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갈아 딸을 키우고, 그 딸의 딸을 키우고.
근 한 달간의 엄마표 산후조리가 마무리되었다. 엄마는 나와 함께 잠도 잘 못 자고, 늘 늦게서야 급하게 밥을 먹었으며, 얼마 남지 않은 체력으로는 나를 염려했다.
마지막 날 저녁이었다. 엄마는 줄곧 첫째에게 엄한 나를 타일렀다. 며칠만 참으면 되지, 하며 그간 참아왔었는데 그놈에 술이 문제다. 술을 핑계로 나는 건방을 떨었다. 내 아이의 훈육은 내가 시킨다로 시작된 작은 갈등이었다. 아이가 마음에 여유가 있게 자랄 수 있도록 풀어주라는 엄마의 말에, 그래서 엄마는 그렇게 나를 내버려 둔 거였냐며 날을 세웠다. 그 시절 우리가 가난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며 건방을 떨었다. 어떻게든 상처를 내고 싶어 없는 마음을 만들어 시건방진 말들을 뱉어냈다.
엄마는 울었다. 아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엄마가 울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엄마가 학원을 꼭 보내줄 텐데.. 라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학원을 보내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지, 울면서 학원 이야기를 했다. 그땐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내가 다 보고 느껴 알고 있는 가슴 아픈 말을 했다. 한 달간 딸에, 그 딸의 딸들을 보살피느라 너덜너덜해진 엄마를 울렸다.
나는 왜 엄마 앞에서만 잔인하고 이기적일까, 어딘가에 던지고 싶어 모아두었던 돌을 왜 애꿎은 엄마에게 모두 쏟아내는 걸까. 나는 못됐고, 엄마는 그런 나를 사랑했다.
그날 밤 다섯 살 어린 딸을 재우며 나도 울었다. 지우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괜찮다고 했다. 엄마가 나 울 때 해줬잖아 하며, 그칠 때쯤 또 쏟아내는 내 눈물을 연신 닦아주었다.
- 엄마가 외할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어. 못된 말을 해서.
- 내일 아침이 되면 외할머니한테 가서 ‘죄송해요’ 하면 돼 엄마.
지우, 네가 나보다 낫다.
다음날 아침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에 미안하다는 말 대신 엄마를 꼭 안았다. 늘 작았지만 강인했던 엄마는 늙어버렸다. 엄마와의 긴 동거는 정말이지 마지막이겠다. 얼른 시간이 지나서 이때를 추억했으면 좋겠다. 상처 입힌 순간은 무뎌지고,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멈출 줄 모르고 웃었던 시간만 굳어지길. 그러나 나는 잊지 않고 늘 엄마에게 미안해하며 우리의 시간을 더 빛나게 만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