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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솔솔 Sep 17. 2020

미운 4살이 뭐죠?

존중이란 서로 주고받는 것.

 근무 중, 사장님이 틀어놓은 육아 라디오 채널에서 미운 4살에 대한 육아고민이 소개되었다. 너무나 힘들다는 미운 4살 아이 엄마의 고민을 가만히 들으며 과거를 더듬어봤다.


 우리 아가의 4살은 어땠더라?

아무리 더듬어봐도 미운 4살 같은 일이 떠오르질 않는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미운 4살이 무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앞서서 주야장천 말했듯이 나는 어린 엄마였다. 때문에 친구들과도 점차 멀어지게 되었으며 같은 또래의 육아맘들 모임에도 끼지 못하고 소외당하기 일쑤였다. 그랬던 내 곁에 24시간 붙어 있는 건 내 딸이었다.


 내가 딸을 낳기 전,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더럽고, 시끄럽고, 말 안 듣는. 아이에 대한 나의 정의란 그랬는데 그런 가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면서 모성애가 부족하지 않을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나도 내 자신이 미심쩍었다. 남들은 임신 중에 태교에 많은 힘을 쏟는다는데 나는 고작 음식을 주의하고 음악이 듣고 싶을 때 클래식 음악을 챙겨 듣는 정도였으니까. 내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데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 별 다른 감정이 없었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를 본 순간, 나는 아이에게 사랑에 빠졌다.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 듯 그렇게 자연스러웠고 당연했다. 그랬으니 아이가 무엇을 하건 내 눈엔 그저 사랑스러웠다. 계란 한 판을 다 깨고 온 바닥에 다 문질러놔도, 먹던 요거트를 교구마다 쏟고 놀아서 뒤처리할 일이 늘어나도 나는 그저 아이의 호기심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었고 칭찬만 가득 안겨줬다. 내 안에 있을 줄 몰랐던 사랑을 가득 부어 키운 내 딸은 나와 상성이 잘 맞는 건지 욕구 충족이 잘 되어 그런 건지 자라는 동안 흔한 떼 한번 쓰지 않았고 날 힘들게 하는 일이 없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24시간을 아이와 붙어서 독박 육아를 했던 나였고 힘든 건 당연했다. 다만 아이와 나 사이에 트러블이 없었던 이유를 짐작해봤다. 나는 왜 내 아이의 미운 4살을 못 느꼈나. 이유는 하나였다고 본다. 아이 또한 나처럼 한 명의 사람으로 인격으로 존중했다. 내뜻대로 휘두르려 하지 않았다. 주변을 보다 보면 미운 4살을 떠나 죽이고 싶은 7살까지, 아주 다양하게 아이에 대한 힘듦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솔직히 그들의 힘듦에 공감이 되진 않았다. 아이를 자신을 기준 삼아 바꾸려 드는 부모들이 많았으니까. 자신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면 잘못된 것으로 가르치는 부모가 의외로 많았다. 트러블의 시작은 그렇게 사소한 데서 시작하는 법 아닐까? 작은 것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관계에서 어떻게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을까? 트러블이 안 생길 수가 있을까? 육아로 힘들어하며 조언을 청하는 부모에게 내가 해주는 말은 언제나 단 하나다.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세요.
아이도 한 명의 사람으로 존중해주세요.
내 배로 낳았지만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입니다.
존중은 서로 주고받는 것.
내가 존중해줘야 아이도 나를 존중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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