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연애에 폭력예방을 더해달라는 어렵고도 흥미로운 주제로 의뢰를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최근 연애를 도입 또는 주제로 강의를 의뢰받는 편이 많아서 재밌게 하고 왔다. 워낙 많은 청소년, 청년들의 관심사기도 해서 이번처럼 피치못하게 강당형으로 진행해야 할 때에도 활용하기 좋은 소재인 듯 하다.
다만 넘나 유성애 중심이고 아무리 ‘여성’, ‘남성’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며 진행한다고 해도, 강의를 듣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이성애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 양심에 찔리는 게 있어 앞단에 참여자와 함께 “연애는 벼슬이 아니다”를 3번 정도 복창하고 시작한다. 나아가 강의 내용에도 동성애에 대한 얘기를 의도적으로 넣는다. 보통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의뢰하면 지레 겁먹고 ‘민감한 내용은 빼주세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말 하는데, 이렇게 넣으면 학교의 우려도 잠재울 수 있고 참여자에게도 아주 자연스럽게 해당 내용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
도입은 ‘깻잎논쟁’이다. 한물 간 듯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이 논쟁을 재밌게 생각하기 때문에 분위기를 업시키기에 좋다. 그러면서 이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논쟁을 가볍게 보여준 후, 이만큼 사람들이 사랑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허나 단순히 몇 가지 테스트만으로 좋은 연애, 사랑을 할 수 있을리 만무하며, 이를 잘 하기 위해서 단순히 열쩡과 진심만이 아닌, 연애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흔한 말들을 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연애를 둘러싼 사회 이야기를 한다. 예컨대 최근 범람하는 연애 예능에서 답습되는 성별고정관념, ‘박력’을 가장한 폭력들, 클리셰랍시고 남용되는 여성혐오적 장면들, 그 외에도 성평등하지 않은 사회가 어떻게 우리를 함께하기 어렵게 만드는지 이야기한다. 사실 성평등하지 않은 현실을 짚는 것은 돌려막기 내용이라 다른 강의안에서도 자주 쓰이는데, 이 강의안에서 유난히 빛을 발한다. 아무래도 연애, 사랑 같은 매개가 있기 때문이지 싶다. 특히 평소 강의의 주요 대상자가 되는 남자 청소년을 성평등 교육에 관심갖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데, 연애라는 주제는 이들을 끌어들이기도 좋다.
그렇다고 주구장창 진지하게 사회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고백이나 데이트 비용, 이별 후 이야기도 한다. 어떤 고백을 원하는지 적당히 가볍게 얘기하면서 ‘고백으로 혼내준다’는 표현이 갖고있는 함의를 살펴보고 누군가의 일터에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번호를 딴다거나, ‘헌팅’을 하는 류의 행동이 왜 제대로 된 동의라고 말하기 어려운지 이야기할 수 있다. 연애 중 스킨십이나 이별 후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주제는 동의를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이야기하기에 참 좋다. 한편으로 여기서 ‘적극적 합의’에 대한 설명을 더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참여자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손 잡을 때 어떻게 했냐”를 물어봤을 때, 제대로 동의를 구했다는 경우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 이를 설명하는 게 조금 어렵다. 만약 남자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라면, ‘동의’의 과정에 따르는 다양한 비언어적인 표현과 맥락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런 것을 잘 살핀 이후에 동의를 구하는 게 필요하겠다고 말하겠는데… 일단은 적극적 합의의 조건을 잘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하는 교육이 사람들 호감사기 쉽지 않은 주제인지라 늘 부담도 크고 걱정도 많은데, 그래도 이 주제로 했을 때는 비교적 저항도 덜 겪고 관심도 이끌어낼 수 있어서 좋다. 한편으로 진지한 문제를 너무 가볍게 다루나? 싶은 우려도 들지만, 언제 사랑이 쉽기만한 주제였나 싶다. 돌봄과 사랑아니고 이 활동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도 없으니까. 오늘도 아주 홀가분하고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