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강사 말고 성평등 교육 활동가

by Nut Cracker

최근 강의에서 내상을 입었다.

고등학생 대상 성희롱 예방교육인데 들어갈 때부터 초토화였다. 거의 다 엎드려서 숙면. 아무리 재롱을 떨어도 가끔 피식하며 웃어줄 뿐, 조금만 교육 내용이 들어가면 다시 숙면. 막바지엔 자포자기 심정으로 "차라리 딴 얘기 할까요?" 하면서 연애, 섹슈얼리티 관련한 이야기를 하니 그제야 몇몇 학생이 꿈뻑꿈뻑 눈뜨고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성병 걸리면 어떻게 해요?"


그 10분이 앞서 80분보다 의미있었다. 이게 어디 청소년의 문제라 할 수 있나. 학교와 강사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지 못하고 학교는 참여자의 욕구와 의지는 관심두지 않은 채, 그저 의무교육을 이수하는 것에 급급해서 진행된 결과가 아닐까. 이보다 더 최악일 때도 많다. 1시간에 성희롱, 성폭, 성매매 함께 해달라고 하거나 플랜카드만 바꿔서 달고 모든 교육을 다했다고 퉁쳐버리는 행태가 만연하다. 녹화교육 지양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교육을 의뢰하는 기관이 새로운 사람을 찾으면 그만이다.


강사에게 권한이 필요하다.

현재 폭력예방교육 이수현황 등은 각 기관장이 여가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형태다. 어느 기관장이, “우리는 그까짓 강의 대애충 슬렁슬렁 하고 있습니다~” 하고 보고할까? 그냥 시간을 채우는 정도가 아닌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양평원이 혹은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가 해당 기관이 얼마나 성심성의껏 강의를 기획하고 준비, 진행하는지 점검하고 보고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클릭 몇 번으로 끝나는 녹화 강의, 숙면을 부르는 강당식 강의를 개선할 수 없다.


이는 곧 강사를 보호하고 교육 효과성을 높이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월 중순에 진행한 강의의 강사비가 지급되지 않아 물어보니, 이런저런 내부 사정으로 5월에나 지급이 된단다. 많은 프리랜서 강사가 이런 불규칙적인 환경에 스러진다. 노오~력 만으로 좋은 강의가 만들어질리 없다. 충분한 고민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안정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강사비와 지급일 등이 포함된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


또 많은 강사가 백래시로 내상을 입는다. 강의평가서에 강의내용과 상관없는 인신모욕성 글이 달리고 교육에 훼방을 놓으려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쏟아내는 참여자를 진정시키려 땀을 뻘뻘 쏟는다. 교육 의뢰 기관에서는 애시당초 이런 민원이 두려워 교육 내용을 ‘순화’해 달라고 요청한다.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지만, 계속 이런 일들이 누적되다보니 어느 순간 나부터도 단어 사용과 내용이 조심스러워진다. 이건 어쩔 수 없는 타협인가 비겁인가.


그래도 또 교육을 해보겠다며 백래시 대응법을 고뇌한다.

나도 그런 교육을 듣기도 하고 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개인의 기지로 해결될 수 없고 해결되어서도 안된다. 어떤 저항은 교육에 따르는 필수불가결한 반응이겠지만, 개중에는 용납할 수 없는 폭력도 분명 존재한다. 폭력은 폭력이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개인의 퍼포먼스가 아닌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 권수현 선생님 말마따나, 이런 식의 훼방은 인권침해고 다른 이들이 교육을 들을 권리를 빼앗아가는 폭력이다. 교육현장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강사에게 권한이 필요하다.


(나름 재롱도 부리고 일인극을 할 때도 있지만) 강사가 그저 두어시간 즐겁고 재밌는 시간 만들어주는 서비스 제공자에 불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차별과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차별,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만들어내는 ‘운동’”인 페미니즘(ft. 벨훅스)을 하는 교육 활동가로 살아가기 위해, 교육이라는 문화 확산 활동과 더불어, 정치, 제도, 정책 개선 병행 활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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