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활동가)
안녕하십니까.
저는 언론과 정치권이 이야기하는, 또 수많은 다른 세대가 의아해하는 ‘청년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한입니다. 또 동시에 정치권에서,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청년남성 타령이 어색하고 불편한 한 사람입니다.
최근 한 정치인은 청년 남심을 잡겠다며 자신의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남겼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청년 남성’의 요구라며 ‘무고죄 처벌 강화’, ‘N번방 방지법’을 검열로 매도하는 등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언론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청년남성이 경험하는 문제의 모든 원인이 마치 여가부, 페미니즘 때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지금 이 모습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제가 군대에 가게 된 게, 그곳에서 최저임금은 커녕 어떤 정당한 대우도 받지 못하고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던 게, 여가부 때문입니까? 채용 성차별, 성별임금격차와 유리천장, 돌봄으로 인한 경력중단 이야기는 어디가고, 있지도 않은 ‘여성 할당제’만 비판하고 있으면 저와 제 주변 또래 남성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집니까? 언론에는 매일 같이 성폭력, 성차별 뉴스가 등장하고 제 주변에는 뉴스에 나오지 못하는 일상의 성폭력, 성차별을 경험하는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지금 그 정책으로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을 꿈꿔볼 수 있기는 합니까?
“남자가 이 정도는 해야 가족을 먹여살리지”, “남자가 무슨 이런 일로 그래”
지겹게 보고 듣고 배운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점점 평등하게 바뀌어져 간다는데, 어떤 성역할은 여전히 그대로고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이들은 이른바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청년, 청소년 남성들이 불안한 미래에, 대책 없는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며 떨고 있습니다.
허나 우리는 분명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의 원인이 어떤 여성 정치인이나 페미니스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여가부가 사라지고 여성이 군대에 간다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거나 성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정치와 언론이 펼치고 있는 성별과 세대 갈라치기가 청년 남성도, 여성도 그 어떤 세대와 성별의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1851년, 미국의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 소저너 트루스는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라는 외침으로 여성이 처한 현실이 모두 똑같지 않으며 페미니즘이 모든 차별받는 사람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오늘 “우리는 청년남성이 아니란 말입니까!”라는 외침으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을, 또 기성정치가 대변해주지 않는 우리 목소리를 이 세상에 드러내려 합니다.
우리는 정치권과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다 똑같은 청년남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부장제와 성차별이 만들어낸 남성성, 여성성의 허울을 내려놓고 성평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에 목소리 내며 함께 안전한 일상을 누리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혐오, 차별 없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남성을 위하고 남성의 마음을 얻겠다는 정치가 왜 약자들을 외면하는 정치여야만 합니까.
이 세상에 그저 ‘이대남’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치권과 미디어는 혐오 부추기는 것을 멈추고 성평등을 위한 진지한 고민과 구체적인 정책을 보여주십시오. 우리는 서로 헐뜯고 경쟁하기보다 여전히 남아있는 성차별을 개선하여 공존하고 싶습니다. 혐오와 차별없는 세상이 그토록 이야기하던 ‘청년남성’의 요구이며 소외된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동료 청년남성 여러분, 이제 성평등의 가치를 믿고 실천하는 보통의 청년 남성들이 행동해야합니다. ‘남자다움’이라는 성별고정관념과 가부장제의 악습이 부담스럽고 불편하다면, 성평등한 세상에서 차별과 폭력 없이 함께 살아가고 싶다면, 이제 침묵에서 깨어나 함께합시다. 나부터, 우리의 곁을, 사회를 바꿔갑시다.
성평등을 위해,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과 이 가치에 동의하는 375인이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2월 9일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함께 씀
<보도자료>
- 진혜민 기자, ‘이대남 일반화 반대’로 모인 남성들 “정치권은 여성혐오를 멈춰라”, 여성신문, 2022.2.9.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04
- 박정훈 기자, 20대 행보남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오마이뉴스, 2022.2.9.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8953
- 임재우 기자, 다른 이대남이 온다… 광화문 광장서 “페미니즘 괴롭힘 개탄”, 한겨레, 2022.2.9.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30372.html
- 박하얀 기자,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혐오 부추기는 정치·언론에 목소리 낸 ‘보통 남자들’, 경향신문, 2022.2.9.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2091341001
- 한예섭 기자, “여성과 약자 조롱 도 넘었다”... ‘안티 페미’ 거부한 ‘이대남’들, 프레시안, 2022.2.9.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20915200963657#0DK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