 증진될 때, 우리 모두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 해도, 현재 우리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인지하지 못해서 위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성별임금격차, 여성고용률 M자 곡선 같은 통계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이런 통계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청소년에게 너무 먼 얘기로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이때는 대중문화, 특히 게임에서 드러나는 여성혐오를 설명하면 좀 더 체감하기 쉽다. 특히 여성 게임 유저를 둘러싼 혐오 표현, 커뮤니티의 여성혐오문화의 심각성을 말하며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현실을 되짚는다.
3. 여성가족부가 예산을 낭비한다!
일단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에게 여가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예산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대답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여가부가 ‘무려 35조’를 쓴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일단 이 35조는 ‘성인지 예산’이다. 성인지 예산은 쉽게 말해, 나랏돈이 성평등하게 잘 쓰이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분석하고 평가하는 예산이지 여가부가 사용하는 돈이 아니다.
여가부의 2022년 예산은 1조 4,115억 원이다. 이만해도 개인입장에선 무시무시하게 느껴지지만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고작 0.2% 수준이고 다른 부서 예산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작고 귀여운 예산인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대신에…
이런 질문을 듣다보면, 누구도 이런 간단한 질문에조차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구나 싶어 속상하고 안타깝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질문의 꼬리만 따라다닐 수는 없다.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당장 모든 국민들이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으나 도통 제대로 풀리는 꼴은 본 적 없는 집값 문제, 누구 소관일까? 단순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국토교통부가 주거와 관련한 주요 업무를 담당한다. 허나 누구도 집값 문제의 원흉으로 국토교통부를 꼽지 않으며, 국토교통부 해체는 더더욱 이야기하지 않는다. 교육제도의 폐해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교육부가 같은 처지에 놓인 적이 있던가? 생떼 같은 목숨이 군대에서 죽어 나갈 때도, 군대 관련 드라마에 PTSD를 호소하는 예비군은 있어도 국방부 해체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심지어 정책과 예산을 다루는 정치인들 마저 대안을 제시하기는 커녕 도리어 여가부를 문제 원인으로 짚으며 ‘해체’를 이야기하는 기만을 보인다.
여성운동이 변화를 만들어 낼 때마다 비웃고 코웃음 치던 차별주의자들에게서, 그것은 소용없다며, 과격하고 잘못 됐다며 발목 잡아온 유구한 차별의 역사에서 지독한 기시감을 느낀다. 그러니 다시 묻자. 왜 하필 여가부를 향한 비난이 이렇게 유난한지, 이게 과연 합리적인지, 그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대남’으로 통칭되는 청년남성 중에서도 분명 지금 여가부를 둘러싼 이 형국이 못내 불편한 사람이 있을 거라 믿는다. 성차별 문제에 공감하고 성평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청년남성, 성별고정관념과 성차별의 폐해에 공감하는 청년남성, 주변 사랑하는 사람과 평등한 세상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보통의 청년남성들이 분명 있다. 이제는 이들이 침묵에서 깨어나 곁을 바꿔야할 때다. 누군가 여성혐오적인 말을할 때, 피곤하고 외면하고 싶어도, 눈 딱 감고 한 마디만 더 얹어보자.
“그런데 이런 말도 있던데?”, “에이 요즘 그런 말 하면 큰일 나!”
세상은 그렇게도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