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실패, 나의 실패

by Nut Cracker

생각을 정리하고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쓰는 글.


한 고등학교에서 남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했다.

한창 교육이 진행되던 중, 분노에 찬 청소년 한 명이 옆에 있던 목발을 집어들고 강단까지 뛰쳐나와 바닥에 내리치며 위협을 했다. 마이크를 빼앗아 가려고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이들이 도와주어 일단락 됐다. 직접적인 물리적 피해는 없었지만 놀라고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고 열악하며 위태로운 강사 현실을 고발하고자 글을 남긴다.


먼저 남자 청소년을 구제불능의 존재로 낙인찍지 않았으면 한다. 이는 공포만 커지고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도 아닌데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건 그저 나만의 문제가, 그 청소년과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애당초 강의를 잡을 때부터 살짝 예견됐다. 처음 의뢰를 할 땐, 방송송출 또는 대강당에서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50분짜리 강의였다. 안그래도 짧은 시간에 그런 식의 강의 진행은 교육 효과가 떨어질뿐만 아니라 군중심리로 인한 저항으로부터 강사를 보호하기 어려워 고사하는 의견을 전했다. 허나 담당 선생님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강의를 의뢰하시면서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인원을 줄인 대강당 강의를 기획해주셨다. 어째 위험성은 더 커진 것 같았지만, 고등학교 특성상 시간을 많이 빼기도 어렵다 하고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져서 수락했다. 불행히도 염려는 예언이 됐다. 안그래도 모자란 시간에 화면이 제대로 송출되지 않아 5분여를 잡아먹었고 충분한 랏포를 쌓기에 물리적 시공간 모두 부족하여 충분히 공 들일 수 없었다.


그래도 내용은 전반적으로 좋았다. 벌써 몇 차례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논리도 탄탄해졌고 언어도 익숙했다. 일부 청소년들은 투덜거렸으나, 그래도 또 많은 청소년들이 공감하고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냈다. 당장 사건이 있기 직전까지만 해도 군대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며 많은 청소년들이 몰입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난리가 터지자 모든 게 와해됐다. 약간 부조리극 같은건가? 싶은 마음이었던게 그럴만한 타이밍도, 내용도 당연히 아니었는데다가 그 극에 나와 몇몇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너무 환호하고 깔깔거려서,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마이크를 되찾은 뒤, 흥분한 다른 청소년들에게 정색하고 웃을만한 상황이 아님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 상황에서 폭력을 가한 청소년보다 그 상황을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깔깔거리는 모습이 더 비극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방관, 방조한 것에 책임을 물었어야 했는데, 그럴 정신이 없어 대충 수습한 게 아쉽다. 다행히 수업은 거의 막바지여서 질의응답을 받으며 마무리했다. 여경 이슈, 여성 할당제, 여가부, 퐁퐁남 등 뻔하디 뻔한 이야기. 몇 가지 통계수치를 보여주고 논리적 허점을 찾으며 반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 교육이 망했음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교육자를 레퍼런스 삼고 싶어하거나, 성평등에 관심 보이던 이들도 있었겠으나 그 난리는 많은 것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다 앗아가지는 못했다. 강의가 다 끝나고, 강단 아래로 내려와 혹 질문이 남은 참여자가 있을까 뒷자리에서 나가는 청소년들을 바라봤다. 어떤 청소년은 대신 사과를 하기도 하고 SNS 계정을 묻기도 했다. 강의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던 얼굴도, 질의응답을 듣고 나서 고민이 해소된듯한 표정의 얼굴도 남았다. 안타깝지만 내상도, 질문도 남겠지. 왜 이 상처를 오롯이 혼자 져야 하는가? 분명 개인의 문제가 아닌데, 왜 나는 또다시 이를 스스로 해결해야하며, 대안모색도 개인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가. 사고가 그저 상처만으로 남지 않으려면, 무언가를 해야할텐데, 나는 더 이상 발버둥칠 여력이 없다. 과감히, 그리고 또 무책임하게 턴을 넘긴다. 오늘 나는 이만큼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가 온전히 내 몫만은 아니라며 변명해본다.


P.S. 노파심에 남기면, 폭력 행위 청소년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후 선생님들이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묻고 사과를 받았다. 해당 청소년은 평소 마음건강과 소통,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인 듯 하다. 물론 그렇다고 폭력이 용인될 수 없지만, 개인을 처벌하는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며, 더군다나 댓글로 질타하는 것은 사이다도, 위로도, 마땅한 대응 마련도 안된다. 우리는 천재지변에 하소연하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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