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될 때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61호 기고글

by Nut Cr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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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흔한 오해를 풀고 우리에게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한번 복기하면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성별로 인한 차별과 폭력을 개선하기 위해 여전히 필요합니다. 여성 청년들은 비교적 빨리 이를 감각하여 페미니즘을 자신의 언어로 체화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어떤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여전히 너무 먼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페미니즘을 접하고 변화한 일상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프로불편러’가 되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세상에 꽃길이 펼쳐졌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시작하면 좋으련만, 막상 현실은 반대입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페미니스트 친구들은 페미니즘을 접하고 세상이 불편해서 눈을 질끈 감는 순간이 늘었습니다. 한 친구는 ‘가을 아침’이라는 서정적인 노래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며 투덜거렸습니다. 노래 가사에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 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를 들으며 가부장 제도의 성별분업으로 수많은 여성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가사노동에 지쳐있는 현실이 떠올랐다는 웃픈 이야기였습니다.


TV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예능에서 외모, 체형 등으로 손쉽게 희화화되는 연예인을 볼 때면, 저 사람은 속으로도 진짜 같이 웃고 있을까? 싶은 마음에 애가 탑니다. 드라마의 성역할 고정관념은 너무 뻔해 캐릭터가 등장하자마자 서사를 가늠할 수 있게 됐죠. 광고는 ‘더 예쁘게, 더 아름답게, 더 날씬하게’를 외쳐대는 통에 스스로의 몸과 외모에 대해 의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왜 그렇게 불편하게 사냐고 말이죠. 둥글게 둥글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스스로도 답답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설명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언어가 있었습니다. 언어가 있다는 건 그저 내 성격이 모나서 그런 게 아니란 걸 말해주었습니다. 페미니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놓인 환경과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만연한 차별과 폭력에 무뎌졌던 감각이 다시 예민해질 수 있었습니다.


불편함은 변화의 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안경을 쓴 여성 방송인,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는 음악인이 등장하며 방송환경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예능에서도 누군가의 외모를 웃음거리로 삼지 않고,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애씁니다.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많은 것에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켜켜이 쌓여있던 가부장제의 관습이며 성역할 고정관념 등이 깨부숴지고 재편성되는 과정은 때로 고통스럽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돌봄과 가사노동, 아직도 여성의 몫이어야 하는가?

페미니즘이 제게 가져다준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바로 가사노동과 돌봄에 대한 관점입니다. 많은 남성이 여전히 가사노동과 돌봄을 등한시하거나 어려워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는 여성의 역할이라고 보고 들었기 때문이죠. 한 지인은 여성 연인에게 점수를 따려 “내가 집안일 도와줄게~”라고 말했다가 혼쭐이 났다고 합니다. 함께 사는 집에서 가사노동은 누가 누굴 돕는 게 아니라 함께해야 할 것이라고요. 그래도 이런 인식이 확산되며 가사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하기 위해 애쓰는 남성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치약, 휴지 등과 같은 소모품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눠서 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가사업무 전반이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죠.


혹자는 이를 두고 옛날 또는 일부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통계 수치는 이게 우리가 당면한 지금의 보편적 현실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2021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여성의 가사노동은 3시간 7분, 남성은 54분이었습니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남성보다 무려 세 배가량 더 많은 겁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남성이 임금노동을 전담하는, 가부장제의 성별분업이 여전해서 그런 거라고요. 심지어 성별분업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합리적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으로 태어났다 해서 가사노동이나 임금노동에 더 적합할 리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게다가 지금은 21세기인걸요. 가부장제의 오랜 관습이 미치는 여파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이제는 그런 말을 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넓은 범위에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같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입니다.

페미니즘으로 변화하는 남성성

페미니스트들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선 ‘집안일’이라는 표현을 ‘가사‧돌봄노동’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별것 아닌 일이라고 폄하되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기 위함이죠.


또한 가사‧돌봄노동이 특정 성별만의 역할이 아니라는 문화를 조성하고 일터에 실효성 있는 육아휴직을 정착시키는 활동은 여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남성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돌봄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경험인지, 주변 양육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낄 수 있지 않나요? 자녀의 일곱 살은 그때뿐입니다. 어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때 그 시절 쌓지 못한 관계를 이후에 만회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실제로 많은 남성 양육자가 자녀의 어린 시절에 함께 보냈어야 하는 시간을 일터에 빼앗기는 바람에 관계가 서먹해지고 말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아쉬움 정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2017년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고독사 비율 중 유난히 중년 남성의 비율이 높습니다. 경제‧사회적으로 훨씬 열악한 위치에 있는 다른 성별, 다른 세대와 비교해보면 이상할 만큼 높은 수치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사회 성별분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의 역할을 가정에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제한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남성들을 과중한 임금노동으로 몰아붙였고, 남성들은 돌봄, 나아가서는 가정 내 관계 맺음에는 거의 신경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여파로 인해 이제 남성은 고독하고 고통스러워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남성이 답답한 현실에 반기를 들고 변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방송인 봉태규는 방송과 책으로 훌륭한 페미니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 서한영교는 저서 《두 번째 페미니스트》에서 육아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아냈습니다. 다양한 롤모델의 등장과 함께 전통적 남성성의 규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남성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역시 통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에 발표한 ‘변화하는 남성성과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의 생계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 ‘남자는 무엇보다 일에서 성공해야 한다’와 같은 질문에 20대 남성이 동의하지 않는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면 이직 고려’라는 항목에도 ‘그렇다’라고 응답한 2030 남성이 각각 47.2%, 45.5%나 되었습니다. 전통적 남성성 규범에 반기를 든 것이죠.


변화는 시작됐습니다. “가정적인 남편이 되고 싶어” “남자라고 육아휴직 못 쓰는 게 말이 되나?” 이 말에 공감하신다고요? 그렇다면 장담합니다. 페미니즘은 여러분의 언어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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