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활동가, 성평등교육활동가)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60호 기고글 <호랑이, 곶감보다 무서운 페미니즘?>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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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벌리는 마법 같은 말
모든 교육이 그렇겠지만, 성평등 교육도 참여자와의 교감이 교육 내용이나 교육자의 강의력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성평등 교육 활동가가 참여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저 역시도 예외는 아니라서 어린이, 청소년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유행어를 숙지하고 예능, 드라마, 게임 등 미디어 콘텐츠를 공부합니다. 이런 피나는(?) 노력으로 교육 참여자들과 관계를 쌓을 때 교육 효과는 물론이고 즐거움도 몇 배는 더 커집니다. 그런데 성평등 교육에서 이렇게 어렵게 쌓은 관계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말이죠.
“그럼 선생님도 ‘페미’ 같은 거예요?”
이런 걱정 어린(?) 질문에 말문이 막혀 고민했다는 교육자들의 경험담이 흔합니다. 물론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 자체가 교육의 일환일 테니까요. 허나 저 질문에는 대부분 어떤 전제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유령’이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전제 말이죠.
그래서 많은 교육자가 난처해합니다. 당장 ‘페미니즘’이란 주제를 갖고 종일 토론해도 모자라건만 그럴 시간은 부족하고 질문자는 ‘네/아니요’의 단답형 대답을 듣길 원하니까요. 어렵게 쌓은 관계가 우리 사회에 짙게 깔린 오해 때문에 산산조각 날 지경이니 난처할 따름이죠.
입에 담을 수 없는 그 이름, 페미니즘
이런 지경이니 페미니즘은 이제 금기의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허나 마냥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페미니즘 가치를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시작부터 조롱, 낙인과 함께 했거든요. 성차별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던 시절, ‘페미니스트’는 성차별주의자들이 성평등 운동하는 사람을 비웃을 때 쓰던 말이었습니다. 이 용어를 빼앗아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언어로 만들고자 했던 게 시작이었을 정도로 조롱과 낙인은 페미니즘 운동에 있어 늘 따라다니던 과제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페미니즘 운동은 전 세계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고 또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수장이었던 정치인도, 유명 영화인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세상에서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가 욕처럼 쓰이고 누군가를 제약, 비난, 해고하는 이유가 됩니다. 대체 왜 아직도 페미니즘이 이토록 부정적으로 여겨질까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형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집니다. ‘성차별이 심하던 예전에는 몰라도 성평등한 요즘에 페미니즘은 불필요하고 역차별을 만든다’ ‘원래의 페미니즘은 괜찮지만 한국의 페미니즘은 변질되었다’ ‘페미니즘은 극단적이라 갈등을 유발한다’…. 그밖에 여러 유형이 있지만 내용은 대체로 유사합니다.
페미니즘, 이제 정말 필요 없나요?
과연 페미니즘은 이제 필요 없거나, 너무 유난하기만 할까요? 게임유저들 사이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레벨은 노출도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게임 내에 여성을 향한 성적 대상화가 만연하다는 이야기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게임을 잘 못하면 여성 유저 아니냐며 ‘비하’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발생합니다. 여성은 게임을 잘 못하고 남성에게 의존한다는 편견이 담긴 여성혐오 문화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여성 게이머의 59%가 게임 플레이 중 성적인 괴롭힘을 피하고자 자신의 성별을 감추고, 게임 내 성차별‧성희롱이 있다고 응답한 여성유저가 91.2%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옵니다.
그나마 성평등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이야기되는 청소년들의 게임문화에서도 이렇게 쉽게 성차별을 발견할 수 있으니 경제, 정치 등 다른 영역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성차별은 너무 만연하고 익숙하여 잘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극복해 나가야 할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문제입니다.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변화
페미니즘에 대한 염려의 목소리를 이해합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고 있죠. 하지만 오해는 잠시 내려놓고 한 번 물어봅시다. 페미니즘이 과연 무엇일까요?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_벨 훅스
얼마 전 작고한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 벨 훅스의 말입니다. 페미니즘은 저에게 “어쩔 수 없어” “원래 다 그래”와 같은 말에 질문 던지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왜 여성 친구들은 어두운 골목을 다닐 때, 혼자 택시를 탈 때 불안에 떨어야 할까요? 왜 여성이 더 긴 시간 가사‧돌봄 노동을 전담하고 남성은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걸까요? 왜 여전히 정치권과 기업의 여성 고위직 비율은 이토록 적으며 그게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리는 여전히 이런 질문이 필요합니다. 페미니즘은 이런 질문을 통해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학문이자 운동입니다.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이 같은 질문을 던진 끝에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불법 촬영물 시청 가해를 처벌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무심코 쓰던 ‘유모차’ 같은 표현을 ‘유아차’로 바꿔냈고, ‘김여사’ ‘된장녀’ 등 차별과 편견을 담은 채 만연하게 쓰이던 표현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렇게 페미니스트는 정치와 법, 사회제도와 문화 전반에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답을 찾기 어렵고 때로는 헤매기도 하지만, 그래도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 함께 어두운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페미니즘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우리 모두를 향합니다. 성역할 고정관념은 마치 마주 세운 거울 같아서, 어느 한 성별을 향한 고정관념이 커질수록 다른 성별을 향한 고정관념 역시 증폭됩니다.
바꿔 말하면 여성을 향한 성역할 고정관념이 줄어들수록 남성 역시 그간 자신을 옥죄던 ‘남자다움’이라는 덫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페미니즘을 접한 이후에 비로소 힘들다는 표현과 슬픈 감정을 좀 더 진솔하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이 결혼‧임신‧출산‧육아로 인해 경력이 중단되지 않고 사회에 나와 일할 수 있을 때, 동료인 남성 양육자도 더 많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여 자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을 향한 차별과 폭력 없는 세상이 곧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일 겁니다.
변화로 나아가는 길이 때로 순탄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든 변화 과정이 으레 그렇듯 갈등과 저항 역시 맞닥뜨릴 겁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너 페미야?”라는 날 선 질문과 함께 펼쳐지는 어색한 상황으로 돌아가 볼까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가 생각하는 ‘페미’가 뭔데? 누구도 성별로 인해 차별과 폭력을 당해서는 안 되고, 우리 모두 함께 살자는 게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야. 그리고 그걸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어.”
여러분은 어떤가요? 성차별과 성별을 기반으로 한 폭력에서 벗어나 함께 살기를 바란다면, 이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