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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꽃봄 Jul 08. 2024

포도가 열렸다.

그저 애틋해만 하여도,

   지난 4월, 무얼 심든 살아난다는 초봄, 시골집 돌담을 따라 쪼로록 아기 포도나무를 심어뒀더랬다.


   배가 불러오고, 뱃속 아기가 많이 내려와 있다는 경고를 받은 후로 한동안 가지 못했던 시골집이다. 낼모레 아이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만삭의 몸으로 드디어 다시 찾았다. 정원에 무성히 자라 있는 사초가 그간의 부재를 실감케 하였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뒤뚱뒤뚱 걸어 나가 마당의 식물들을 가만히 살폈다. 집을 둘러싼 감나무엔 작고 귀여운 열매가 한창이었다. 질 꽃은 지고, 다시 틔우는 꽃은 만개해 있었다. 여러 나비는 그 사이를 팔랑거렸다. 털수염 사초는 차우차우처럼 복실복실 커져있었다.

   

   돌담을 따라 심었던 포도나무 묘목. 다섯 그루를 심었는데, 한 번은 낮은 키 때문에 미처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우지끈 묘목을 밟아 망가뜨린 적도 있었다. 5년은 지나야 나무모양은 나겠다, 싶은 싹에 가까운 묘목이었다.


   집을 지나치는 할머니들께서 비료를 줘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그저 자기 속도에 자라겠거니 하고 방치(?)해 두었는데 제법 줄기를 뻗어내는 것이 아닌가! 이 계절은, 모두를 키워낸다.


   

   볕에 탄 잎을 잘라주다 동글동글 사랑스러운 포도송이를 발견했다. 열매 맺다니, 그저 마음 한켠에 안쓰러움 하나 키웠을 뿐인데 열매를 맺다니.


   다섯 그루 중 세그루에는 미니 포도송이가 열렸다. 남은 계절이 키워내도 시큼새큼할 것이 뻔할 모양이지만, 이대로 잘 커서 익어줄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지만, 포도가 열렸다. 마음이 몽글몽글 했다.


   덥고 습하고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열매를 보도 있자 하니 홀로 다른 공간에 분리되어 있는 기분이다. 오늘은 또 이 생명의 힘을 마음에 품고 또 한 번 해내보는 것이다.


   찾았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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